[스페셜1]
그녀에게 주입한 현실의 공기
2012-04-17
글 : 변영주 (영화감독)
사진 : 최성열
<화차>에서 창조해낸 여성에 대해서

<화차>를 만들며 고민했던 많은 것들 중 그녀(들)의 목소리, 그녀(들)의 언어를 어떻게 만들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원작 <화차>는 그녀(들)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개인의 역사를 통해 당대의 일본을 읽으려는, 혹은 나는 누구로 인해 아내를 잃고 다리에 부상을 당했는가를 성찰하는 형사가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교코(영화에서는 차경선) 혹은 쇼코(영화에서는 강선영)는 붕괴되어버린 일본의 경제처럼 부유하거나 얇은 결로 기억되는 존재다. 작가는 그녀를 기억하는 친구나 동료의 현재를 세밀하게 묘사하거나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여성의 범죄를 통해 욕망의 주체인 여성을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 <화차>에서 내가 바라보는 경선 혹은 선영의 모습은, 자기 연민의 끝에서 마주쳐 붕괴되는 자아이거나, 실현 가능한 듯 보이는 욕망이 끝내 점점 더 나에게서 멀어지면서 오히려 욕망의 크기는 더욱 커지는, 어떤 환경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88만원 세대로서 세상을 향해 요구하겠어!”라는 태도와 “나는 88만원 세대이기 때문에 어떤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어”라는 태도의 차이는 너무도 크지 않은가(나는 전자의 입장에서 스스로의 목소리를 다하는 당신에게 언제든 복무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래서 영화 <화차>의 경선과 선영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기억 안의 그녀(들)에게 현실의 공기를 주입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작업을 거치며 만들어졌다. 결국 소비 욕망의 주체로서의 그녀, 불행한 자기의 삶을 넘어서지 못하고 끝내 자기 연민의 정점에서 스스로를 붕괴시키는 그녀, 그녀들이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화차>의 여성들이 되었다. 그런 면에서 무엇보다도 그녀들의 언어로, 그녀들의 대사가 구성되기를 나는 원했다. 영화의 어떤 주제적인 태도나 결기가 그녀들의 입을 통해 직접 구현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뜻이다.

연출자로서 경선이 등장하는 부분 중에서 ‘이것이야말로 그녀를 설명하고 있다’라고 생각되는 대표적인 대사와 장면은 이런 것이다. 마산으로 간 그녀가 성당 언니에게 “택시비 좀 주세요”라고 말하는 부분과 마지막 문호(이선균)와의 에스컬레이터 장면에서 “나 사람 아니야, 나 쓰레기야”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스스로 지옥 같은 곳에서 도망쳐나온 그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택시비를 달라고 미안해하며 담담하게 언니를 바라보는 그녀. 또한 경선은 “네가 그런 짓을 저질렀느냐”며 철 지난 질문을 하는 문호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악의 말(쓰레기)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아마도 지옥에서 그녀를 그렇게 불렀을 사람들의 단어, 그러나 끝내 부인하고 싶었던 그 단어를 스스로 문호에게 내뱉으며 자신의 범죄를 인정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선영의 경우엔 어머니의 납골 앞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통해 그녀의 외로움, ‘누군가 내 손을 잡아주세요’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그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선영 역을 맡은 차수연씨에게도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나 스스로의 삶을 후회하는 마음으로 울지 말고 ‘이제 나 혼자 남았는데 엄마, 나 어떡해’라는 느낌으로 투정부리듯 못생기게 울어달라고 했다. 왜냐하면 원작에서부터 내가 가장 탐닉했던 부분은 세상 밖으로 쫓겨난 그녀가 이제 세상 안으로 다시 들어오기 위해 세상 안의 언저리에서 홀로 서 있는 또 다른 여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 그녀를 먹어버리곤 저벅저벅 그 세상 안으로 들어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느끼는 2010년대 젠더의 형태, 계급 안에서 모든 것이 와해되어버린 현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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