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성장통을 겪는 소녀처럼
2012-04-17
글 : 이후경 (영화평론가)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미래는 고양이처럼>의 미란다 줄라이 감독

영화감독으로서 미란다 줄라이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건 2006년에 그녀의 장편 데뷔작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이 개봉하면서부터다. 여주인공은 아마추어 아티스트이자 노인을 위한 택시 ‘엘더 캡’의 운전사다. 그녀가 아내와 이제 막 별거를 시작한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내용의 영화다. 그녀에게 이 여자의 할아버지 고객은 너무 늦게 진정한 짝을 만난 것을 한탄한다. 동시에 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녀가 찾아간 지역 미술관 큐레이터는 끝내 그녀의 작품을 받아들지 않는다. 한편 남자의 두 아들은 채팅방에서 음담패설을 주고받는데, 알고 보니 채팅 상대는 미술관의 그 큐레이터다. 이처럼 얼핏 보아도 여러 에피소드의 병렬적 얼개가 특징인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은 줄라이가 ‘어떻게 예술을 하는지’ 그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예가 된다.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에서 여자주인공의 예술활동은 늘 일상적인 것을 수집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친구에게 빌린 사진이나 설레는 마음으로 구입한 분홍신 같은 것이 모두 예술의 소재가 된다.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이라는 책도 미란다 줄라이와 그 인물들의 예술하는 법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준다. 미란다 줄라이가 동료 행위예술가 해럴 플레처와 웹사이트를 통해 인터넷상의 일반 대중에게 일상적 과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답을 모으는 집단 창작, 이른바 크라우드소싱 프로젝트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이 웹사이트에서 그들은 ‘응원의 게시물 만들기’, ‘침대 밑 사진 찍기’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그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미란다 줄라이는 아마도, 자기의 작품을 만들어놓고 그것을 유통시키는 것이 소통이 아니라 소통이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이미 포함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래는 고양이처럼>

언뜻 <미래는 고양이처럼>도 그와 같은 행위예술가로서 그녀가 걸어왔던 행보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동거 중인 두 남녀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한 길고양이를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퇴원일을 기다리고 있는데, 수의사가 고양이가 길게는 5년 가까이 살지도 모른다고 하자 자신들의 삶을 저당 잡힌 기분이 들어 직장도 때려치우고 “촉각을 곤두세운 채” 일상에 잠재해 있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과정은 거의 <나를 더 사랑하는 법>의 속편 격에 해당한다. 자신에게 말 거는 사람에게 모두 대답하기, 자신의 춤추는 모습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 인터넷 끊고 살아보기 같은 과제가 신의 단위를 구성한다. 그런데 그런 소박한 장난을 계속하던 그녀가 영속적 관계, 상호적 소통에 대한 낙천적 믿음을 버리고 지독한 성장통을 경험하게 된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미란다 줄라이는 실제로 자신을 쏙 빼닮은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삼아왔고 스스로 그 인물을 연기했다. 때문에 다음과 같은 그녀의 말을 신중하게 경청하게 된다. “서른을 넘고 보니 이제는 죽음이란 피할 수 없고 삶이란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그것이 내가 성인이 되었다는 신호인 것 같다.” 천진한 표정을 거둔 채 처연하게 ‘끝’을 알리는 그녀의 두 번째 영화 <미래는 고양이처럼>의 마지막은 첫 번째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마지막과는 달라도 많이 다르다. 그녀의 인물이, 그녀의 영화가, 성장한 것이다. 감독 미란다 줄라이 그 자신과 함께.

그녀의 사소한 비밀◆공상

<미래는 고양이처럼>을 찍으며 시간을 통과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 미래와 마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는 그녀는 사실 주로 과거로의 여행 혹은 공상에 몰두해왔었다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혹은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이라고 이름 붙인 파일 폴더를 어릴 때 만들어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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