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한석규, 이제훈, 오달수, 강소라, 조진웅 / 제작 KM컬쳐 / 배급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개봉예정 3월
“<소름>을 만들고 나면 굉장히 시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더 갑갑하더라. <나는 행복합니다>를 구상할 때도, 좀더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3년 전 윤종찬 감독이 털어놓은 고민이다. 그가 말한 유연한 태도는 무엇을 뜻하는 걸까. 시장의 빠른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는 체념의 다른 표현일까. 그런 것 같진 않다. <소름> <청연> <나는 행복합니다>에 이은 그의 네 번째 연출작 <나의 파파로티>는 TV프로그램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해 ‘고딩 파바로티’라 불린 김호중씨의 사연을 바탕으로 한 휴먼드라마다. 편집을 끝내고 믹싱 작업에 들어간 윤종찬 감독은 이번에도 유연함의 미덕에 대해 수차례 강조했다. 전작에선 배우들에게 한발 더 다가가려고 애썼다면, 이번엔 한발 물러서서 지켜봤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각기 다른 장르물을 연출하면서 잊지 않고 고유한 인장을 새겨넣었던 윤종찬 감독은 어쩌면 감독이 말하는 영화가 아니라 영화가 말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분투 중인지 모른다.
-연출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이제까지는 스트레이트만 날렸다면 이번엔 잽을 날리겠다”고 했다.
=그전에 스릴러 시나리오를 몇편 받았는데 다 거절했다. <나는 행복합니다>(2008)까지 찍고 나서 가벼운 영화를 하고 싶었다. 앞선 세편의 영화들이 운동선수로 치면 유연성이 지나치게 떨어져 보이더라. 내가 틀에 얽매여 있었던 것 아닌가, 이야기하는 방식이 너무 경직되어 있었던 것 아닌가, 자문하게 됐다.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참여하게 됐나.
=각색 작업이 50% 정도 됐을 때다. 디테일하게 각색에 참여한 건 아니다. 시나리오 작업은 제작사인 KM컬쳐와 유영아(<7번방의 선물> <코리아> 각본), 이해제(<완득이> 각색) 두 작가가 주로 진행했고 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정도였다. <나의 파파로티>를 하게 된 건 드라마라기보다 음악에 끌려서다. 이런 영화가 흔치 않으니까. 사실 시나리오의 위트와 유머를 내가 극대화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이쪽을 천착해왔던 것도 아니고. 외려 찍으면서 나한테는 교육이 됐다. 이렇게 하면 관객이 웃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된 거다. 모르는 것마저 내가 안다고 할 순 없고, 그럼 영화가 산으로 갈 테니까. 내 연출 몫은 다른 데 있다고 봤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었나.
=조예가 깊진 않다. <나의 파파로티>가 클래식에 관한 영화도 아니고. 다만, 음악은 안 가리고 들어왔다. 단편 작업 때는 직접 작곡을 해서 넣기도 했고.
-모델이 된 ‘고딩 파바로티’ 김호중씨를 실제 만났나.
=여러 번 봤고, 과거 조폭생활할 때 이야기부터 자세히 들었는데 에피소드에 자세히 반영하진 않았다. 학교에서 잘릴 뻔한 상황에서 선생님이 “네가 노래로 성공할 수 있다는 데 전 재산을 다 걸겠다”고 확신했고, 그 말에 마음이 움직여서 노래를 하게 됐다는 상황만 주요 모티브로 끌어왔다.
-시나리오를 보니 대사가 돋보이더라. 상진(한석규)과 장호(이제훈), 두 인물이 주고받는 대화들은 때론 만담 같고 때론 싸움 같다.
=어떤 배우들이 그 인물을 맡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캐릭터만 놓고 보면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는 아니다. 한석규, 이제훈 두 배우가 붙으면서 어떤 식으로 가야 하는지 뚜렷하게 정해졌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어떻게 교감했나. 지금까진 배우 잡는 감독으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캐스팅이 확정된 뒤 이런 생각을 했다. 연기에서만큼은 그냥 놔둬버리자. (연기) 연출은 안 해버렸으면 좋겠다. 방목하듯이 그냥 풀어줘야겠다. 가볍게 찍는다고 해놓고 배우 잡는 것은 언밸런스잖나. 그렇게 했다간 우려했던 그 틀이 다시 끼어들 수도 있고. 실제 현장에서도 두 배우가 다 알아서 했다. 난 현장이 잘 돌아가나, 밥은 제때 먹나, 그 정도만 고민하면 됐다. (웃음) 제훈이는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소름> 때 김명민이 고생한 이야기를 들었나보더라. 독하게 맘먹고 왔다고 했는데 디렉팅을 잘 안 주니까. 나중에는 삼촌하고 영화 찍는 것 같다고 하더라. 한석규씨도 예의 겸손한 목소리로 “디렉팅을 주십시오”, 그런 적이 많았다. 하지만 잘하는데 뭘 더 요구하겠나.
-그래도 조련하다 방목하는 게 말처럼 쉽진 않았을 텐데. 근질근질하지 않던가.
=어느 정도 레벨에 오른 배우들이 직접 현장을 핸들링하는 걸 지켜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본인들이 요리조리 해보고 시간이 나면 내가 원하는 걸 하기도 했는데, 결국 본인들이 싫으면 NG인 거지. 내가 OK해도 본인들이 더 해보고 싶으면 더 가는 것이고. 세대가 다르고 연기 패턴이 다른 두 배우의 부딪침을 지켜보는 것이 흥미로웠고, 그게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누구나 제훈이가 한석규씨한테 일정 정도 기대서 갈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현장에선 제훈이가 한석규씨를 긴장시킨 적도 많았다. 상대방이 세게 지를 때 웬만큼 받아선 장면이 안 붙는다. 배우 입장에서도 상대가 연기하는 걸 보면 자신이 전에 찍은 분량이 맘에 안 들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쥐어짜게 만드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드라마보다 음악에 이끌려 연출했다고 했는데. 후반부의 콩쿠르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가장 궁금하다.
=배우가 한 소절 부르면 카메라가 객석을 보여줬다가 연주자를 보여주고 하는 식은 아니다. 기교를 써서 피해가고 싶진 않았다. 투박하더라도 힘차게,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이. 처음부터 세웠던 원칙이다. 간단히 말하면, 흔히 다섯컷으로 나눠 찍을 부분을 한컷으로 그냥 쭉 갔다. 배우들한테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앵글이다. 그러나 그런 식의 정공법으로 감정의 분출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 노래 한곡 제대로 찍어보고 싶어서 연출하겠다고 한 거다.
음악선생과 조폭 제자가 아리아에 도전하다
촌구석 예술고등학교의 음악선생인 상진은 전학생 장호의 콩쿠르 지도를 떠맡는다. 교장 덕생(오달수)은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장호야말로 학교의 위상을 높일 재목이라고 치켜세우지만 상진의 눈에 조폭 무리들과 어울리는 장호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양아치일 뿐이다. 레슨 때마다 상진에게 번번이 무시당한 장호는 덕생의 배려(?)로 몰래 지역 콩쿠르에 출전하나 큰 망신만 당한다. 장호의 낙담과 실망은 그러나 상진에겐 또 다른 기회이자 가능성이다. 악보도 볼 줄 모르고 심지어 파바로티를 파파로티라고 알고 있는 장호의 안간힘을 곁에서 몰래 지켜보면서 상진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두 사람은 더 큰 무대를 위해 그토록 부르고 싶었던 노래 <네슨 도르마>를 꺼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