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얼굴을 보면 역사가 보인다
2013-01-15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관상> 한재림 감독

출연 송강호, 이정재, 백윤식, 김혜수, 조정석, 이종석 / 제작 주피터필름 / 배급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 개봉예정 하반기

한재림 감독이 1453년 계유정난(癸酉靖難, 1453년 단종 1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김종서 등 세 재상을 비롯한 정부 핵심인물을 죽이고 정권을 찬탈한 사건)을 파헤친다. 이미 물릴 만큼 많은 드라마와 캐릭터가 쏟아졌다고? 이건 좀 다르다. 수양대군도, 김종서도, 한명회도, 익히 아는 어떤 관련 인물도 <관상>의 주역은 아니다. 사건을 읽는 자는 이 거대한 흐름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오히려 희생양이 된 관상가다. 영화는 이 한 남자의 시선으로 역사의 소용돌이를 재구성한다. 순제작비 65억원의 대작. 연일 쏟아지는 폭설과 한파의 나날, 전국을 돌며 50% 촬영을 마친 <관상>은 올 하반기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이야기를 이끄는 큰 축이 계유정난이다. 조선사 중 가장 논란이 되는 사건이자 그만큼 영화, 드라마를 통해 여러 번 다뤄진 소재다.
=계유정난보다는 관상가가 역사의 소용돌이 속, 가장 극적인 순간에 들어간다는 데 호기심이 컸다. 익숙한 사건이자 이미 결과를 아는 이야기지만 관상가가 들어감으로써 영화적 서스펜스와 재미가 생기더라. <광해, 왕이 된 남자>나 <선생 김봉두>같이 캐릭터의 변화상을 통해 감동을 주는 것과는 다르다. 평범한 관상가가 그 시기를 거쳐가는 동안 권력과 힘, 역사와 운명의 실체를 보여주려 한다.

-일개 관상가가 바라보는 거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점은 무엇인가.
=원래 시나리오에서 70% 정도 수정됐다. 처음 시나리오는 주인공이 복수를 하는 이야기였는데, 난 가족을 위해 한양에 온 관상가가 진정한 성공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는 지점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사람들이 관상을 궁금해하는 이유는 결국 내가 돈을 벌 수 있을까,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한 욕망과 일치한다. 좋은 팔자, 아마 이것의 극대화가 왕이 아닐까. 수양 역시 왕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간들 중 한명이라고 봤다. 결국 마지막엔 이 모든 인물들에게 처연함이 묻어난다. 사람들이 말하는 성공이 커다란 역사 안에서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짚어보고 싶더라.

-계유정난 당일, 쿠데타의 묘사가 영화적 서스펜스를 보여주는 핵심이 될 것 같다.
=극의 서스펜스가 극대화되는, 클라이맥스가 될 부분이다. 초중반이 캐릭터들의 디테일한 이야기, 편하게 관객을 역사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실패와 비극이 포진한 뒷부분은 호흡을 길게 갈 거다. 단지 권력자들이 바라보는 권력 찬탈에 대한 부분이 아니고 내경(송강호), 팽헌(조정석), 진형(이종석) 이 세 인물이 깊숙이 관련돼 있다는 점을 묘사하려고 한다. 각자 다른 인물이지만 난 이 셋이 역사 안에서 하나의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고증을 바탕으로 했지만 사극의 세계를 창조한다는 건 SF 장르만큼이나 해석의 여지가 많다. <관상>의 비주얼 컨셉이 궁금하다.
=그 부분이 제일 즐겁고 신났다. 의상, 가옥 등 모든 세계를 만들 수 있었다. 아무리 SF라고 하더라도 그 시대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줘야 하듯 사극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실감이 최우선이었다. 내경이라는 관상가를 따라다니는 동안 관객 역시 그 세계 속에 살아봤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 고증에서 너무 벗어나지 않는 선만 지키되, 드라마적 흐름에 맞춰서 공간을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주로 옛날 사진을 많이 참고했는데, 사진들을 보니 디테일한 것들보다 당시를 살았던 인물들의 삶이 보이더라. 난 이 영화가 내경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남루한 어촌마을을 떠나 기생집으로, 김종서 집으로, 그다음 궁으로 간다. 공간이 점점 확장되면서 클라이맥스에선 권력의 최고점이 드러난다. 순차적으로 이 전개를 공간에 표현하려 했다. <연애의 목적>의 90%가 핸드헬드 촬영이었다면, 이번엔 안정적인 공간을 표현하기 위해 핸드헬드를 배제했다.

-관상가의 시점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것도 관건이다.
=고민이 많았다. CG의 도움도 받았다. 기본적으로 자연과 관상은 일치한다고 봤다. 자연의 느낌을 관상과 연결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예를 들면 김종서를 보면 높고 큰 산이 떠오른다거나, 내경이 문종의 죽음을 봤을 때 까마귀들을 보여준다든가 하는 비유가 사용됐다. 또 한 가지 플러스되는 건 송강호 선배의 연기였다. 표정이란 건 결국 디렉팅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단순히 말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걸 송강호 선배는 해내더라. 그는 가벼운 동시에 무거운 감정을 담아내는 내경의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유일한 배우다. 정말 대단한 배우라는 걸 다시 느꼈다.

-<도둑들> 못지않은 화려한 캐스팅이다. 송강호를 필두로 조정석의 감초연기, 백윤식의 무게감, 김혜수의 카리스마까지 가세한다. 그중 수양대군 역의 이정재 캐스팅은 기존 수양대군에 대한 해석에서 좀 동떨어진 모험처럼 보인다.
=수양대군의 당시 나이가 37살 정도다. 철없고 야망에 빠진 재벌 3세 같은 느낌. 왕족으로서 형은 죽고 하나 남은 조카는 어리고, 그런 와중에 자신한테 사람들이 몰려든다. 모든 게 쉬웠을 거다. 다 가진 사람이 야비해봤자 얼마나 야비했겠나. 수양을 보니 잘사는 사람의 무료함, 댄디한 느낌이 떠올랐다. <하녀>에서의 이정재 이미지가 떠오르더라.

-<우아한 세계> 이후 6년 만이다. <관상>을 떠나 준비 중이던 <트레이스>를 기다리던 팬들의 원성이 높다.
=6년이나 된 줄 몰랐다. 그동안 나는 쉬지 않고 꾸준히 준비해왔다 싶은데도 이렇게 됐다. 경험 없이 100억원대의 장르영화를 꾸리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 <관상>은 <설국열차> 때문에 송강호 선배의 스케줄이 밀리면서 오히려 준비할 시간이 생겼다. <연애의 목적>이나 <우아한 세계>가 살아남으려고 했다면, 지금은 계획하고 싸우는 느낌이다. 이번엔 사극이지만, 현실에서 벗어나서 살아보지 못한 곳을 간다는 점에서 SF 장르만큼이나 똑같은 호기심이 생기더라. 결국 역사극을 그려내고 싶다기보다 미래를 이야기하듯이, 새로운 사극을 만들어보고 싶다. <관상>에서 쌓은 경험을 토대로 다음 작품은 꼭 SF를 할 거다.

내가 왕이 될 수 있을지 봐주게

몰락한 양반의 아들로, 조선 팔도를 떠돌다 뛰어난 관상가의 능력을 갖게 된 내경. 수하인 팽헌과 조용히 칩거하던 중 기생 연홍(김혜수)의 술수로 우연히 한양에 입성하게 된다. 얼굴만 봐도 한 사람의 흥망성쇠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 때문에 내경은 수양대군(이정재)과 김종서(백윤식)의 권력 다툼에 휘말리게 된다. 정계로 진출하려는 아들 진형이 가세하면서 내경 가족의 운명은 파국을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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