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협(俠)은 무엇이고 정(情)은 무엇이냐
2013-01-15
글 : 주성철
사진 : 백종헌
<협녀: 칼의 기억> 박흥식 감독

출연 추후 공개 예정 / 제작 TPS컴퍼니 / 진행상황 상반기 크랭크인 목표

“세상 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과 사를 가름하느뇨.” 김용의 <영웅문> 2부 <신조협려>의 이막수는 뜨거운 불길 속으로 몸을 던지며 탄식한다. 작품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이며 ‘무협’의 본질이 무엇인지 새삼 질문하게 만드는 장면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프로젝트마켓(APM) 공식 프로젝트로 선정된 무협드라마 <협녀: 칼의 기억>을 준비하고 있는 박흥식 감독의 포부는 바로 그 ‘정’에 더해 세상을 어떻게 사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얼핏 리안의 <와호장룡>이나 진가신의 <무협>처럼 테크닉에 매몰되지 않은, 강한 서사의 무협영화들이 떠오른다. 그의 생각도 비슷하다. “‘협’(俠)이라는 글자는 ‘사람’ 인(人)과 ‘겨드랑이에 낄’ 협(夾)자가 더해진 글자다. 그것은 그 모양만으로도 약한 사람을 끼고 도는 행위이자 그런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그가 목표지점으로 삼은 대의는 바로 그 본질적인 ‘협’의 세계다.

박흥식 감독은 TV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2008)를 끝내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지난 2009년에는 <씨네21>과 당시 <협녀>라는 제목으로 신작 인터뷰도 가졌다(685호 특집 ‘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다’). 하지만 처음으로 합류했던 작가의 시나리오는 “장르적으로는 굉장히 충실하지만 내가 원하는 정서의 드라마로는 조금 부족”해서 ‘인디포럼2012’ 개막작이기도 했던 김고은 주연의 단편 <영아>를 만든 영상원 출신의 최아름 작가와 함께 다시 새로이 써나가기 시작했다. 최아름 작가와는 최근에 만든 옴니버스영화 <미안해, 고마워>(2011)와 <천국의 아이들>(2011)을 함께하며 호흡을 맞췄다. “이전 인터뷰 당시의 시나리오는 망설임 끝에 ‘고려 무인시대’라는 설정만 남기고 완전히 ‘포맷’했다고 보면 된다. 과거의 사건이 잉태한 두 여자와 한 남자의 비극적 관계, 그리고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대의’의 서사를 충실하게 살렸다”는 게 그의 얘기다. “이막수의 마지막 말을 가슴에 품고 멜로드라마의 정과 사랑, 그리고 더 나아가 정의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다”고도 덧붙인다.

<협녀: 칼의 기억>에서 무협 액션은 인물들의 감정을 운반하는 응축된 도구가 될 것이다. 말하자면 ‘칼의 기억’의 칼이 베고자 하는 것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공주> <사랑해, 말순씨> 등을 만들며 그가 늘 추구해왔던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다. 그 강한 드라마의 디테일과 감정 표현의 일부로서 액션을 다루고자 한다. 물론 장르영화를 기대하는 팬들의 심미안을 만족시키는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전제조건이다. “신재명 무술감독이 ‘검’에 굉장한 관심을 보여 만족스럽게 작업하고 있으며, 역시 김용 소설의 홍칠공 같은 유희적인 캐릭터나 초식의 습득도 중요하고, 유백의 거대한 궁과 아라비아 상인들이 오가던 벽란도의 풍경 재현도 중요한 볼거리가 될 것”이라는 그의 말은 장르적 테마 역시 충실히 따르겠다는 얘기다. 끝으로 이렇게 핵심을 정리했다. “두명의 여자가 한명의 남자를 죽여서 복수를 해야 한다. 그 복수가 완성되는 순간이 바로 이막수가 던진 말처럼 사랑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거스를 수 없다고 하는 운명과 당당히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미 머릿속에 완벽한 콘티가 그려진 듯한 그가 무림고수처럼 제스처를 써가며 거의 시를 읊고 초식을 선보이듯 영화를 설명할 때, 마치 중고등학교 시절 밤새 무협지를 읽어 내려가던 그 기분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출연이 결정됐으나 비밀에 부쳐진 두 여배우 외에 유백 역의 남자배우 캐스팅이 마무리되는 대로 곧 그 검이 바람을 가르기 시작할 테다.

대의를 저버린 복수의 칼을 받아라

민란이 끊이지 않던 고려 무신시대, 풍진삼협이라 불리며 상주 민란을 주도한 세명의 검객 풍천, 설랑, 덕기의 대의가 실현되는 순간, 덕기의 배신은 대사형 풍천을 죽음으로 몰고, 설랑은 덕기의 회유를 뿌리친 채 그의 딸 홍이를 데리고 사라진다. “너는, 아니 너와 나는 홍이 손에 죽는다”는 살인예고를 남긴 채. 18년 뒤, 벽란포구에 장님이 된 설랑이 두 아이와 함께 찻집을 연다. 설랑은 복수를 다짐하며 그때의 홍이였던 설희에게 검을 가르친다. 그러던 어느 날, 무인집정관 유백이 개최하는 무술대회가 열리고, 설희는 설랑의 명을 어긴 채 무술대회에 난입해 그곳에서 승승장구하던 율을 만나 겨루게 된다. 덕기라는 과거의 이름을 버리고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유백은 설희의 초식에서 과거 동지이자 연인이었던 설랑을 읽어낸다. 그렇게 유백은 설랑과 설희를 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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