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감독이 입을 열었다. <변호인>의 1천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되는 시점이 되어서야 양우석감독이 인터뷰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홍보 마케팅의 차원을 넘어 “오해와 편견이 여러모로 예상된 작품이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이야기한 다음 나서는 게 맞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전 MBC 프로덕션 영화기획실 프로듀서, 올댓스토리 창작본부 이사 등을 역임한 그는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한다면> <스틸 레인> 등 ‘웹툰 작가’로 이름을 알렸고 이제 <변호인>을 통해 ‘영화감독’이 됐다. 스스로 ‘재미없는 사람’이라 일컬은 그는 내내 신중한 태도로 자신의 영화와 ‘그’에 대해 얘기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변호인>이 엎어질 거라 예상한 사람도 많았지만, 결국 완성했다. 무엇보다 대단한 끈기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원래 영화감독이 아니었으니 준비하던 작품이 엎어진다고 해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든가…, 하여간 나는 잃을 게 없는 사람이다. (웃음) <변호인>은 영화가 아니면 웹툰으로도 완성하고 싶은 작품이었다. 제작 단계에서 여러 차례 위기도 겪었지만 송강호가 캐스팅되면서 탄력을 받았다. 그가 아니었으면 훨씬 적은 규모의 독립영화 형태로 완성됐을지도 모른다.
-그동안 놀라운 속도로 흥행하는 영화를 보면서 입이 근질근질하지는 않았나.
=개봉과 동시에 인터뷰에 나서지 않았던 것은 뭐라고 함부로 얘기하기가 조심스러워서였다. <변호인>이 필연적으로 껴안게 될 오해와 편견을 지금껏 극장을 찾아준 수많은 관객이 깨주셨다고 생각한다. 어쨌건 기분 좋은 소식들은 영화에서 언급된 불온서적인(웃음) E. 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의 판매량이 4배 이상 늘었다는 얘기들이다. 뭐랄까, 영화를 통해 단순한 사건의 재연이나 추억의 환기가 아니라 그 속의 ‘본질’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생각하면 뿌듯하기도 하다.
-그동안 철저히 뒤로 물러나 있었기에 감독 개인에 대한 궁금증이 많다. 과거 386 운동권 세대였는지, 혹은 ‘친노’ 성향인지.
=절대 운동권 학생은 아니었고, 이른바 열성적인 ‘친노’도 아니다. (웃음) 그냥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고 노무현이라는 개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지난 60년의 격동의 역사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통해 보인다고 생각한. 더 나아가 지난 80년대를 쌍둥이처럼 대표해서 보여주는 사람이 바로 노무현과 김재익 경제수석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은 전두환 대통령의 경제참모로 승승장구하며 청와대 내각에 있었고, 또 한 사람은 온갖 험난한 길을 자청해서 걸었던 부산의 인권 변호사였다. 또한 한 사람은 미얀마 아웅산묘역 폭발사건으로, 또 한 사람은 스스로 몸을 던져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 저 멀리 2000년대를 향해 가던 한국의 산업화와 민주화의 서로 다른 두 얼굴, 바로 5공화국을 경유하는 한국 현대사의 굴곡이 바로 거기서 보인다. 또한 그들은 엄혹한 신군부 시대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지켜낸 사람들이다. 그런 굳은 신념의 캐릭터들에 이끌린다.
-<변호인>의 성공은 <부러진 화살>(2011)과 <남영동1985>(2012), 그리고 <도가니>(2011)와 <26년>(2012) 같은 일련의 영화들의 영향관계 안에서 읽을 수 있다. 혹시 참고한 레퍼런스로서의 작품들이 있다면.
=먼저 프레드 진네만의 <사계의 사나이>(1966)의 토머스 무어를 떠올렸다. 천주교에 대한 신앙심이 두터웠던 토머스 무어는 헨리 8세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조언자였지만, 이혼을 원하는 헨리 8세의 이혼과 재혼을 승인하지 않았다. 헨리 8세가 스스로를 영국 천주교회의 수장으로 임명하려 할 때 그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모함을 당하면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법정 장면의 에너지라는 측면에서 롭 라이너의 <어 퓨 굿맨>(1992), 재벌기업에 맞서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마이클 만의 <인사이더>(1999)도 떠올렸다. 모두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들이다. 그리고 ‘동시대성’이라는 측면에서 언급한 다른 한국영화들과의 연관성은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라고 본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의 어떤 점에 끌렸나.
=국민들이 그에 열광한 원형적 내러티브는 <춘향전>이 아닐까 싶다. 그 삶의 입신양명의 행로가 이몽룡과 무척 비슷하다. (웃음) 이몽룡이 열악한 조건 속에서 과거에 급제하는 모습은 노무현이 상고를 나와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합격한 것과 닮았고, ‘암행어사 출두야!’라며 비리와 불의를 응징하는 모습은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그를 연상시킨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버리고 출마하는 등 주류를 쫓지 않고 스스로 고난의 길로 걸어들어가는 그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어서, 어느 순간 그와 관련된 모든 뉴스들을 본능적으로 스크랩하기 시작했다. 어떤 식으로든 언젠가 그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대선 후보로 나오고 대통령이 되면서는 다 끝이라고 생각했다. 뻔한 <용비어천가>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찾아온 2009년의 죽음…(잠시 침묵),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그래도 그를 영화화하려면 사후 10년이 지나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여러 젊은 친구들과 만날 기회가 생기면서, 그리고 구체적인 제안을 받으면서 현실화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의 접근법은 노무현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그 이해가 바로 지난 80∼90년대 한국 사회에 대한 ‘해석’이라고 생각했다.
-1981년 제5공화국의 군사독재 정권 초기 ‘부림 사건’의 전후 시기를 영화화하고자 마음먹은 이유는.
=어쩌면 80년대의 암울한 시작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인물과 시대를 함께 놓고 볼 때 노무현에게 보석처럼 빛나는 시간이 과연 언제일까 고민해봤다. 찰스 다윈에게 있어 갈라파고스 섬과 같은 시기라고나 할까. (웃음) 다윈이 우연한 계기로 그 섬에 머물던 시기는 불과 몇주밖에 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생명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고민한 결정적인 확신의 시간이었다. 내가 바라본 노무현의 다윈적 시간도 바로 그때였다. 부림 사건을 맡으며 변모했던 그 관성의 힘으로 이후 30년 넘게 간 게 아닐까 싶다.
-혹시 촬영을 전후해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적도 있나.
=부산 주변 지역으로 헌팅을 다니다가 들른 적이 있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만들기 전에 ‘당신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라고 인사드린다는 느낌으로 찾았다. 비록 픽션이 많이 들어가지만 당신의 빛나는 시기를 감히 영화화하는 것에 대해 마음으로라도 겸손하게 허락받고 싶은 심정이었다.
-흥행과 더불어 배우 송강호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직접 함께 일해본 소감은.
=오래전부터 연극의 3요소를 무대, 배우, 관객이라고 배웠는데 송강호는 배우 자체를 넘어 그 3요소를 다 갖춘 배우다. (웃음) 시나리오와 현장에 대한 적확한 이해와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눈, 그리고 진심어린 연기까지 거의 기적처럼 다 갖춘 배우다. 가장 놀라운 건 아까부터 줄곧 얘기한 그 오해와 편견 때문에 나 스스로 자기 검열하며 시나리오를 쓴 지점들이 있는데 ‘혹시 덜 쓴 것 아니에요?’라며 정확하게 짚어낼 때였다. 마치 내가 쓰다 만 것 같은 부분들을 온전히 살려낼 때가 있었다. 또한 개인적으로 행복했던 시간은 함께 법정 장면을 리딩하면서 대사를 매만져나갈 때였다. 내가 덩치나 얼굴이 좀 곽도원처럼 생겨서(웃음), 그와 맞부딪히는 법정 장면을 4, 5일 정도 함께 대사를 주고받으며 연습했다.
-아파트로 이사 가기 전 송우석 변호사(송강호)의 천장에 살던 ‘쥐’는 혹시 의도적인 설정인가.
=무의식의 반영일지는 모르지만(웃음) 명백히 아니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집도 그랬고 당시 멀쩡한 양옥집에 살던 사람이 아니면 다 그런 경험이 있을 거다.
-마지막 장면을 송우석을 변호하는 99명의 변호인 장면으로 마무리한 이유는.
=그 어떤 사람도 고문당한 진우(임시완)의 모습을 맞닥뜨리면 당장 피가 끓을 것이다. 화를 주체하지 못해 소란을 피우고 난리법석을 떠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밤새워 책을 읽고 날이 밝자마자 선배를 찾아가 질문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똑같이 흥분한다고 해도 그 ‘성찰’의 모습이 차이를 만든다. 1981년 부림 사건 이후 영화의 마지막 1987년 고 박종철군 추모대회에서 연행되어 대공분실에 구금되기까지, 그 자신의 변화를 7년 가까이 지속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신파를 위해 그 장면을 넣은 것이 절대 아니다. 자신을 비웃던 동료 변호사도 동조하게끔 만들 만큼 그는 성찰이라는 망치로 자신을 깼던 사람이다.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이 있다면.
=나의 지난 웹툰들을 본 사람들 중에는 ‘한 사람의 작품이 맞나?’ 하는 의문을 가진 이들이 많다. (웃음) 영화 역시 내 다양한 관심사를 풀어보고 싶고, 어쨌건 <변호인>보다는 가벼운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변호인>은 어떤 사이렌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 저마다의 자리에서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사이렌 버튼을 한번 눌렀고, 그 소리에 문득 멈춰 선 사람들이 감사하게도 내 생각보다 많은 동감의 목소리를 보내주셨다. 그 이후에는 버튼을 누른 나의 몫도 있고 소리를 들은 사람의 몫도 있다. 남겨진 여러 사람들의 몫이 행복하게 합쳐졌으면 좋겠다. 끝으로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화를 만들면서 그를 생각할 때마다 자동적으로 떠오른 시가 바로 ‘나무는 자기 몸으로 나무이다’로 시작하는 황지우 시인의 <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다. 모순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혔던 과거의 그로부터 여전한 모순의 시대를 사는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로 전해지는 대화가 아닐까 싶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온 혼으로 애타면서 속으로 몸속으로/ 불타면서 버티면서 거부하면서/영하에서 영상으로/ 영상 오도 영상 십삼도 지상으로/ 밀고 간다, 막 밀고 올라간다/ (중략)/아아, 마침내,/ 끝끝내./ 꽃피는 나무는 자기 몸으로/ 꽃피는 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