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보편타당하게 소통한다
2014-01-21
글 : 송경원
잘 만든 상업영화와 정치적 논란 사이, <변호인>은 어떻게 흥행했나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고 기대의 박수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어느 쪽도 이 정도의 폭발적인 반응까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이변이 없는 한 2014년을 장식할 첫 1천만 영화는 <변호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개봉 19일 만인 1월7일에 벌써 800만 관객을 돌파한 <변호인>의 기세는 개봉 3주차에도 123만명을 기록하며 수그러들 조짐이 없다. 게다가 800만 돌파 시점이 2013년 1천만 영화였던 <7번방의 선물>과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물론 역대 흥행 1위였던 <아바타>(최종 관객수 1362만명)보다 6일이나 빠르다. 설연휴까진 특별한 경쟁작도 눈에 띄지 않아 벌써부터 역대 최고 흥행작인 <아바타>의 기록을 갈아치울 것이란 예상마저 조심스레 나온다.

극장가에 불어닥친 <변호인> 열풍을 읽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오간다. 누군가는 시대정신의 대변이라 치켜세우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잘 만든 상업영화일 뿐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한다. 어떻게 보고 싶은가에 따라 흥행 요인 분석과 해답도 제각각이지만 그럼에도 몇몇 지점에서는 대략 의견 일치를 보인다. 영화 내적으로 보자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가 깊은 공감과 울림을 안겨준다는 점, 1980년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현재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강력한 기시감을 제공한다는 사실이 주로 거론된다. 물론 그 중심에는 고 노무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인권 변호사의 잘 다듬어진 성장드라마라는 평가가 있다. 할리우드 겨울 블록버스터들의 지속적인 약세와 더불어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가 극장부율 문제로 서울에서 상영되지 못하는 등 호재까지 겹치며 애초 예상보다 수월하게 많은 스크린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잘 익은‘ 공감’들을 추수하는 소통의 낫

정리하자면, 딱히 대적할 만한 영화가 없는 상태에서 송강호라는 신뢰할 수 있는 배우를 내세워 보편적인 공감과 재미를 이끌어냈다는 평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흥행한 영화에 대한 이러한 사후적 분석들은 흥행을 위한 필수조건은 될지언정 결정적 요소라 단언하기엔 망설여진다. 사실의 조각들을 모은다고 항상 진실의 그림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여기서 질문을 살짝 달리해보자. ‘<변호인>은 왜 흥행했는가’가 아니라 ‘2014년의 관객은 <변호인>의 부름에 어떻게 화답하는가’로. ‘왜’를 ‘어떻게’로 바꾸고 주체를 분명히 하는 것만으로도 <변호인> 열풍에 접근하는 시점은 상당히 달라진다.

<변호인>의 흥행을 이끌고 있는 관객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의미있는 지표들이 눈에 띈다. 우선 30, 40대 관객의 비율이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영화예매사이트 집계에 따르면 나란히 흥행 중인 <용의자>와 <어바웃 타임>의 40대 이상 예매율은 30% 초반인 데 반해 <변호인>은 3주 내내 40% 후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게다가 중/장년 관객은 가족과 함께 다시 관람하는 경우가 많아 주변 관객층까지 흡수하는 효과가 있다. 이는 20, 30대를 중심으로 초반 흥행세를 이어가다 500만명을 기점으로 중/장년층으로 확대되며 흥행에 쐐기를 박던 종래의 한국영화 흥행 패턴과는 다른 양상이다. <변호인>의 경우 초반부터 40대 관객이 높은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다른 연령층에서도 고른 예매을을 보이고 있고 3주차에 접어들어도 이같은 양상에 큰 변화가 없다. 말하자면 특정 세대가 초반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전 세대에 걸친 고른 관심과 반응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는 “노무현을 다뤘다고 하는 향수, 지지자들을 끌어들인 측면과는 별개로 <변호인>은 선이 굵은 선과 악의 드라마다. 굳이 실화가 아니라도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라고 평가했다.

<변호인>엔 그간 한국영화가 다뤄온 공권력의 무능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깔려 있다. 정확히는 학습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80년대 후반 싹을 틔운 이른바 ‘한국사회파영화’들은 코리안 뉴웨이브의 출현과 맥락을 같이했다. 요컨대 대중적이라기 보다는 작가색이 강한 의식 있는 영화였다는 말이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들어와서는 사회파영화들이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다변화하면서 대중영화 영역으로 적극 흡수되었고, 대중친화적인 소재로 변모한다. 우리는 <괴물>이나 <추격자> 속 무능력한 공권력의 초상을 통해 영화적 카타르시스와 답답한 현실의 단면을 동시에 맛보는 기이한 체험을 이어나갔다. 중요한 사실은 이 과정에서 관객 역시 대중영화가 사회적 소재를 녹여내는 방식을 함께 학습해나갔다는 점이다.

모두의 정의에서 피어나는 각자의 상식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지점은 영화 안팎의 온도 차다. 막상 영화를 본 관객은 ‘잘 만든 영화’라는 데 이견이 없고, 송우석이라는 인권 변호사의 성장담에 무리 없이 따라간다. 적어도 영화 속 특정 장면과 이야기 자체가 논란의 대상이 되진 않는다. 그런데 영화 바깥에서는 노무현을 소재로 삼았다는 사실을 둘러싸고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정치적 입장에 대한 찬반 논쟁이 벌어진다. 한 영화평론가의 블로그에서는 영화에 대한 정치적인 입장을 밝히라는 요구로 인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디 워> 때의 맹목적인 찬반 논쟁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지만 지금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바깥의 뜨거움보다는 안쪽의 평온함이다. 뜨거운 감자를 불편함 없이 관객에게 전달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혹은 <변호인> 내부가 뜨겁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변호인>에 대한 제작사의 태도에서 이에 대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다. 제작사는 철저하게 영화와 노무현과의 연결을 언급하지 않고 한 인권 변호사의 성장담에 초점을 맞추려 애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와 노무현을 연결시키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선을 그으려는 태도, 바로 거기에 열쇠가 있다.

<변호인>이 선택한 시점은 노무현 변호사가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화제의 사건 이전, 그러니까 인간 노무현이 인권 변호사 노무현으로 각성하는 시기다. 보편타당한 정의의 이야기. 하지만 이를 제시하고 소비할 때는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인 양 선을 그어준다. 영화를 그저 영화로 보고 싶은 사람은 보편타당한 이야기로, 실화와 연결해 해석하고 싶은 사람은 시대를 반영한 현실적인 이야기로 각자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것이다. <변호인>은 영화의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절대 다수의 만족지점을 찾아내려 애쓴다. 그렇다고 실화의 힘, 그러니까 노무현의 그림자가 전혀 작동하지 않느냐고 하면 그렇지 않다. 다만 그 활용방식이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주는 사실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영화 밖 논쟁이 아무리 뜨거워도 영화에 대한 평가가 안정되고 고를 수 있는 것은 이 영화가 취하고 있는 정치색이 없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선에 절묘하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대중영화적인 관점에서 소화된 사회적 소재의 활용. 2014년 한국 관객은 이러한 가공을 수차례 받아들여 왔고 익숙해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좌, 우를 기준으로 한 명확한 정치적 구분보다는 ‘상식’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념의 문제가 힘을 잃은 시대에는 옳고 그름에 관한 (각자의) 상식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변호인>은 이 지점에서 인간성을 건드리는 지극히 대중영화적인 관점을 취한다. 그리고 일부 관객은 그것을 현실 영역으로 받아들여 다시금 의미화한다. 이것이야말로 <변호인>이 30, 40대에서 다른 세대로 확장될 수 있었던 힘이며, 사회적 소재를 대중적으로 활용해나가는 방식이다. 아니, 확장이라기보다는 동시다발적인 반응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변호인>의 순항에는 열풍처럼 부는 바람 외에도 이같은 눈에 띄지 않는 시대적인 조류도 한몫하고 있다. 영화평론가 달시 파켓의 표현을 빌리자면 “특정 정치적 메시지나 희망보다는 주인공의 말과 열정을 통해 관객에게 힘을 주는 영화”이기에 세대 구분, 시대 구분 없이 보편적인 정의와 각자의 상식을 중심으로 한 소통이 가능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변호인>은 2014년 1월, 정권 말기가 아닌 ‘지금’이라는 시점이 의미를 극적으로 확장시키는 텍스트다. 한 영화관계자의 말처럼 “대선 뒤 다들 무산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만들어지고 개봉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이 영화는 도리어 정권 초반이기에 이토록 열렬한 호응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물론 영화는 영화일 따름이다. 동시에 정치란 가장 개인적이고 상식적인 곳에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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