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 에이지> <에픽> 시리즈와 <리오>를 만들며 애니메이션 업계에 파란을 몰고 온 제작사 ‘블루스카이 스튜디오’로부터 반가운 초대장이 도착했다. 3년간 심혈을 기울여 작업한 애니메이션 <리오2>를 전세계 기자들이 미리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리오2>는 2011년 전세계적으로 4억8500만달러라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흥행작 <리오>의 속편이다. 홈페이지에 명시된 스튜디오 설명이 인상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코네티컷 그리니치의 푸른 삼림이 우거진 곳에 있다고 하니 모두들 놀란다. 뉴욕에서 겨우 몇 발짝 안 되는 거리에 말이다.” 수백명에 달하는 애니메이터들의 터전인 스튜디오를 운영하자면 일정 규모의 부지가 확보되어야 한다. 땅값이 비싼 도심에 자리잡는 건 언감생심 힘든 일이다. 그러나 블루스카이는 뉴욕에서 불과 1시간40분 거리, 애니메이터들이 통근버스로 뉴욕에서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의 부자 동네에 자리한다. 이는 1996년 설립돼 근 30년간 흥행작을 내며 중소 애니메이션 회사로 탄탄하게 입지를 굳혀온 블루스카이의 승승장구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아마존 밀림으로
브라질의 강렬함을 그대로 재현한 애니메이션 <리오>를 떠올리며 스튜디오로 향했다. ‘리오행’ 버스는 지브리의 고양이 버스처럼 귀엽고 아기자기한 모습일 줄 알았는데 눈앞에는 <리오>의 파란 마코 앵무새 블루(제시 아이젠버그)와 쥬엘(앤 해서웨이)이 밀렵꾼에게 포획당할 때 갇혔던 철창 차 같은 육중하고 검은 차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아니나 다를까 옆의 기자가 “우리 지금 끌려가는 거 아니야?”라는 농담 섞인 제스처를 하며 버스에 올라선다. 한국을 비롯해 독일, 프랑스, 중국 등지에서 온 20명의 기자들을 실은 버스가 뉴욕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눈앞에 펼쳐지는 건 3월을 무색게 하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바닥을 뒤덮은 눈밭이다. 버스가 닿은 곳은 장식 하나 없는 회색빛의 육중한 건물. ‘GREENWICH AMERICAN CENTRE’라는 금빛 간판이 이곳을 설명하는 전부였다. 보안검색을 마치고 2층으로 들어서자 도토리를 옆구리에 움켜쥔 채 경계 태세를 취한 <아이스 에이지>의 일등공신인 송곳니 다람쥐 스크랫의 입상이 보인다. 블루스카이 입성을 일러주는 마스코트다. 애니메이터들 각자의 공간은 각종 포스터, 피겨 등을 총동원해 개성 있게 꾸며져 있고, 복도 벽면에는 블루스카이의 차기 프로젝트인 스누피 탄생 65주년 기념작인 <피너츠>의 스케치가 붙어 있다.
블루스카이의 주인이 되어 기자들을 반겨준 이는 <리오> 시리즈를 연출한 카를로스 살다나 감독이다. 상영관 입구에 선 그는 기자들과 한명한명 인사를 나누고, 3D영화 <리오2>를 최적의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자리까지 안내해주는 세심한 매너를 보여줬다. 전체 101분 분량의 본편 중 이날은 살다나 감독이 추려낸 45분간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상영됐다. <리오>의 도심에 이은 <리오2>의 무대는 거대 밀림 아마존이다. 도심에서 인간처럼 각종 문명의 이기를 즐기며 살아가던 푸른 마코 앵무새 블루와 그의 아내 쥬엘, 그리고 전편의 마지막에 둘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아기 앵무새 세 마리가 주요 캐릭터다. 가장으로 평범한 생활을 영위하던 블루가 가족과 함께 도심을 떠나 아마존행을 결심한 건 바로 멸종 위기에 처한 자신들과 똑같은 푸른 마코 앵무새가 아마존에 서식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다. 거대한 정글이 주 무대인 만큼 인물들의 액션은 더 커졌고, 배경은 한층 더 화려해졌으며, 브라질의 토속 리듬은 한층 더 강화된 맞춤형 구조를 갖췄다. 전편을 능가할 속편 무대를 고려해볼 때 이 정도 스케일의 도화지가 과연 존재할까 싶을 정도의 선택이지 싶다.
살다나 감독이 <리오2>를 통해 강조하는 것도 바로 아마존의 무궁무진한 아름다움일 테다. 정글에 서식하는 이국적인 생명체들, 총천연색의 기괴한 꽃들, 각종 녹색식물들을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것이야말로 이번 작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관건이다. 블루스카이 10년 CGI의 기술력이 이 핵심과제를 위해 모두 투여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 속 아마존이 단순히 스케일을 보여주기 위한 배경으로서의 역할만 하지 않는다. 이번 영화의 갈등 역시 아마존에서 비롯된다.
브라질의 혼을 담아 유혹하다
어릴 적부터 사람 손에서 길러져 TV와 아이폰, 팬케이크를 즐겨먹는 ‘사람 같은’ 도심형 앵무새 블루에겐 야생의 아마존은 더없이 낯설고 위험한 두려움의 땅이다. 자신이 태어난 곳, 새들에게 안성맞춤인 대자연을 그리워하는 아내 쥬엘의 고집에 못 이겨 따라나선 길이지만, 블루의 아마존 적응기는 시작부터 영 만만치가 않다. 게다가 호랑이 같은 쥬엘의 아버지 에두아르도(앤디 가르시아)와 쥬엘의 어릴 적 친구이자 심지어 자신보다 남성적으로 백배 멋진 마코 앵무새 로베르토(브루노 마스)가 사사건건 참견하며 블루를 못살게 군다. 자녀들의 교육 문제에서도 둘의 의견차가 불거진다. 아기 새들이 도심에서 제대로 된 혜택을 받으며 자라길 원하는 아빠의 교육관과 도심에 익숙해져 ‘새로 살아가는 법’, 즉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릴까봐 걱정하는 엄마의 교육관이 충돌한다. 아마존을 바라보는 이 같은 시각 차이로 블루와 쥬엘도 불화를 겪게 된다. 밀렵 위기에 처한 블루와 쥬엘의 상황을 통해 두 남녀 새의 러브 스토리에 주목했던 전편과 달리 이제 아마존에 간 <리오2>는 가족의 주거와 교육 환경, 부부의 관계를 고심하는 ‘패밀리 무비’로 일대 변환을 하게 된다.
물론 살다나 감독이 엄선해온 푸티지 영상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리오2>의 화려한 액션 시퀀스였다. 전편에서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던 리우데자네이루의 카니발 축제 장면 대신 <리오2>의 문을 여는 것은 도심의 새해맞이 행사다. 어느 도시나 새해맞이 행사는 있지만 브라질의 새해맞이 행사는 시끌벅적하기로 유명하다. 12월31일, 43도를 넘나드는 살인적 더위 속 바닷가로 몰려온 들뜬 군중. 열기로 가득 찬 그곳에 도심의 모든 새들이 한자리에 모여 뮤지컬 장면을 연출하는데, 이 한 장면만으로도 전편의 카니발 축제를 능가하는 재미가 가득하다. 특히 2014 브라질월드컵에 대처하는 살다나 감독의 자세를 보여주는 마코 앵무새들의 공중 축구 장면은 <리오2>의 흥미를 배가하는 명불허전이다. 이 장면은 사실 <리오2> 제작진이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자 까다로운 애증의 장면으로 기억된다. 작업 시간이 엄청난 데다 단 몇초간 펼쳐지는 축구시합 장면에만 1주일 이상이 소요됐다고 한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나고 자란 살다나 감독에게 <리오> 시리즈는 브라질의 문화를 전파할 적극적 시도다. 그가 시리즈의 차별점이자 브라질의 문화를 소개할 정수로 여기는 핵심 요소는 브라질의 혼이 깃든 음악이다. 음악이야말로 <리오> 시리즈의 피와 뼈를 움직이게 하는 DNA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전편에 선보인 보사노바와 삼바에 이어 살다나 감독이 선택한 음악은 브라질 북부와 북동부의 혼을 담은 리듬과 타악기 연주다. 새로운 비트의 음악이 가미된 뮤지컬 장면들이 한껏 흥을 불사른다. <리오2>가 어떤 형태로 완성될지는 101분의 영화를 모두 뜯어본 뒤에 가능할 테다. 하지만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관객이 각자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즐거움을 찾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이는 고퀄리티의 영화임엔 분명하다.
“아마존 묘사에 모든 기술력이 사용됐다”
<리오2> 카를로스 살다나 감독
“스튜디오에서 한국 스탭들을 혹시 만났나? 블루스카이에는 정말 천재적인 한국 애니메이터들이 많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카를로스 살다나 감독의 목소리 톤이 한층 높아진다. <리오2>의 라이팅 부문을 담당한 한국인 키스탭 성지연씨가 아마존 묘사에 얼마나 큰 공을 세웠는지 거듭 강조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이번엔 아마존으로 갔다.
=<리오>와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가고 싶었다. 1편이 도시를 다루는 싸움이었다면, <리오2>의 도전 지점은 아마존이었다. 아마존은 거대하고 다채로운 공간이다. 다른 나라 사람들뿐만 아니라 브라질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신비한 곳이다. 나 역시 브라질에서 태어났지만 가본 적 없고 생소한 공간이다. 그렇지만 아마존이라는 풍성한 밀림의 공간이 비주얼뿐만 아니라 음악적 새로움을 펼치기에도 안성맞춤의 공간이라고 확신했다.
-선뜻 묘사하기 힘든 공간이다. 실제 아마존에 대한 조사도 방대하게 진행됐을 것 같다.
=자료를 수집하는 데 의존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아마존에 대해서는 사전에 많은 조사가 필요했다. 실제 가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더라. 훨씬 독특한 공간이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아마존의 땅과 하늘 위로 올려다본 칼라풀하고 밝은 하늘의 색감을 애니메이션에 고스란히 살리고 싶었다.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캐릭터의 활동 공간을 나누었다. 악당 나이젤이 어둡고 칙칙한 땅을 배경으로 활동한다면, 파란 마코 앵무새들은 샹그릴라처럼 밝은 하늘을 주요 무대로 배치했다. 두 세계를 연출한 거다.
-아마존을 표현하는 데 블루스카이의 기술력이 집대성됐다. 어떤 점이 어려웠나.
=워낙 광활한 배경이다 보니 표현이 쉽지 않았다. 여러 부분을 연구하고 하나로 합쳐서 아마존을 탄생시켰다. 실제 아마존의 나무들을 합쳐서 <리오2>만의 아마존을 만들었다. 광활한 배경이다 보니 표현이 쉽지 않았다. 아마존의 여러 지역을 연구하고 하나로 합쳐서 <리오2>만의 아마존을 탄생시켰다. 아마존을 묘사하는 데 블루스카이의 기술력이 모두 사용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리오>로부터 3년이 지났지만, 그사이 엄청난 기술적 발전이 있었다. 영화를 보면 이 부분이 <리오2>의 전체적인 퀄리티 향상에 얼마나 많은 기여를 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이스 에이지>부터 <리오> 시리즈까지 지구온난화, 밀렵, 아마존 생태계 파괴에 대한 메시지를 빼놓지 않는다.
=이번 작품 역시 <아이스 에이지>와는 다른 방식이지만 환경에 대한 위험 경고가 들어 있다. 아마존은 전세계의 생태계와 마찬가지로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다. <리오2>의 주 공간인 아마존이 새들의 공간으로 묘사되고, 결국 마지막에는 새들이 자신들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가 되는 것도 파괴되는 아마존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고 싶어서다. 인간 캐릭터 린다(레슬리 만)과 툴리오(로드리고 산토로)는 전편에 이어서 이번에도 새들을 보호하는 환경보호자의 역할을 하게 된다. 블루와 가족간의 소통이 주를 이루지만, 결국 아마존을 위협하는 환경에 관한 문제는 <리오2>의 저변에 깔려 있는 근본적 문제다.
-3편 제작 계획은.
=3편을 제작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일단 2017년 개봉을 목표로 황소를 소재로 한 <더 스토리 오브 퍼디난드>의 시나리오를 작업 중이다. 역시 무척 재밌는 작업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