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등급은 시민이 정하자
2015-03-03
글 : 박주민 (변호사)
사진 : 백종헌
현 등급분류제와 영화제 상영작 등급분류 면제추천 개정의 문제점
최근 영진위(사진)가 영비법 관련 규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관련 규정을 개정해 영화제 상영영화의 (관람) 등급분류를 면제하는 대상영화의 폭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영화인들이 영화제 출품을 거부하려는 등 크게 반발하고 있다. 영화인들은 기존의 영화등급분류제도가 영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측면이 있는데 영진위가 추진하려는 개정이 이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영화에 대한 등급분류제는 미국 영화산업이 1950년대에 확립한 민간자율의 사전규제방식에서 연유한다. 우리나라에는 오랜 기간 지속되던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제도가 1996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검열에 해당하기에 위헌’이라고 결정된 후 1997년 4월10일 개정된 영화진흥법이 심의기관인 한국공연예술진흥위원회가 등급을 부여하는 ‘상영등급부여제’를 신설하면서 도입되게 된다. 물론 이 상영등급부여제는 등급을 주지 않음으로써 상영 자체를 막을 수 있는 ‘등급분류보류제’를 두고 있어 사실상 검열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다시 2001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판정된다. 이후 2002년 1월26일 개정된 영화진흥법은 등급분류보류제도를 폐지하고, ‘제한상영가’ 등급을 새로 두는 것으로 제도를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표현의 자유 침해하는 등급분류제

위와 같은 등급분류제도의 연혁을 보면 현재의 제도는 문제되어왔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 가능성’을 상당히 덜어낸 제도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에는 여전히 문제가 남아 있다. 먼저 모호하고 자의적인 등급분류 기준과 그 적용이 문제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10∼11년 한국영화의 결정등급에 따르면 전체 관람가 등급을 신청한 편수는 모두 68편이나 실제 전체 관람가로 등급분류된 작품은 42편(62.8%), 12세 이상 관람가는 20편(29.4%), 15세 이상 관람가는 5편(7.4%), 청소년 관람불가는 1편(1.5%)으로 나타났다.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신청한 편수는 52편이었으나, 실제 12세 이상 관람가로 등급분류된 작품은 22편(42.3%)에 불과하고 나머지 22편은 15세 이상 관람가(42.3%)로, 6편은 청소년 관람불가(11.5%) 등급으로 분류되었다.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신청한 편수는 모두 66편이었으나, 15세 이상 관람가로 분류된 작품은 40편(60.6%)이고, 24편(36.4%)은 청소년 관람불가로, 1편은 제한상영가(1.5%)로 등급이 분류되었다. 이처럼 창작자의 희망 등급과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등급심의 결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영등위가 그동안 구체적인 심의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모호하고 자의적인 심의 기준으로 관객의 볼 권리가 제한받고 있으며 이에 대한 관객과 창작자의 불만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또한 창작자가 심의를 의식하여 자신을 스스로 검열하게 되는 등 심대한 위축효과가 초래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제한상영가라는 등급의 존재이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 및 광고를 할 수 있다. 제한상영관이 일반인이 쉽게 접근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있다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 것이 특별히 문제는 안 될 것이나 상황은 그렇지 않다. 제한상영관은 2004년에 두곳이 문을 열었으나 2008년에는 한곳으로 줄었고, 지금은 한곳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이 등급을 받은 영화는 형법상 처벌되는 음란물이 아님에도- 등급보류제도에서 등급을 받지 않은 것처럼- 성인이 돈을 내고서도 볼 수가 없다. 그리고 등급분류가 국가권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 역시 문제로 지적되어오고 있다. 국가권력이 모호하고 자의적인 등급분류 기준이나 특정 영화를 접근할 수 없게 만드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이용해 언제든지 자신에 대한 정치적 비판을 담고 있는 영화를 사회적으로 격리시킬 수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사용되어왔던 것이 바로 등급분류심사 대상 제외 영화를 정하고 있는 영비법 제29조 제1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영진위가 이에 관한 내부 규정을 개정하여 등급분류심사 대상 제외 영화의 폭을 좁히겠다고 나선 것은 등급분류제의 문제를 완화할 수 있는 숨구멍을 아예 막아버리는 행위인 셈이다. 영화인들로서는 자의적인 등급분류에 의해 자신이 만드는 영화가 햇빛조차 못 보는 상황이 더욱 빈발할 것이라는 우려를 가지게 된 것이다. 물론 영비법 제29조 제1항과 그 관련 규정을 그대로 둔다고 해서 위에서 살핀 등급분류제도의 문제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간자율등급분류제도의 필요성

이에 이번 논란을 계기로 좀더 본질적으로 현행 등급분류제도를 개선할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행 등급분류제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민간에 의한 자율적 등급분류제도이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민간자율등급분류제도’라는 것은 단순히 등급분류의 주체만 국가권력에서 민간으로 바꾸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권력에 의해 이루어져왔던 등급분류 과정이나 등급분류 기준 제정 과정에 ‘광범위한 시민참여’가 보장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등급분류 기준의 제정과 등급분류 과정에의 시민 참여라는 점에서 미국과 일본의 등급분류제도와 구별된다. 미국과 일본은 일찍부터 민간이 자율적으로 영화에 대한 등급을 부여하는 제도를 사용해오고 있다. 그러나 이때 민간이라 함은 메이저 영화제작사나 유통사를 중심으로 한다. 그래서 메이저 영화사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등급을 받기 위해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 빈번히 문제되곤 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메이저 영화사 등이 아닌 일반 시민들의 폭넓은 참여를 보장하여 소수의 전문가나 기업들의 이해가 아니라 다양한 시민들의 성향과 취향 그리고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민간이 자율적으로 등급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의문은 ‘영화가 영상을 이용한 자극의 직접 전달을 통해 관객을 크게 자극하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두려움에 기인한다. 또 위험한 매체는 국가권력이 통제해야 한다는 오랜 상식에도 기반하고 있다. 그러나 비슷한 시각매체이며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는 방송의 경우 방송사가 자체심의를 하고 있고 국가는 사후심의만 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이런 의문은 우문(愚問)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영화 상영관이 아닌 각종 영화제의 등장과 성공은 극장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기준으로 영화를 분류시키고자 하는 현행 영화등급분류제도에 대하여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든다.” 영진위 영상산업정책연구소가 2008년에 내놓은 보고서의 한 구절이다. 이미 영화에 대한 등급분류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위 연구소는 “등급분류 대상이 확대될 경우, 전량 사전심의를 통해서는 해결하기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자율규제 및 사후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해결책을 제시했었다. 그런데 최근 영진위는 예전에 본인들이 하고 있었던 고민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대를 거스르는 움직임은 당장은 한국영화 발전의 토대가 되고 있는 영화제의 독립성을 훼손함으로써 영화제를 죽일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영화 자체를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가 죽으면 또 다른 표현행위들도 위축될 것이다. 사회를 병들게 하는, 시대를 거스르는 이런 시도는 즉각 중지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이번 논란을 계기로 그동안 등급분류제도의 문제로 지적되어왔던 부분들에 대한 해결책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