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입맛에 맞는 영화만 지원하겠다?
2015-03-03
글 : 원승환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사무국장)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과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폐지가 독립영화에 끼치는 영향
독립예술영화전용관 아트나인.

지난해 9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의 재공모 심사 결과는 해당 사업 개편의 신호탄이었다. 이미 한 차례 공모됐다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심사 결과가 반려되고 재공모된 결과는 대구 동성아트홀 등 5개 지역 예술영화관의 탈락이었다. 영진위의 입장은 “상급 기관으로부터 지역극장의 수입이 지원금보다 적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잠재 관객 개발을 위해 극장 시설, 접근성 등 환경을 주요 기준으로 선정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1월23일,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 개편을 위한 비공개 간담회가 영진위의 주최로 개최됐다. 이 자리에서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과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개봉을 지원해온 다양성영화 개봉 지원 사업을 폐지하고, 신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협조를 당부했다. 새롭게 제안된 사업은 ‘한국예술영화 좌석점유율 보장 지원’이다.

<다이빙벨>은 왜 인디플러스에서 상영되지 못했나

‘한국 예술영화 좌석점유율 보장 지원’ 사업의 지원 대상은 ‘한국 예술영화 작품별 배급사’이며, 방식은 ‘공모심사로 선정된 위탁 단체를 통해 예술영화 유통•배급’을 지원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연간 총 26편의 영화를 선정해 3400여만원을 개봉 비용으로 지원하고 비멀티플렉스 및 지역 멀티플렉스(아트하우스, 아르떼 등은 제외)를 각각 15개씩, 총 30개의 스크린을 확보하여 안정적인 상영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비멀티플렉스와 지역 멀티플렉스는 각각 매주 이틀과 하루씩 선정된 영화를 상영하게 되는데, 이를 조건으로 비멀티플렉스에는 좌석 100석 기준으로 15%, 지역 멀티플렉스에는 20%의 점유율에 해당하는 금액이 지원된다. 영진위는 이 개편을 통해 예술영화 상영 스크린이 확대되고, 관객의 최소관람기회가 보장되며, 예술영화 개봉 지원 편수와 지원금도 증액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말 그럴까?

영진위의 계획대로 사업이 개편되면 2002년 시작되어 13년간 집행 되어온 예술영화전용관에 대한 지원 사업은 사라지게 된다. 개편안에도 영화관에 대한 지원이 포함되어 있지만, 두 지원의 성격은 완전히 다르다. 현재 정책은 연간 상영일수의 60%에 해당하는 날짜만큼 ‘자율적으로’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에 대해 지원하는 것이지만, 개편안은 특정영화를 상영하는 조건에 따른 지원이다. 이는 민간 영화관의 작품 선택에 정책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에 참여하는 영화관의 경우 연간 상영일수의 1/3에 해당하는 104일간의 작품 선정의 자율성이 상실된다. 지원을 빌미로 민간 영역이 지원기관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지원을 빌미로 민간 영역이 지원기관의 통제하에 놓이게 되는 것은 독립•예술영화 배급사도 마찬가지다. 개편안은 26편의 영화를 선정해 상영관과 상영일정까지 정해주는 방식이다. 선정된 26편의 영화에 한해서는 조금 더 나은 배급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반대로 선정에서 배제된 영화는 배급의 기회가 더욱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재는 개봉 지원을 받지 않은 영화라 하더라도 예술영화관의 자율적인 작품 선정에 따라 개봉할 수 있다. 하지만 개편이 되면 이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질 것이다.

이와 함께 개편안의 지원작 선정이 특정한 경향성을 배제하는 형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지 못한 <다이빙벨> 같은 영화가 지원작 선정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싶지만, 최근 다른 문화예술 분야의 일들을 상기해보면 기우만은 아니다. 지난 1월21일 문화체육관광부의 ‘2015년도 세종도서 선정사업추진방향’의 문학 분야 우수도서의 선정 기준이 공개되면서 문학 표현의 자유에 대한 통제 여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이런 시도가 영진위의 개편 정책하에서 작품 선정을 할 때 재현되지 않을 것이라는 보 장은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영진위는 지난해 10월 직영 영화관 인디플러스에서 <다이빙벨>이 상영되는 것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수습이 완료되지 않았고,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국민적 논란이 분분한 상태이며, 진상규명이 진행 중인 상황이므로 공적기금으로 운영되는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로 저지한 바 있다.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예술영화 유통 활성화는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정책 과제임은 분명하다. 예술영화관, 독립•예술영화 배급사 등은 모두 이에 공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책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

지금까지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 스크린 확보’라는 방식으로 유통 활성화를 도모해왔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명백한 한계가 있다. 예술영화전용관은 다 합해도 50개에 불과하다. 이는 2014년 결산 기준 총스크린 2281개의 2% 남짓이다. 2%가량의 스크린만으로는 유통 확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접근 방향이 전면적으로 재고되어야 한다. 2014년 독립•예술영화 시장의 흥행작들은 대부분 150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상영됐다. 관객을 만날 충분한 스크린 확보가 유통 활성화의 기본 요건인 것이다. 하지만 개편안은 고작 30개 스크린에서의 일부 상영만을 보장하고 있을 뿐이다. 진심으로 예술영화의 유통 활성화를 꾀한다면, ‘전용 스크린’이라는 명제에 얽매이지 말고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는 방식의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게다가 2014년은 CGV라는 거대 상영업자가 배급업을 수직계열화하는 방식으로 독립•예술시장에 진입해 단시간에 시장을 지배하는 변화도 있었다. 독립•예술영화 시장 생태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거대 사업자의 무리한 시장 진입과 지배를 견제하고, 다양한 사업자가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도 절실하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계속 누락되고 있다.

문화다양성 확보의 최후 보루, 예술영화관

기존 정책들을 변화하는 시장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예술영화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의 경우, 예술영화관이 유지, 발전할 수 있도록 개편,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예술영화관의 의의는 시장의 성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술영화관은 영화와 문화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최후의 보루다. 수많은 독립•예술영화가 관객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최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등 거대 사업자가 외면한 영화가 관객과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모두 예술영화관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가치와 역할을 인정하고 예술영화관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지난 2월11일에는 지역 최초의 독립영화전용관인 오오극장이 대구에서 개관하기도 했다.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현재의 문화 환경을 바꿔가겠다는 의지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민간의 노력을 지원하고 견인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다양성영화 개봉지원 사업도 마찬가지다. 이 사업은 배급사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독립•예술영화 제작자에 대한 지원으로 기능했다. 시장의 적극적인 선택을 받지 못한 많은 영화들이 지원을 통해 배급의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이뤄지는 사업에 허점이 있다면 이를 보완하는 형태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멀티플랫폼 시대에 걸맞게 영화관 배급 이후 디지털 콘텐츠 시장에서 독립•예술영화가 보다 활발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 또한 강화되어야 한다. 지난 1월23일, 영진위의 비공개 간담회에 참여한 예술영화관 운영자, 독립•예술영화관 배급사 등은 한목소리로 정책 개편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예술영화 유통 환경의 변화에 따른 정책 개편에는 동의하지만 개편 방향은 좀더 심사숙고되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정책 개편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