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추락하라 그리하면 비상하리니
2015-03-12
글 : 장영엽 (편집장)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에 시선이 쏠리는 이유

도대체 어떤 작품이 탄생할 것인가. 지난 2012년, <버드맨>의 제작 소식이 처음으로 들려왔을 때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바로 이런 것이었을 거다. 당대를 풍미했던 슈퍼히어로영화의 주인공이었으나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져 퇴물배우가 되어버린 남자. 그 남자가 자신의 커리어를 되찾기 위해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을 제작하려 한다. 이것이 당시까지 알려진 <버드맨>의 기본 줄거리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고개를 갸웃하게 한 건 코미디 장르로 알려진 이 영화를 멕시코의 중견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연출한다는 소식이었다.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 <바벨>, 이른바 ‘죽음 3부작’이라 불리는 그의 전작들은 파괴적 에너지와 상실감으로 가득한 작품이었으며 <21그램>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한 뒤에도 이냐리투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보다 국제영화제 관계자들이 더 사랑하는 이름이었다. 슈퍼히어로와 코미디. 할리우드 상업영화를 성공적으로 견인하는 가장 손쉬운 질료이자 <버드맨>이 태생적으로 지닌 이 두개의 키워드는 당시까지만 해도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단어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있을 곳은 이 시궁창이 아냐”

하지만 불과 3년 만에 이냐리투는 모두의 우려를 찬사로 바꿔놓았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대 수혜자가 된 <버드맨>은 <비우티풀>(2010)로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 듯 보였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성공적인 복귀를 알리는 작품이다. “멜 브룩스와 존 카사베츠, 테리 즈위고프가 슈퍼히어로영화를 공동연출한다면 아마 <버드맨> 같은 작품이 나올 것이다”라는 <토털필름>의 말처럼, 이냐리투가 빚어낸 전직 슈퍼히어로의 초상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21세기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신경증적인 인물들, 자조와 자학의 순간들을 비집고 예기치 못하게 피어나는 희망의 전조는 <버드맨>을 “기묘하고 아름다우며 독특한 영화”(<시카고 선 타임스>)로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버드맨>은 팬티만 입은 채 공중부양 자세로 명상에 잠긴 남자와 건물 옥상을 점령한 거대한 익룡, 도시 한가운데로 내리꽂히는 화염과 새 가면을 쓴 슈퍼히어로가 하늘을 나는 장면들이 어떻게 다르게 활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재기 넘치는 대답이기도 하다.

3일 뒤 자신의 첫 연극을 브로드웨이에서 선보이게 되는 한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의 이름은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그는 왕년에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 영화 <버드맨>으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지만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 빠르게 잊혀져갔다. 리건은 레이먼드 카버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제작하고 그 자신이 주연을 맡아 다시금 대중의 주목을 받길 원하지만 상황은 자꾸 그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는 조명에 맞아 실려가고, 그를 대신해 투입된 연기파 메소드 배우 마이크(에드워드 노튼)는 제멋대로 굴어 리건의 혼을 쏙 빼놓는 동시에 배우로서의 그의 입지를 위협한다. 제작자(잭 갈리피아나키스)는 돈이 없다고 투덜대고, 비평가는 ‘근본 없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리건이 연극을 올리는 것을 탓하며 펜으로 그를 무너뜨리겠다고 말한다. 약물중독으로 재활치료까지 받은 딸 샘(에마 스톤)은 리건의 공연을 함께 준비하며 다시 약에 손을 댄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혼자 있을 때 머릿속에서 맴도는 ‘버드맨’의 목소리가 점점 자주 들려오기 시작한다. “넌 무비스타였어. 기억나?” “우리가 있을 곳은 이 시궁창이 아냐.”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는 남자의 마음을 뒤흔들어놓는 하나의 목소리. <버드맨>의 출발지점은 실제로 감독 자신의 머릿속에서 들려오던 이 ‘목소리’였다고 이냐리투는 말한다.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과정은 내게 늘 고통을 안겨줬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늘 더 많은 것을 자신에게 요구해왔다. 그런 태도는 만성적인 불만족을 유발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개똥 같다고 생각하게 됐다.” 작품을 거듭할수록 지쳐가던 이 예술가에게 언제부턴가 또 다른 자아를 가진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이냐리투는 스스로 그 목소리를 ‘심판관’(The inquisitor)이라 부르게 되었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든 그 목소리는 마치 내가 지옥불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명상을 해왔고, 나의 인생 내내 날 괴롭혀온 이 목소리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그것을 깨닫는 과정이 바로 이 영화의 출발점이 됐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심판관’을 두고 있다.”

무지의 예기치 못한 미덕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또 다른 자아. 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소재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이냐리투는 진짜 ‘배우’로 거듭나려는 왕년의 무비스타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역할을 실제로 ‘왕년의 무비스타’였던 마이클 키튼이 맡는다는 점이 재미있다. 잘 알려졌듯 그는 DC의 대표적인 다크 히어로 <배트맨> 프랜차이즈의 주인공이자 팀 버튼의 페르소나였지만 90년대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을 내놓지 못했다.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그가 리건 톰슨으로 분해 배트맨과 영락없이 닮은 ‘버드맨’의 포스터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키튼의 전사(前史)를 알고 있는 이들에겐 보다 다층적으로 다가온다(지나치게 진지한 ‘버드맨’의 목소리와 말투 또한 배트맨의 그것과 노골적으로 흡사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버드맨>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우연이라기엔 너무도 직접적으로 21세기 슈퍼히어로 블록버스터와 관련을 맺고 있다. ‘배트맨’이었던 마이클 키튼과 더불어 그와 묘한 신경전을 거듭하는 마이크 샤이너 역의 에드워드 노튼은 <인크레더블 헐크>(2008)의 ‘헐크’였고, 리건 톰슨의 딸로 출연하는 에마 스톤은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여자친구였다. DC와 마블코믹스 원작의 프랜차이즈물에 두루 출연했던 이들의 이력 덕분에 <버드맨>에는 종종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에마 스톤이 뉴욕의 마천루가 보이는 고층 옥상의 건물에 발을 걸치고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을 때, 마치 어디선가 스파이더맨으로 분한 피터 파커가 나타나 손에서 거미줄을 내뿜으며 그녀를 구출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이다. “<버드맨>을 촬영할 당시, <슈퍼맨> 전광판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또 에마와 에드워드가 극장 옥상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촬영할 때,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톰 행크스가 출연하는 브로드웨이 연극 <러키 가이>의 프리미어가 열리고 있더라. (중략) 얼마나 재미있나. 할리우드를 잠시 떠나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톰 행크스의 상황이 <버드맨>에서 정확히 리건 톰슨이 처한 상황과 같았기 때문이다.” 연기파 배우와 무비스타의 경계가 흐릿해진 21세기 할리우드의 생리를, 이냐리투는 <버드맨>의 다층적인 서사와 웃음을 위한 질료로 사용한다. 우디 해럴슨과 마이클 파스빈더, 제레미 레너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실명을 언급하며 쓴웃음을 유발하는 장면도 그같은 맥락으로 기능한다.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버드맨>의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영화에서 리건이 제작 중인 연극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도 적용된다. 레이먼드 카버의 동명 단편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을 준비하며 리건은 점차 극중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나는 왜 항상 사랑을 구걸해야 하지? 난 당신이 원하는 남자가 되고 싶었어. 매일 다른 남자가 되려 애를 쓰며 산다고.” 연극의 주인공 ‘멜’로 분한 리건의 대사는 극중 부인인 테리(나오미 와츠)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그를 지켜보고 있는 무대 너머의 수많은 대중에게 던지는 리건 자신의 고백처럼 들린다. 마이클 잭슨과 파라 포셋이 같은 날 세상을 떠났지만, 세상은 더 유명한 마이클 잭슨만을 기억한다는 리건의 자조 섞인 말에 이혼한 그의 전 부인은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은 항상 그래. 사랑과 존경을 혼동하지.” 리건에게 있어 ‘사랑’은 대중의 동경을 받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그런 그에게 가장 두려운 순간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거 알아요? 아빠는 잊혀진 존재예요. 이 연극도 아빠도 중요하지 않죠. 그걸 받아들여요.” 딸과의 말다툼 뒤 덩그러니 남겨진 리건의 얼굴. 그 유령 같은 얼굴로부터 우리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 가련한 남자의 초상을 본다.

흥미로운 건 연극을 준비하며 리건이 자기 자신의 밑바닥을 보게 될수록 상상 속의 그는 점점 비상한다는 점이다. 한마디 말로 연극의 흥행 여부를 좌우하는 <타임>의 평론가에게 최악의 말을 들은 다음날, 뉴욕 시내를 터벅터벅 걷던 리건은 그 자신이 ‘버드맨’이 되는 상상에 잠긴다.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 E단조가 흐르고 맨몸으로 뉴욕 시내를 활강하는 그의 모습을 롱테이크로 담아내는 순간은 <버드맨>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다. 어쩌면 하늘을 가로지르며 맹렬하게 하강하는 이카로스의 이미지가 이 영화의 오프닝 신을 장식했던 순간부터 리건의 추락은 예정되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드맨>에서 이러한 추락의 순간을 통해 이냐리투가 보여주려 했던 건 파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리건은 끊임없이 자신이 끝내 되지 못할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 비로소 그는 게임의 룰을 깰 수 있게 된다. 리얼리티에 굴복함으로써 리건은 무지의 예기치 못한 미덕(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버드맨>의 부제이기도 하다)을 얻게 된다. 거기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다.”(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아름다운, 파멸의 영화

이냐리투가 <버드맨>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추락의 아름다움’을 형식적으로 구현해내는 건 <그래비티>(2013)의 촬영감독이기도 한 멕시코 출신 에마누엘 루베스키의 몫이다. 유려한 롱테이크 촬영에 일가견이 있는 루베스키와의 협업은 현란한 속도와 분절된 화면, 시작과 끝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힌 서사 전개를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던 이냐리투 특유의 스타일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모든 이들의 삶은 연속적인 스테디캠 촬영 같은 것이라고.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삶을 편집 없이 유랑한다. 우리가 시공간을 ‘편집’하는 유일한 순간은 우리 삶에 대해 타인에게 얘기할 때, 또 어떤 기억을 끄집어낼 때뿐이다. 나는 도망칠 수 없는 리얼리티 속에 <버드맨>의 등장인물들을 놓아두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루베스키로 하여금 하나의 롱테이크숏처럼 이 영화를 촬영하게 한 이유다.” 감독의 말처럼 무대에서 복도로, 복도에서 거리로 이어지는 리건의 3일간의 행보는 마치 끝없이 계속되는 즉흥연주처럼, 또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꿈처럼 관객의 눈을 홀린다. “전작을 편집실에서 완성했다. 영화의 톤과 리듬, 심지어 장르까지 그곳에서 바꿀 수 있었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이냐리투에게 하나의 호흡으로 마지막 장면까지 유려하게 흘러가는 <버드맨>의 전개는 하나의 새로운 예술적 실험이었을 거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언젠가 <버드맨>이 자기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으로부터 비롯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말하는 ‘아름다운 부분’이란 “솔직함”과 “무언가에 굴복하는 태도”라고 한다. 전직 슈퍼히어로가 재기는커녕 점점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게 된다는 이 영화의 내용에 많은 투자자들이 동의하지 못했고 제작 과정에서 <버드맨>은 수많은 난항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숱한 굴복과 수락의 과정을 이겨낸 한 예술가는 추락을 통해 새로운 비상을 꿈꾸는 매혹적인 이카로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추락하는 자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버드맨>은 근래 미국영화에서 목도한 가장 아름다운 파멸의 영화다.

<버드맨>의 재즈 음악

<버드맨>은 재즈 음악의 드럼 비트가 영화의 리듬감을 살리는 데 효과적으로 일조할 수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우는 작품이다. 이냐리투는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드럼 연주를 <버드맨>의 중요한 영화적 요소로 차용했다고 말한다. “첫째로, 나는 사람들이 이 드럼 연주의 비트를 진정으로 즐길 수 있길 바랐다. 동시에 이 음악은 내가 영화의 내적 리듬을 찾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중략) 코미디영화를 하나의 숏으로 촬영한다는 건 자살행위에 다름없다는 걸 알고 있다. 코미디영화에서 리듬은 거의 신적인 존재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의 리듬을 뒷받침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리건이 바쁜 걸음으로 연극 세트의 이곳저곳을 오갈 때 울려퍼지는 드럼 연주는 팻 메시니 그룹의 드럼 연주자이기도 한 안토니오 산체스의 작품이다. 안토니오 산체스는 <버드맨>으로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 음악상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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