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과 두려움, 집착과 강박증. <버드맨>이 주요하게 다루는 테마를 한 시대 앞서 선보여왔던 ‘선배’ 영화들이 있다. 예술가의, 예술가에 대한 영화들을 한데 모았다.
<선셋 대로> 1950
“좋아요, 데밀씨. 난 클로즈업 준비가 되어 있어요”라는 명대사로 유명한 수작. 대중의 뇌리에서 잊혀진 무성영화 시대의 대스타 노마 데스먼드가 주인공이다. 화려한 시절에 대한 향수와 재기에 대한 집착이 극대화된 캐릭터인 노마 데스먼드는 영화사에서도 손꼽을 만한 강렬한 여성 캐릭터로 남아 있다. 그녀를 연기하는 이가 실제로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였던 글로리아 스완슨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몰려든 경찰과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를 스튜디오의 조명처럼 느끼는 데스먼드의 광기를 성공적으로 소화해낸 건 20여년의 공백기를 가져야 했던 스완슨의 상황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캐스팅의 묘가 영화에 한층 복합적인 맥락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버드맨>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는 작품.
<프로듀서> 1968
‘미다스의 손’의 반대말이 있다면 바로 <프로듀서>의 주인공에게 딱 어울리는 수식어일 거다. 무대에 올리는 연극마다 관객의 외면을 받는 제작자 맥스는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에 어리바리한 회계사 레오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제안은 확실하게 망할 연극을 만들어 공연을 오래 올리지 않고 제작자들의 돈을 가로채자는 것이다. 의기투합한 두 남자는 <히틀러를 위한 봄날>이라는, 제목부터 싹수가 노란 작품을 기획하지만 예상외로 연극이 흥행하면서 그들의 계획은 엉망이 되어간다.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이면을 유쾌하고도 신랄하게 풍자하는 이 작품은 스포트라이트 바깥에 존재하는 예술계의 이면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버드맨>의 선배영화라 할 만하다.
<오프닝 나이트> 1977
브로드웨이에서의 연극 초연을 앞두고 신경쇠약에 시달리는 여배우. 존 카사베츠의 페르소나인 지나 롤랜즈가 연기하는 <오프닝 나이트>의 머틀은 명백하게 리건 톰슨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다만 머틀이 소녀 팬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그녀의 환영에 시달린다는 설정 때문에 이 영화에는 일정 부분 호러적인 정서가 가미되어 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나이듦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느 중년 여배우의 초상을 지나 롤랜즈는 놀랍도록 섬세한 연기로 구현해낸다. 연극의 초연날 밤(오프닝 나이트), 리허설 따위는 잊고 상대 남자배우(존 카사베츠)와 함께 즉흥연기를 펼치는 머틀의 모습은 좋은 배우의 힘이 영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게 해주는 명장면이다.
<8과 1/2> 1963
아이러니하게도 예술가의 불행한 삶은 종종 그가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좋은 질료가 되곤 한다. <8과 1/2>은 당시 창작의 고통을 겪고 있었던 페데리코 펠리니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어떤 영화를 찍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워하는 감독 귀도가 주인공이다. 그는 공중에 풍선처럼 떠 있는 자신을 사람들이 밧줄로 묶어 끌어내리려 하는 악몽에 시달린다. 휴양차 머물게 된 온천에서도 창작에 대한 강박관념이 반영된 그의 백일몽은 끊임없이 변주된다. 점차 예술적 자양분을 소진해가는 지친 예술가의 초상을 언급할 때면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