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랬지만 폴 토머스 앤더슨의 <인히어런트 바이스> 역시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더 많은 의문이 생긴다면 영화를 제대로 본 셈이다. 이 영화를 이해하려는 당신의 노력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말들을 모아봤다. 부디 헝클어진 머릿속을 정리해줄 실마리가 되길 희망하며 <사이트 앤드 사운드>와 <롤링스톤>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편집, 재구성하여 옮긴다.
-토머스 핀천의 작품 중 영화화되는 첫 작품이다. 그의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재미. 핀천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나도 모르게 새로운 세계에 푹 빠져버린다. 그의 작품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체험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도전적이면서도 재미있다. 처음 접한 소설은 <중력의 무지개>라는 작품이었다. 순전히 작품의 명성에 이끌려 읽었는데 토머스 핀천에 대해 알고 싶은 이에게 첫 작품으로 추천하고 싶진 않다. 너무 두껍다. (웃음) 본격적으로 그에 대해 궁금해진 건 <제49호 품목의 경매>를 읽고서부터다. 사실 고등학생 때 이미 이름을 들었지만 그 시절에는 관심이 없었다. 글을 읽는 것에 대해 진지해질 무렵 <V>를 읽고 완전히 매료되었다. 몇달 전엔 <바인 랜드>라는 작품도 읽었다. 정말 끝내준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이후 당신의 두 번째 각색 작품이다. 원작이 있는 작품을 재창조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
=<데어 윌 비 블러드>를 만들 때와는 완전 달랐다. 훌륭한 원작일수록 도리어 각색이 어렵다. 이번에도 원작의 무게감에 지나치게 짓눌려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실제 영화는 가능한 한 원작보다 더 웃기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원작에는 없는 내레이터를 추가한 것도 그 연장에 있는 선택이었다. 각색 작업이 절반 정도 진행되었을 때 유튜브에서 핀천이 직접 자신의 목소리로 소설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소개하는 영상을 보고 영감을 받아 내레이션 추가를 결정했다.
-추상적이고 순수미학에 가까운 대화들로 채워져 있어 따라가기 쉬운 영화는 아니다.
=맞다. 하지만 내 생각엔 그게 좋은 것 같다. 나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매일 아침 읽는 신문과 토머스 핀천의 소설이 같을 수는 없다. 때론 혼란스러운 정보가 뒤섞여 있는 상태가 더 의미 있다. 당신이 와킨 피닉스가 연기한 닥이라는 인물을 따라가려면 그가 무엇에 관심이 있고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와킨 피닉스와 캐릭터를 개발하기 위해 어떤 시간을 보냈나.
=책을 읽고 대본을 읽고. 그거면 충분했다. 알다시피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정말 거대한 분량의 책이다. 닥은 워낙 명확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추가적인 해석은 필요 없었다. 그 밖에 내가 해준 거라곤 <The Most Dangerous Man in America>라는 영화를 보여준 것뿐이다. 미군의 베트남 참전에 관한 정보를 폭로한 대니얼 엘즈버그라는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The Fabulous Furry Freak Brothers>라는 코믹북도 함께 보내줬다.
-핀천의 소설에서는 60년대가 더 나은 것을 위한 변화의 시대로 정의되는 반면 70년대는 변화의 바람이 죽어버린 시대로 정의된다. 당신에게 70년대는 어떤 의미인가.
=핀천은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작가적 주장을 하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핀천의 작품이고 당시에 대한 핀천의 생각이 담긴 핀천의 필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화면들이 60년대 후반 캘리포니아를 연상시킨다. 최후의 만찬 같은 파노라마의 순간도 있지만 대부분 클로즈업이 지배적이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70년대 중반의 로스앤젤레스와 실제 촬영된 필름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오래된 렌즈의 질감이 느껴지도록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촬영 장소가 있었지만 근사한 장소도 별로 없었다. 어두운 모텔 방, 더러운 아파트를 찍는 것보다는 차라리 제나 말론을 클로즈업하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60년대 <플레이보이> 같은 장면들은 후반부에 배치해 가능한 한 그 시절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