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60년, `악의 축`을 징벌하라굽쇼?
구상하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 기획이 시작된 영화인데 지난 대통령 선거 때가 결정적인 계기였다. 개표 중계방송을 보는데 오른쪽은 파란색, 왼쪽은 초록색, 너무 분명하게 갈린 정치성향을 보면서 지역감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대체 이 지역감정의 뿌리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고민했다. 실제로는 박정희 대통령이 정권유지를 위해 조작해낸 것이지만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해보니 삼국시대로 거슬러올라가더라. 아마 올해 연말이 되면 다시 그런 상황을 보게 될 텐데 내 개인적 철학이 ‘뭐든지 인정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편이다. 그렇다면 한번 역사를 거슬러 쫓아가보자, 하면서 신라가 백제를 패망시킨 황산벌 전투가 떠올랐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보니까 황산벌 전투는 동북아 100년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싸움이었다. 당, 고구려, 백제, 신라, 일본 등 5개국이 벌인 100년간의 전쟁은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시작해서 나당 연합군이 삼국을 통일하는 걸로 막을 내린다. 이건 지금의 국제정세와도 상당히 닮았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최근 발언을 보라. F-15전투기를 팔아먹으려는 속셈으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국 공화당 정권의 모습을 고구려를 눈엣가시로 여긴 당나라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걸 이용해서 신라의 김춘추는 당에 찾아가 먼저 백제를 치고 고구려를 멸하자는 전략적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이런 여러 가지 정치·사회적 상황을 코미디로 풀어보자는 것이다.
대중적 호소력의 근거는? 시대물의 목적은 과거의 고증이 아니라 현재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역동적인 정치코미디로 풀어간다면 충분한 영화적 재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계백은 전라도 사투리를 쓰고 김유신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고 의자왕은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식으로 해서 코믹하게 그릴 생각이다. <친구>가 부산 사투리를, 조폭영화들이 전라도 사투리를 상업적 도구로 썼는데 <황산벌>엔 이런 대사의 재미가 증폭돼 보여질 것이다. 명실공히 전 국민을 상대로 기획하는 영화인 것이다.
현실화 계획은? 연출을 직접 할 계획이다. 씨네월드 조철현 전무와 내가 함께 각본을 쓰고 있고 조철현 전무가 프로듀서를 한다. 감독은 <키드캅> 이후 10년 만에 하는 것인데 잘할 만한 다른 감독이 눈에 띄면 맡기겠지만 찾을 수 없어서 내가 연출하는 것이다. 제작비는 40억원 미만에 맞출 계획이다. 거창한 볼거리를 배제하고 인물과 인물이 부딪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생각이다. 돈을 적게 들일수록 드라마는 오히려 탄탄해진다고 본다. 배우들도 사투리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연기 잘하는 배우들로 캐스팅할 생각이다. 7월에 크랭크인해서 11월에 개봉한다.
개인적 혹은 산업적 의의는? 산업적인 면에서 보면 <황산벌>은 소재에 대한 과감한 시도로, 전쟁역사물을 코미디로 만드는 최초의 한국영화가 아닐까 싶다. 사실 몬티 파이손의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게 있는데 그는 아더왕 신화를 저예산 코미디로 찍었다. <여인천하>나 <왕건> 식의 사극과 다른, 코믹한 사극을 만들어 보겠다. 개인적으로는 10년 만에 연출하는 작품인데 감독으로서 내 인생의 승부처가 아닐까 싶다.
성패의 관건은? 내용적인 성패는 역사를 보는 관점이 얼마나 명확히 드러나느냐에 있다. 관점이 명료하면 스펙터클이나 비주얼은 중요치 않다. 상업적인 성패는 아무래도 대중적 코미디로 잘 옮길 수 있는가에 있을 것이다. 1300년 전 이야기로 현재의 웃음을 만들어낸다면 대단한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확신한다.
<황산벌>은 어떤 영화?
신라와 당의 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사건을 오늘날 정치상황에 빗대 풀어보는 풍자코미디. 당 태종이 고구려 원정을 하다 부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사망한 뒤 당은 고구려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고구려 정벌을 꿈꾼다. 신라는 이런 국제정세를 이용해 당과 손잡고 삼국통일을 이루려 한다. 660년, 소정방이 이끄는 당의 군대가 덕물도에 도착하고 김유신이 지휘하는 신라의 군대는 여주 근처에 진을 친다. 백제는 나당 연합군이 고구려로 향하는지, 백제로 향하는지 예의주시하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을 꾀하다 내부분열이 일어난 상태라 동원할 수 있는 군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드디어 신라의 군대가 움직인다. 계백이 지휘하는 백제의 5천 결사대는 황산벌에서 그들과 맞선다. 계백을 상대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김유신, 5만명의 군사를 끌고 황산벌 전투에 임하지만 ‘1당10’을 부르짖는 백제 5천 결사대에 거듭 패한다.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치열한 정보전이 당시 전쟁의 또다른 측면. 계책에 능한 김유신은 화랑 관창을 희생양 삼아 신라군의 사기를 올린다는 고육지계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