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충무로 중견 프로듀서들의 히든 프로젝트 [3] - 김광수
2002-03-08
글 : 문석
청년필름 대표 김광수의 <일지매>

웨이터 일지매, `공공의 적`을 청소하다

구상하게 된 계기는?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선 민중의 적인 탐관오리가 극성을 부리는 등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현명한 글쟁이들이 영웅의 존재를 빌려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중에게 희망을 제시해왔다. 지금 역시 민중의 적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며, 진정한 영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전통의 영웅은 어디론가 간 데 없고 슈퍼맨, 배트맨 같은 미국 영웅만이 존재하고 있다. TV에서야 홍길동, 임꺽정 같은 영웅을 다뤘지만 영화에선 맥이 끊겼다. 일지매는 이런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애초에는 고우영 선생의 만화 <일지매>를, 그 필체를 그대로 살리면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자본 조달이 쉽지 않아 ‘아직 때가 되지 않았구나’라며 뒤로 밀쳐놓았다. 그러던 중 <달마야 놀자>를 보게 됐고, 박철관 감독에게 우리가 구상했던 다른 프로젝트를 맡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막상 박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데, 스스로 기획중인 프로젝트가 있어서 연출을 맡지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바로 그게 일지매였다. 박 감독도 나만큼 일지매를 좋아하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며 좋아했다. 결국 일지매라는 캐릭터를 현대에 가져와 빌딩 숲을 날아다니며 비범한 무술을 구사하는 정의의 구현자로 내세우게 된 것이다.

대중적 호소력의 근거는?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공공의 적’이 수두룩하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바이므로, 이들을 처단하고 난세를 구하는 영웅의 존재는 대중에게 희망을 주리라고 본다. <공공의 적>이 성공한 것 역시 이같은 대리만족 효과가 어느정도 힘을 발휘한 것 아닐까. 또 웨이터 일지매가 자신의 존재를 깨닫게 되기까지의 과정에서 보여지는 코미디적 요소와 후반부의 다양한 액션 장면은 관객의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현실화 계획은? 순제작비는 40억원 정도가 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액션장면이 전체 영화의 3분의 1 정도인 덕분이다. 기초적인 미술 컨셉이 나오는 대로 투자자들과 본격적으로 만남을 가질 생각이다. 박철관 감독의 경우 <달마야 놀자>의 캐릭터가 그렇게 많은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한명도 놓치지 않고 일관성 있게 끌고 갔다는 면에서 연출력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건 참 쉽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또 촬영을 하면서 배우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게 됐다. 현재 박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는데, 초고가 나온 상태이며 2고를 쓰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빨라야 내년 봄쯤에야 제작에 돌입할 수 있기 때문에 배우에 관해선 뭐라 말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일지매 역을 맡을 배우는 초반의 코미디를 잘 소화할 수 있어야 하며, 액션연기도 능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 혹은 산업적 의의는? 예전 고우영 선생의 만화로 본 일지매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의 소유자였다. 보통 의적이라면 험상궂은 스타일을 떠올리기 십상인데 일지매는 여장을 하면 모두 미녀라고 믿을 정도로 중성적인 느낌이었다. 과거 인물이지만 굉장히 모던한 캐릭터랄까. 공중부양술이나 수리검이라는 표창, 암술 같은 것도 인상이 깊어 일지매는 개인적으로 무척 매력을 느꼈던 캐릭터였다. 그리고 청년필름 입장에서도, 가벼운 방식이긴 하지만 사회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우리 나름의 고유한 색깔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장르의 틀을 빌리는 것이지만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성패의 관건은? 아무래도 액션이다. 기존 한국 액션영화의 문제점은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비슷한 액션을 단조롭게 배치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일지매>에선 액션의 수위를 차츰 올리면서 다양한 액션을 보여주려 한다. 또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액션을 선보이려는 욕심도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잘 활용하면 괜찮은 그림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매트릭스>는 좋은 텍스트가 된다. 이 영화에서처럼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발한 아이디어의 액션장면을 연출하면 새로운 느낌을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일지매>는 어떤 영화?

한 술집 웨이터가 있다. 일지매를 워낙 좋아해 웨이터로서의 닉네임도 ‘일지매’라고 붙인 그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 자신의 일터인 술집을 들락거리는 재계 인사, 정치인들의 타락한 모습을 보며 비분강개하던 그는 자신이 일지매의 먼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 일지매는 외딴 곳에서 열심히 무술을 닦아 공중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다종다양한 무공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다시 사회로 돌아온 그는 재벌이나 재벌과 결탁한 정치인들에 맞서 의적으로 명성을 날리게 된다. 빌딩과 빌딩 사이를 붕붕 날아다니고, 표창을 날리며 검은 먼지를 뿌리고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지는 등 신출귀몰한 그의 활약에 ‘민중의 적’들은 공포감을 갖게 되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마음속으로 그에게 환호를 보낸다. 자신이 지나간 자취에 금으로 된 매화가지를 남겨놓는 일지매의 신화가 부활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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