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충무로 중견 프로듀서들의 히든 프로젝트 [2] - 차승재
2002-03-08
글 : 문석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의 <역도산>

열도를 때려눕힌 조선 청년, 그 인간적 그림자

구상하게 된 계기는? 일본과 다양한 일을 펼치며 한국과 일본에 동시에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는 아이템이 무엇일까 고민해왔다. 이 과정에서 일본 레슬링계의 전설적 인물 역도산에 흥미를 갖게 됐다. 일본에는 그와 관련된 책이 200권 넘게 출간돼 있을 정도니까. 역도산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그야말로 영화적이라 할 수 있다.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본명이 김신락인 함경도 태생의 역도산은 16살에 한 일본인에 의해 스모 선수로 스카우트돼 일본으로 건너간다. 두형이 모두 씨름장사 출신인 강골 혈통을 물려받은 그였기에 스모계에선 상당한 지위인 오오제키에 등극하지만,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천하장사격인 요코즈나엔 오르지 못한다. 어느날 머리를 밀고 레슬러로 전향을 선언한 그는 이후 일본 프로레슬링을 최고 인기 스포츠에 올려놓았고, 오랫동안 최고의 레슬러로 군림하게 된다. 한때 “천황 다음이 역도산”이란 말이 퍼질 정도로 그는 일본에서 가히 신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이같은 외양만으로 그를 파악하는 것은 한면만을 본 것이다. 일본에서 출간된 책들도 영웅에서부터 희대의 악당까지 모두 그를 다르게 묘사하고 있다. 자료를 종합해 보면 그는 조센진으로서 패전한 일본에서 생존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영웅이라기보다 그야말로 한명의 인간이었다. 때론 살기 위해 권모술수를 쓰기도 했고 때론 정의롭기도 했다. 때문에 나는 그를 영웅으로 그릴 생각이 없다. <칼리토> <시민케인> <대부2> <분노의 주먹> 같은 영화의 캐릭터를 두루 섞어놓은 듯한 영화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중적 호소력의 근거는? 일단 인물이 매력적이니까. 정말로 드라마틱하다. 특히 미국인 레슬러를 불러다가 당수로 날려버리며 패전의 상처를 달랬던 일본인에게 그는 인상적인 존재로 각인돼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현실화 계획은? 제작비는 50억원 정도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일본과 50:50 공동투자를 추진중이다. 대부분의 장면을 일본 또는 대만에서 찍을 생각이므로 이쪽에서는 주연, 감독, 촬영, 조명, 프로듀서만 건너가고, 나머지는 모두 일본 파트너가 맡는 방도도 찾고 있다. 사실 내가 이 영화를 개발하고 있는 동안 송해성 감독도 역도산에 관한 영화를 고민하고 있었다. 또 <파이란>에서 보여준 캐릭터를 다면적으로 포착하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산다. 송 감독이라면 영웅은 아니지만 삶의 정당성이 있는 한 인간을 잘 표현해줄 것 같다. 한마디로 조금 잘 나가는 강재(<파이란>의 주인공)가 링에 오르는 형국이 될 것 같다. 시나리오 작가가 써놓은 초고를 놓고 감독과 작가가 협의중이며 3∼4개월 안에 괜찮은 시나리오가 나올 것 같다. 현지에서 충분한 준비를 하고 난 뒤, 이르면 올해 10월, 늦어도 연말에는 본격 제작에 들어갈 것으로 본다.

개인적 혹은 산업적 의의는? 산업적으로 보자면 정말로 일본과 시장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첫 영화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야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유형의 인물인 탓에 욕심이 난다. 나는 <비트>의 환규(임창정)나 <칼리토>의 알 파치노, <미드나이트 카우보이>의 존 보이트 같은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다. 흥행은 솔직히 뒷전이고 꼭 해보고 싶은 영화다.

성패의 관건은? 핵심은 역도산 역을 맡을 연기자라고 본다. 실존 인물을 그리는 것이므로 용모가 완전히 다르면 안 될 것이고, 연기를 상당히 잘해야 하며, 운동도 꽤 해야 할 것 같다. <분노의 주먹>에서 제이크 라모타로 변신했던 로버트 드 니로가 모델이다. 그렇게 보면 이 역을 맡을 수 있는 배우는 몇명 안 된다. 또 일본에서도 반응을 얻을 수 있으려면, 당시 일본 사회상이나 일본의 정서를 그럴듯하게 담아야 한다. 일본 스탭도 운영해야 하므로 철저한 사전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역도산>은 어떤 영화?

조선인 출신 스모 선수 역도산은 어느날 상투를 자르고 레슬링계에 입문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록폰기에서 한 재미일본인과 시비가 붙었던 것이 계기가 됐지만, 무엇보다 스모계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은 것에 대한 반발이 컸다. 생존본능에 투철한 역도산은 화려한 기술과 뛰어난 비즈니스 감각을 발휘해 프로레슬링을 정상의 위치에 올려놓는다. 미국 선수를 데려와 흥행시키는 것에 대한 독점권을 갖고 있었던 그는 이들 미국 선수를 링 위에서 당수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그리하여 대중에게 독점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권리마저 행사한다. 결국 그는 일약 최고의 스타로서의 무한한 영예를 누린다. 하지만 그 삶의 이면에는 항상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남을 이용하거나 누르지 않고서는 생존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던 그는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지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한다. 한밤중 친구가 운영하는 음식점을 몰래 찾아가서 불고기와 김치를 먹은 뒤 껌을 엄청나게 씹어 입에서 나는 마늘냄새를 없앴을 정도로 조선인임을 끝내 숨겼던 것도 그러한 맥락. 이렇게 정상의 자리를 누리던 그는 의혹에 싸인 채 갑작스런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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