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사들에겐 누구나 히든 카드라는 게 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판을 역전시키는 숨겨둔 한장을 던지는 묘미, 그것은 영화를 만드는 프로듀서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인지 모른다. 흥행에서든 평판에서든 의외의 카드가 나오는 순간 영화계의 시선이 집중된다. 누군가는 선수를 뺏겼다며 탄식하고 왜 이런 영화를 생각 못했을까 아쉬워하거나 저절로 탄성이 나오는 그런 기획이 있다. 실은 프로듀서라는 직업이 그래서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발견하기 위해 때론 신문 사회부 기자가 되고 때론 고고학자가 되며 때론 군사전문가가 된다. 자기가 관심있고 좋아하는 것만 연출하면 되는 감독과 달리 그들은 정치, 사회, 문화 등 전방위로 더듬이를 내밀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 소개하는 8편의 프로젝트는 말하자면 누가 들어도 귀가 솔깃할 미지의 영화들이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감독이 정해져서 곧 촬영에 들어갈 작품에서 아직 순수한 아이디어 덩어리인 작품까지, 진행상황은 천차만별이지만 이들 프로젝트는 이제 막 누군가의 머리 속에서 용수철처럼 튀어나온 신선함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씨네21>은 8편 작품의 프로듀서들에게 이런 아이디어의 시작부터 완성계획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설령 그들의 기대와 소망이 카메라에 제대로 담기지 못한다 해도 영화 기획의 첫 단계를 남들보다 먼저 엿보는 재미는 만만치 않다.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씨는 언젠가 영화기획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비유한 적이 있다. 망망대해에서 큰 물고기를 건져올리지만 사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그렇게 어렵게 잡은 물고기를 집까지 고이 가져갈 수 있을까? 태풍을 만나고 상어떼를 만나 앙상한 뼈만 건질지 모를 모험이 그를 기다린다. 아마 이들 8편도 이제 막 제법 큰 물고기를 낚은 정도일 것이다. 이제 막 잡아올린 싱싱한 물고기를 그들은 어떻게 고스란히 집으로 가져갈 것인가? 한장의 패로 게임을 끝내는 도박사들과 달리 프로듀서들의 히든 카드는 꺼낸 다음부터 본격적인 게임의 세계에 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