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고국에 안녕을 고하기에 고향은 최적의 장소였다”
2015-06-16
글 : 장영엽 (편집장)
<영광의 무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이 영화가 타이에서 촬영한 나의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다.”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상영작, <영광의 무덤>은 타이의 작가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어떤 선언과도 같은 작품이다. 예술가로서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느끼고 사랑하는 고국을 떠나 작업을 이어나갈 예정인 그는 타이에 대한 작별의 의미로 자신의 뿌리이자 고향인 콘 카엔으로 돌아가 영화를 만들었다. 감독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추억이 서려 있는 공간이기 때문인지, 이 영화는 사라진 것들에 대한 향수와 나아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슬픔으로 가득한, 다소 애상적인 작품이 되었다. 연출자로서의 1막을 마무리하고 새 출발을 앞둔 그와의 만남을 전한다.

-당신의 고향(콘 카엔)에서 이 영화를 촬영했다. 고향에 돌아가니 기분이 어떻던가.

=나는 때때로 고향을 방문했었다. 어머니가 아직 살고 계시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영화의 촬영지로 방문해본 적은 많지 않다. 나는 <징후와 세기>를 그곳에서 절반 정도 촬영했지만 영화 전체를 그곳에서 찍은 건 아니었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 어떤 것들이 바뀌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봤다. 결국 나는 많이 변하지 않은 곳에서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 내게 영감을 주었던 장소에 돌아가 영화를 만든다는 건 꽤 감정적인 경험이었다.

-고향에서 촬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을 텐데, 왜 하필 지금에서야 이곳에서 영화를 찍었나.

=글쎄, 심정적으로 지금에서야 고향을 배경으로 영화를 만드는 게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고 할까. 사실 방콕 이외의 지역에서 영화를 찍는 건 어려운 일이다. 더 많은 제약과 더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하지만 나는 많은 스탭들을 현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언제부턴가 타이에서 영화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것에 제약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타이에서 마지막 영화를 촬영한다는 생각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고, 고국에 안녕을 고하기에 고향은 최적의 장소였다.

-타이에서 어떤 제약을 느꼈기에.

=타이에서는 많은 것들을 말할 수 없다. 국가, 군대, 종교, 왕조, 섹스…. 또 타이에서는 정치적인 활동을 하면 감옥에 가거나 처벌받거나 개인 자산을 동결당하는 등의 상황을 맞게 된다. 내 친구들도 사회적으로, SNS상에서 정치적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잡혀가거나 정치적인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문서에 서명을 했다. 그건 내게 매우 근본적인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나 자신에게 점점 더 자주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존재로서의 나를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 영화를 통해 내가 전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상징적으로 바꿨는데, 그건 좌절스럽고 숨막히는 경험이었다.

-병원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깊은 잠에 빠진 군인들이 주인공이다. 군대는 당신의 오랜 관심사이기도 하다. 당신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것들을 말하고 싶었나.

=타이에서 군대의 존재란 정말 강력하다. 미국보다 타이에서 장군이 차지하는 위치가 높다. 생각해보라. 나라의 많은 예산이 군대에 투입된다. 타이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군대의 존재와 힘에 대해 느낄 것이다. 동시에 나는 군인들이 입는 유니폼에 성적인 매혹을 느꼈다. 유니폼과 힘. <열대병>과 몇몇 미술 프로젝트 이후 나는 때때로 군인을 힘과 매혹의 상징으로 다루기 시작했다. 나는 이 힘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군대가 정치적으로 움직이는 것에 대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에 관한 것은 아니고, 힘의 휴면 상태에 대한 것이다.

-꿈은 이 영화의 중요한 소재다. 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뭔가.

=수년 전부터 타이의 정치적 상황은 매우 빠르게 변모하고 있었다. 군대가 공포스러운 상황을 야기했고, 나는 타이의 미래에 대해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점점 더 자신이 잠에 빠져드는 것을 발견했다. 생각해보니 꿈은 나에게 현실에 대한 일종의 도피처 같은 존재더라. 현실을 어찌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또 다른 현실을 찾아야 하지 않나. 나에겐 꿈이 바로 그 대안적인 장소였다.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당신은 스스로의 꿈을 관찰했다고 들었다.

=내 꿈을 관찰해보니 할리우드영화에 나오는 꿈 같지가 않더라. 할리우드영화에서 묘사하는 꿈이란 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모든 것들이 초현실적이고 특수효과로 가득 차 있는데, 내 꿈을 들여다보니 다소 평범하고 내러티브적이더라. 더불어 꿈에는 뭔가 논리적이지 않은 요소가 포함되어 있고, 이야기가 빨리 전환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꿈에서 관찰한 내용을 영화에 반영하려 했다. 하지만 종교적인 방식이라기보다는 과학적인 방식에 기대어 표현하려 했다.

-<영광의 무덤>을 보며 당신의 초기작, <징후와 세기>를 떠올렸다. 당신의 영화적 뿌리로 회귀한 건가.

=기묘하게도, 그렇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징후와 세기>를 촬영할 때 느꼈던 것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더라. 두 영화 모두 고향을 배경으로 촬영했고, 내가 잘 아는 곳이어서인지 어떤 익숙함이 영화에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혹시 이 영화의 심리치료사가 그녀가 전생에 소년이었다고 말하는 장면을 기억하나? <징후와 세기>에도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건 내가 이 이야기를 고향에서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이루고 있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기억은 반복되는 법이다.

-<징후와 세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혹시 <엉클 분미>의 성공 이후 다시 처음처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가. 당신은 이 영화를 만들며 마치 처음 영화를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고도 말했다.

=<엉클 분미>는 시네마의 기능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작업했던 영화다. 그래서 형식과 구조에 대해 더 많은 실험을 했다면, <영광의 무덤>은 현재와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의 영화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적인 부분보다는 더욱 감정적인 면에 집중해서 영화를 만들었다. <엉클 분미>를 촬영할 때에는 내 스스로가 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였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마을의 리듬을 따르려고 했다.

-<열대병>에서 당신은 군인들이 정글을 지나가는 장면을 찍을 때 카메라를 고정시켰다. 그러다가 갑자기 음악이 등장하자, 당신은 카메라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광의 무덤>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후반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강가에서 춤을 추고 음악이 흐른다. 그리고 당신은 갑자기 카메라앵글을 바꾼다. 이미지와 음악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하나.

=나에게 음악은 다른 종류의 시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환기시키는 존재다. <열대병>에서 음악이 등장하고 카메라가 움직일 때, 관객은 그제야 이 영화의 연출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 의미로 음악을 사용했다. 마치 “나 감독인데, 여기 있어요”라는 사인처럼. 다만 이 영화에선 음악을 거의 마지막에 사용했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노래는 한국 밴드 DJ soulscape의 음악 <러브 이즈 어 송>이라는 곡인데, 4, 5년 전에 누군가 나에게 이 노래를 보내줬고 나는 이 곡이 마음에 들었다. 영화를 닫는 의미로 이 음악을 엔딩 크레딧에 넣었다.

-당신은 이 영화가 타이에서 촬영하는 마지막 영화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의 작업은 어떨 것이라고 예상하나.

=작업 환경을 바꿈으로 인해 나는 무언가를 잃을 것이고, 또 무언가를 새로 얻을 것이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떤 나라에서 작업을 하고 싶나.

=남미에 가고 싶다. 그곳의 역사로부터 느끼는 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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