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본질적인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깨달음
2015-06-16
글 : 장영엽 (편집장)
<산허구런> 지아장커 감독
지아장커 감독

2년 전 <천주정>의 칸영화제 상영을 마무리한 뒤, 중국으로 돌아가 <재청조>를 만들겠다던 지아장커의 말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 대신 지아장커는 중국과 호주를 오가며 촬영한 영화 <산허구런>을 들고 다시금 칸영화제 경쟁부문을 찾았다. 현대 중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 그들 각자의 파편화된 삶을 조명했던 전작들과 달리 <산허구런>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세 등장인물의 과거, 현재, 미래를 들여다본다. 다시 말해 이 영화에서 지아장커가 시도하는 건 사회 구성원들 각자의 분절된 삶을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기나긴 인생에서 개인이 경험하게 되는 것들을 분절된 시공간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가 궁금했고, 40대 중반에 접어든 이 중국의 거장이 들려주는 답변은 자주 콧날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산허구런>을 연출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이 영화는 내게 감정적으로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산허구런>을 통해 <플랫폼>(2000) 이후 나 자신이 살면서 느낀 감정과 가장 가까운 것들을 말하고자 했다. <스틸 라이프>(2007)처럼, 내가 만든 대부분의 영화들은 중국의 사회적인 변화와 그 변화가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그 영화들 속에서 개인의 실존은 언제나 위태로웠기 때문에, 개개인의 감정은 영화에서 아주 적은 비중을 차지할 뿐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40대에 접어들며 점점 기억을 축적해나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이 시점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산허구런>은 내가 50대가 된다면 묘사할 수 없을 감정에 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말한 대로, <산허구런>은 감정의 파동이 큰 작품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당신이 중국 사회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바도 있었을 거다.

=나는 리얼리티와 완전히 동떨어진 판타지영화를 만든 게 아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자신인 동시에 더 거대한 사회의 일원이다. 일례로 나는 진성과 타오, 량지의 러브 스토리를 구상하며 그들 마음속에서 작용하는 가치 체계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물질적인 방식에 대해 말이다. 예를 들어 나는 늘 바쁘게 일해왔기 때문에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어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나는 어머니에게 용돈을 드리는 걸로 함께하지 못한 마음의 보상을 하곤 했는데, 이후에 나는 그런 행동이 후회가 돼 결국 어머니에게 베이징에서 함께 살자고 말했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본질적인 건 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이가 들며 내가 깨달은 서글픈 진실이었고, 나는 이에 대한 깨달음을 이 영화에 담고 싶었다.

-오프닝 시퀀스에 흐르는 <Go West>와 더불어 이번 영화에서는 음악의 사용이 인상적이다. 이건 당신의 전작에서 자주 볼 수 없었던, 일종의 ‘변화’다.

=<스틸 라이프>를 만들 때부터 나는 영화에 음악을 자주 넣지 않았다. 그건 사실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내 영화에서 전반적으로 대사의 밀도가 낮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도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이 말하길 원치 않았다. 대신 나는 관객이 인물들의 면모를 짐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여지를 주려고 했다. 예를 들어 오프닝 신의 댄스음악은 어린 타오가 50대가 되었을 때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보디랭귀지였다. 20대에 <Go West>에 맞춰 춤을 추던 그녀는, 50대가 되어 조용히 채소를 썰고 개와 함께 산책을 나간다. 나는 보는 이들에게 이 시각적인 대비가 어떤 대사보다 더 크게 다가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음악은 이 대사 없는 시퀀스를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장치였다.

-영어 대사의 비중이 꽤 높다.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처음에는 모든 대사를 중국어로 썼다. 그런 다음, 영국 영화평론가의 도움을 받아 영어 대사로 진행할 부분을 번역하도록 했다. 영어로 진행될 파트를 찍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모든 대사를 유의해서 들었고 모든 단어들이 정확하게 발음되도록 신경 썼다. 그런 다음, 대사의 리듬을 들었다. 중국어로 작업할 때와 똑같았던 것 같다. 배우가 대사를 망치면, 대사의 리듬도 흐트러진다. 배우가 잘 소화해내면, 영화의 리듬도 자연스럽게 좋아지며 그러면 모든 것들이 부드럽게 흘러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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