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핀란드 무민의 골짜기로…
2015-07-08
글 : 이화정

<무민: 더 무비> Moomins on the Riviera

감독 자비에 피카르 / 목소리 출연 러셀 토비, 트레이시 앤 오버맨, 너새니얼 파커, 스테파니 위니키, 루스 깁슨 / 상영시간 77분 / 등급 전체 관람가 / 개봉예정 8월

<무민: 더 무비>는 무민이 도너츠 한 박스를 사면 덤으로 끼워주는 ‘귀여운 봉제인형’이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무민 고유의 명예를 회복시켜줄 작품이다. 그간 스웨덴, 폴란드, 일본 등에서 인형극, 스톱모션 기법을 활용한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적은 있지만, 본격적으로 극장용으로 제작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제작을 한 2014년은 원작자 토베 얀손 탄생 100주년으로 무민 역사상 기념비적인 해이다. 원작 속 무민 가족과 친구들로 구성된 숲의 생명체들은 핀란드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겨울잠을 자고(<무민의 겨울 스포츠>) 때로 무인도에 가고, 또 혜성과 맞닥뜨린다(<무민 골짜기에 나타난 혜성>). <무민: 더 무비>는 그중 1955년 발표된 원작 <무민, 리비에라 해변에 가다>를 바탕으로 한다. 추운 겨울이 지속되는 단조로운 무민 골짜기(핀란드)를 벗어나 오랜만에 따뜻한 남쪽(프랑스)으로 여행을 떠난 무민 가족은 초호화 호텔 특실에서 상류층의 생활을 영위한다. 화폐 개념이 없는 무민 가족은 자신들이 기거하는 스위트룸과 최고급 요리, 호텔 서비스가 모두 ‘돈’으로 청구될 거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결국 소동에 휘말린다. “방이 너무 넓다”면서 모든 생활을 침대에서만 하며, 카지노에서 번 돈을 호텔에 지불하고 남은 차액은, “필요 없다”며 되돌려받지 않는 게 무민 가족의 꾸밈없는 경제관념이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경쟁심이 없는 이들이 숲을 벗어나 자본의 세계와 충돌하는 지점은 에피소드 전체에 재미와 웃음을 부르는 계기가 된다.

파스텔 톤의 풍부한 색감. 2D애니메이션의 평온한 선과 무민 콘텐츠의 결속력은 절대적이다(덕분에 애니메이션의 모든 장면을 하나하나 캡처해서 액자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동화 같은 풍경의 속내에는 지극히 생활적이고 현실 비판적인 구석도 존재하는데, 무민이 어린이용 콘텐츠로 남지 않고 전 세대가 공감할 수 있게 된 매력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대책 없이 모험심만 강한 무민파파와 조각가의 만남을 통해 예술가의 모순이 파헤쳐지며, 돈 많은 남자에게 쉽게 혹하는 무민의 여자친구 스노크메이든의 일화로 허영심의 실체가 드러나기도 한다. 물론 이렇게 날선 ‘교훈’을 보여주다가도 동화여서 가능한 무조건적인 긍정과 낙천적 결론이 도출되는데 이 또한 억지스럽지 않으니 신기할 따름이다. 한때 월트 디즈니가 무민의 판권 구매를 시도했으나 토베 얀손은 이를 거절하고 무민을 ‘핀란드의 유산’으로 견고히 지켜왔다고 한다. <무민: 더 무비>는 그 100년의 고집스런 시간이 만들어낸 무민 골짜기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시리즈가 나오길 어쩔 수 없이 응원하게 만드는 매혹의 작품이다.

무민의 진실

리락쿠마가 자살한 전교 1등이라든가 키티가 알고 보니 식인고양이라는 인기 캐릭터를 둘러싼 진실공방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무민이 그저 귀여운 하마가 아니라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크기의 괴물, 민담 속 괴물이라는 건 마치 이 괴담의 하나 같지만,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캐릭터 태생이 애초 그렇다. 무민은 핀란드의 동화작가 토베 얀손의 작품으로 1939년 소련과 핀란드의 ‘겨울전쟁’의 불운이 드리운 시절, 그가 위안차 행복했던 유년기를 추억하며 만든 캐릭터다. 무민의 디자인 원형은 어린 시절 그가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가 바탕으로, 부엌 싱크대 밑에서 살며, 코가 길고 신경질적인 북유럽 요정 트롤이다. 그래서 진짜 무민의 ‘직찍’이 존재한다면 하얗고 포동포동한 일러스트 속 무민이 아니라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 등장하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튀어나올 가능성이 높다. 1945년 동화책 출간 이후 무민 골짜기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이상한 생명체들의 이야기는 영국 일간지 <런던 이브닝 뉴스>의 연재만화(1954년에 시작돼 토베 얀손이 1957년까지 집필하고 이후 동생 라스 얀손이 연재를 이어나갔다), 일러스트, TV시리즈로 이어졌고 핀란드의 국민 캐릭터이자 전세계가 사랑하는 무민 캐릭터로 성장해나갔다. 부모 없이 지내다 무민파파와 무민마마를 만나 따뜻한 가족을 형성하고, 난파된 밈블 가족을 구해서 함께 숲에서 생활하는 캐릭터들의 모습은 무민의 고장인 핀란드의 공동체적인 세계관을 여실히 나타낸다. 사실적인 캐릭터가 모두 작가 개인의 경험에서부터 도출되었다는 점도 재밌다. 조각가로 이상에 집착했던 보헤미안 아버지와 달리, 일러스트를 그려 집안의 생계를 책임졌던 어머니는 작품 속 무민파파, 무민마마와 꼭 닮았다.

관련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