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개념을 단순화 해간다”
2015-10-20
글 : 윤혜지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오후> 감독 차이밍량과 배우 이강생
차이밍량 감독, 이강생(왼쪽부터)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자리를 옮기는 그림자로 기억되는 영화 <오후>(2015)는 차이밍량과 이강생의 긴 대화로 완성되는 작품이다. 차이밍량과 이강생은 137분의 대화를 통해 20년 동안 다져온 신뢰를 확인하는 동시에 서로 알지 못했던 내밀한 속내를 짐작하게 된다. 폐허처럼 보이는 공간에 의자 두개가 놓여 있고 둘은 커다란 창(처럼 보이는 구멍)을 등진 채 이야기를 나눈다. 그곳은 차이밍량의 새집이다. 카메라 뒤엔 이강생의 친구 둘이 앉아 있고 영화는 “메모리카드를 갈기 위해” 두번 암전되는 것을 제외하면 롱테이크로 끊김 없이 촬영돼 있다. 차이밍량은 “어떤 것도 의도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무심결에라도 영화의 틀을 벗어나려 한 의지가 담긴 것인지 현장은 명백하게 연극 무대를 연상시킨다. 형식은 사뭇 달라졌지만 시간과 관계의 테마는 여전히 그의 영화를 관통하고 있다.

<오후>를 촬영할 때 차이밍량은 건강이 좋지 않았다. “당시에 나와 책을 내고 싶다고 모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그 안에 이강생과의 대화를 넣고 싶다고 했다. 건강이 나빠져 앞으로를 기약하기 힘드니 이강생과의 이야기들을 어떻게든 남겨두고 싶었다. 이 기회에 그를 더 이해하고 싶고 알고 싶었다. 처음에는 영화로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이미지가 너무 아름다워서 남겨두었다.” 그래서인지 영화, 생활, 꿈, 기억 등을 말하던 <오후> 속 차이밍량과 이강생의 대화는 종종 ‘죽음’으로 향하곤 한다.

차이밍량은 “나는 회복 중이지만 중풍이 생긴 이강생의 상태가 나빠져 많이 걱정”하고 있다며 “이기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내가 이강생보다 먼저 죽길 바란다. 그의 죽음을 내가 견뎌낼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내 최대 관심사는 이강생이 건강을 되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차이밍량의 답을 듣던 이강생이 불쑥 말했다. “유언을 남긴다 생각하고 얘길 해보자 하더라. 물론 무얼 얘기할 것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비밀스러운 말들이 많이 나올 줄은 나도 몰랐다. 뭘 이런 걸 다 묻나 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냥 말하게 됐다. 그런데 이 영화를 찍고선 차이밍량 감독이 돈을 안 줬다. (웃음)”

<행자>(2012)와 <서유>(2014) 그리고 그 두 영화가 스크린을 벗어난 곳에서 이뤄진 행위예술 <당나라 승려>를 거치며 차이밍량은 점점 “개념을 단순화하고 간략화하는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강생도 그가 만들어내는 스크린 바깥의 장에서 더 자유로운 연기를 펼치게 됐다. 구도자들의 오후를 지나온 우리는 내년쯤 둘의 새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고정관념을 버려야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말하는 차이밍량은 최근 이강생과 함께 제52회 금마장의 CF(youtu.be/D0Wut2dCnCo)를 찍었다. 아마도 그것이 다음 작품의 초안이 될 것이라고 그는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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