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과거와 대면하고 성숙해진다는 것
2015-10-20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는 세 자매가 15년 전 자신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배다른 여동생 스즈(히로세 스즈)와 처음 만나고 그 뒤 이들은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감독이 전작들에서 늘 안쓰럽고 대견스레 바라본 조숙한 아이들이 자라서 만들어낸 성숙한 어른의 세계, 그 초입에 있는 영화일지도 모르겠다.

-요시다 아키미의 동명의 만화가 원작이다. 데뷔작 <환상의 빛>(1995) 이후 원작을 영화화한 건 두 번째인데 어떤 면에 이끌렸던 건가.

=부모한테 버림받은 세명의 딸들이 본인들과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던 배다른 막내 동생 스즈와 함께 살아간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러면서 아버지를 부정적으로 생각해오던 첫째딸 사치(아야세 하루카)의 마음에는 변화가 생기고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새로이 쓴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불행이 되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스즈도 조금씩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인물들 내면의 성장과 과거의 기억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의 영화에서 기억은 시간이라는 개념과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다. <걸어도 걸어도>(2008),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에서처럼 이번에도 인물들은 얼마간의 시간 뒤에 잃어버린 자신의 과거와 대면하고 성숙해간다.

=요시다 아키미는 <벚꽃 동산>(1985)에서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시간의 잔혹함을 말했다. 그로부터 수십년이 흐른 뒤 <바닷마을 다이어리>에서는 ‘지나간 시간도 다시 쓸 수 있고 되돌릴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사치가 스즈와 같이 살면서 죽은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기억을 되찾아가듯이 말이다. 내 영화 속 시간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그와 같은 시간의 풍요로움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이번에도 어른보다 속 깊은 아이, 아이보다 철없는 어른이 등장한다. ‘성숙’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묻고 싶다.

=조건 없이 아이를 사랑해주는 어른이 기다리는 집을 빼앗겨버렸을 때 아이는 성숙해진다. 사치와 스즈처럼 말이다. 미숙한 어른은 스즈의 의붓엄마나 세 자매의 엄마처럼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성숙은 시간 속에서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사치의 태도에 달린 게 아닐까. 죽은 아버지가 변할 수는 없을 테고 사치가 어떻게 아버지를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치의 인생은 변할 수 있다.

-자매들의 살갑고 애틋한 정서를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 눈에 띈다.

=실제로 세 자매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을 찾아 사전 인터뷰를 했다. 이들 모두 옷 때문에 가장 크게 다투더라. (웃음) 동생이 사온 블라우스를 언니가 먼저 입어서 엄청나게 싸웠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내가 남성이다 보니 여자들끼리의 생활은 잘 모른다. 현장에서 배우들의 모습을 보며 구체적인 장면을 만들기도 했다.

-구상 중인 다음 작품도 무척 궁금하다.

=<걸어도 걸어도>와 같은 가족 드라마를 먼저 찍는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일본이 해결하지 않고 미뤄온 문제들, 오키나와 해군기지나 최근의 후쿠시마 원전 문제 등에 관한 사회성 짙은 극영화를 만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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