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중산층의 자화상, 도시의 자화상
2015-11-03
글 : 이예지
사진 : 최성열
<버블 패밀리> 마민지 감독

부동산과 흥망성쇠를 함께한 한 가족의 일대기와 현재를 그려낸 <버블 패밀리>는 피칭작 중 유일한 사적 다큐멘터리다. 마민지 감독은 부동산 브로커인 아버지와 부동산 텔레마케터 어머니, 감독 본인의 삶에 주저 없이 카메라를 밀어넣었다. 집 안 곳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카메라에 담겼고, 어색하게 브이를 그리던 부모님은 나중엔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을 잊기 시작했다. “촬영 중반까지는 관찰자 입장에서 촬영하려 했다. 그런데 점점 거리가 좁혀지면서 나 역시 카메라 안으로 들어가게 되더라. 급기야 경계가 없어져 촬영 중에 싸우기도 했다. (웃음)” 그러나 <버블 패밀리>는 단순히 한 가족의 자화상에만 머물지 않는다. 잠실 토박이인 마민지 감독은 1970년대 섬이었던 잠실이 개발된 과정과 그에 따른 부동산 열풍, 중산층의 모습을 다면적으로 그려낸다. 가족의 자화상은 곧 중산층의 자화상이자 도시의 자화상이 됐다.

“공간과 지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그녀가 태어나고 자라온 잠실을 탐구의 공간으로 삼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잠실은 신도시 개발의 초기 모델이 되는 상징적 지역이다. 지방에서 상경해 잠실에 자리잡은 부모님은 건축사업을 해 건물만 서른개 이상 보유했고, 부동산 열풍으로 단번에 중산층의 지위에 올랐다. 잠실 개발사를 찾아보면 토지구획 자료들이 있는데, 부모님이 집을 지었던 위치, 시기와 일치한다.” 잠실 개발사 한복판에 있었던 생생한 증인을 확보한 그녀는 1970, 80년대 잠실 풍경을 담아낸 파운드 푸티지 영상들을 구입해 잠실의 지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그녀의 탐구는 부동산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 종로의 땅을 매입해 건축사업을 하셨다. 그런데 법규가 바뀌면서 건물을 못 짓게 되어 돈을 날려버렸다. 사업을 접고 건물도 팔고 월세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부모님은 지금도 부동산 한방을 꿈꾸신다.” 그녀가 포착하고자 하는 것은 그 욕망의 근원이다.

공간과 지역사에 대한 마 감독의 호기심은 문화연구를 공부하면서 시작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한 그녀는 문화연구 수업에서 공간성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됐고, 졸업작품으로 다큐멘터리 <성북동 일기>를 찍으며 방향성을 전환해 전문사에는 다큐멘터리 전공으로 진학했다. <성북동 일기>에서도 공간성과 지역사에 대한 그녀의 비판적인 시선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성북동의 북정마을은 도시 재생사업을 통해 마을이 관광화되는 과정을 거쳤다. 공간을 자본화하는 젠트리피케이션(특정 지역이 주목을 받으면서 중산층이 유입되며 임대료가 올라 원주민은 떠나고 기존 지역색을 잃는 현상을 이르는 용어)에 관심이 많다.”

풍자적 내용의 사적 다큐멘터리에 가족이 부담을 느끼진 않았을까. 처음엔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던 부모님은 두 차례의 피칭상 수상 후 영화에 대한 기사를 접하고 영화 촬영을 지지해줬다(<버블 패밀리>는 전주국제영화제의 프로젝트마켓에서 다큐멘터리 피칭 최우수상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피치&캐치에서는 더펙&기록문화보관소상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인천다큐멘터리포트는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할 마지막 피칭의 기회다. “신인의 패기로 임하겠다”는 그녀의 마음은 벌써 단단히 여물어 있다.

<버블 패밀리>의 결정적 순간

“어느 날 아버지가 영화 제작비를 부동산에 투자하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 어머니는 딸이 영화 찍는 돈까지 쓸 작정이냐며 역정을 내셨지만, 다음날 전화로 그 부동산 수익률을 묻고 계셨다. (웃음)” 그녀는 안타까우면서도 웃긴 이 상황을 영화의 하이라이트로 꼽았다. “<버블 패밀리>는 욕망을 풍자적으로 드러내는 블랙코미디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웃픈’ 감성을 관객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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