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바깥’에 대한 감각을 찾는다
2015-11-03
사진 : 최성열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지도를 만드는 사람> 이강현 감독

이강현은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려내는 사람이다. <파산의 기술>(2006)에서는 현미경으로, <보라>(2010)에서는 망원경으로 시대의 초상을 그려냈다. 이번 작품의 제목은 다른 어떤 작품보다 구체성을 띤다. 그가 추상화에서 인물화로 선회하려는 것인지 궁금했다. 아직 보지 못한,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로 이야기를 나누기란 쉽지 않았다. 내쪽에선 좀더 명확한 좌표를 원했고, 감독은 좌표 너머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랬기에 인터뷰는 종종 길을 잃었다. 알 듯 말 듯한 대답 어딘가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작품이 반짝 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았다.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어느 날 지도가 생각났다. 지도가 주는 여러 가지 느낌이 감정적인 울림을 줬다. 지도라는 것은 황당무계하다. 그 안에 의미가 꽉 차 있는데 텅 비어 있고, 현실의 가장 완벽한 모사물인데 실제 현실은 아니다. 장소를 전제하고 있으면서도 ‘지도 밖은 뭐가 있지?’ 생각하게 하는 물건이다. 현대에는 위치정보가 개체의 기본 속성이 됐다. 스마트폰이 대표적이다. 이때 개체정보는 지도 안의 이동을 전제한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중의적일 수도 있는데 지도가 누락시킨 것은 무엇인가, 지도 밖은 무엇인가, 밖으로 나갈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것은 기술과 관련된 의문일 수도 있고, 고전적인 질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지도를 측량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지구의 표면을 재는, 표면으로서의 사람을 바라볼 때의 느낌이 중요했다.

-지도의 명확성이 사람들을 밖에 나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밖에 나갈 수 없게 만든다고 하는 인식이 흥미롭다.

=바깥에 대한 감각을 찾는 것이 영화의 방식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바깥이 여기라고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지도는 전체 세상을 스캔하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때 사람의 얼굴을 지우고 자동차의 번호판을 지운다. 우연히 한 사람의 얼굴이 계속 찍혔다고 가정할 때 얼굴을 지울 때의 감정이 있을 것 같다. 존재가 살아가는 방식이 있다고 했을 때 어느 날 ‘뭐지?’라고 느끼게 되는 감각들을 찾고 싶다.

-형식에 대한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려 하는가.

=오히려 나는 형식에 대한 고민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방식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못하거나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줄거리, 캐릭터가 없지는 않은데 감정의 결이 중요하다. 발화주체가 존재하지만, 가상의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체가 전면에 나올 것 같다. 등장인물로서의 화자가 아닌 다른 층위의 화자가 등장할 것 같다.

-전작과 어떤 점에서 달라질 거라 예상하는가.

=가장 큰 변화라면 스스로에게 좀더 솔직한 영화라는 것이다. 화살을 내 몸통에 통과시킨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외부에 화살을 겨누는 것을 못 견디겠다. 대상을 찾아 헤매는 것을 하지 않으려 한다. 대상을 찾아 헤매는 것은 저널의 영역이거나 장사의 영역이지 영화가 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이번 작품에서 내 얘기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른 면에서 발가벗어야 하는 일이다. 소재적으로는 전작과 동일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도를 만드는 사람>의 결정적 순간

두개만 이야기한다면 하나는 배경으로 세상이 흐르고 있는 곳의 측량사의 이미지, 그리고 거대한 공동묘지다. 영화의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도의 끝은 아마 공동묘지일 것이다. 지도에서 밖으로 나간 존재들이 있다는 하나의 확실한 표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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