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다큐멘터리의 창작자, 투자자, 방송, 극장 관계자가 서로를 알게 하는 게 중요하다
2015-11-03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강석필, 김원중, 조지훈 프로그래머 인터뷰
강석필, 김원중, 조지훈 프로그래머(왼쪽부터).

2013년 인천다큐멘터리피칭포럼으로부터 출발한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이하 인천다큐포트)는 2014년 국내 프로젝트에 국한되지 않고 아시아까지 영역을 확장한 후 올해 드디어 두 번째 행사를 치른다. 감히 단언컨대 첫걸음은 성공적이었다. 비교적 신생 프로젝트지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건 다변화하는 다큐멘터리 시장의 시대적 요구에 정확히 부합하는 방향성과 함께 완숙하고 매끄러운 진행 덕분일 것이다. 이같은 순조로운 출발에는 인천다큐포트를 이끌어가고 있는 프로그래머들의 명확한 구상과 탄탄한 역량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다큐멘터리 관련 분야에 오랜 기간 몸담아온 강석필, 김원중, 조지훈 3인의 프로그래머는 “한국 다큐멘터리 시장의 변화와 시대의 요구를 감지하고 물꼬를 트기 위해 인천다큐포트를 시작했다”고 입을 모았다. 비록 상황이 어렵고 힘들지라도 다큐멘터리는 여전히 한국영화에서 가장 역동적인 영역 중 하나다. 3인의 프로그래머에게 인천다큐포트의 방향과 한국 다큐멘터리의 미래에 대해 물었다.

-각자 다른 일을 하면서 인천다큐포트의 프로그래머를 맡고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다큐포트를 새롭게 기획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원중_다큐멘터리 분야가 생각보다 협소하다보니 오며가며 자주 만나게 된다. 현재 SJM문화재단 사무국장으로 근무 중인데, 전주영화제 다큐멘터리 피칭 때 조지훈 프로그래머와 여러 업무를 함께했고 강석필 감독님의 <춤추는 숲>(2012)을 우리 재단에서 지원하기도 했다. 세 사람 모두 만나서 이야기할 때마다 한국 다큐멘터리의 상황에 대해 비슷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러던 차에 지지난해 인천영상위원회의 예산을 받을 기회가 있어 로컬 버전으로 국내 다큐 작품을 중심으로 한 피칭포럼을 시작했고, 그 성과가 나쁘지 않아 지난해부터 아시아로 확장해 지금의 다큐포트가 됐다.

조지훈_일련의 문제 인식은 전주에서부터 공유됐다. 전주에서 시도해봤지만 그간 다큐멘터리 피칭은 지원금의 또 다른 형태에 그치는 게 다반사였다. 기존 틀에서는 한계를 느꼈고 좀더 산업적인 구조 안에서 투자, 기획, 개봉의 선순환 구조가 필요하다고 봤다. 여기 두분과 그에 대한 문제 인식을 함께하면서 다양한 포맷의 다큐들이 제작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인천다큐포트는 지원금의 또 다른 통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산업구조를 만들기 위해 여러 콘텐츠와 파트너들을 한자리에 모아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한 만남의 장이다. 쉽게 말해 결혼정보회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웃음)

강석필_인천영상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다 보니 주로 여러 공공기관에서 예산을 끌어오는 담당으로 다큐포트에 참여했다. (웃음) 이런저런 행사에서 함께 업무를 하다 보니 전체적인 지향이 비슷해 자연스레 의기투합했다. 세명 모두 한국 다큐멘터리가 어느 지점에서 한계에 부딪쳐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한국 다큐멘터리 환경에 대해 세분이 공유한 문제는 어떤 부분인가.

=강석필_한국에서 다큐멘터리는 영역별로 지나치게 분리되어 있다. 방송과 영화 영역의 선순환이 불가능한데 그렇다고 한 분야에서 자생 가능한 구조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독립다큐를 예로 들면 1년에 30, 40편이 개봉하는데 평균 관객은 3천명 남짓이다. 다음 작품을 위한 제작비 마련은커녕 생계 유지도 힘들다. 제대로 된 생활은 고사하고 모든 걸 바쳐 올인해야 하고 주변에서도 그걸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다. 방송쪽도 별반 다를 것 없다. 대부분의 경우 저작권은 방송사가 가지며 제작비는 업체에 전가한다. 그나마 새로운 판로가 해외 시장인데 이쪽도 몇몇 사례를 제외하곤 형편이 좋다고 할 수 없다. 일단 한국 다큐에 대해 거의 모른다. 이런 근원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방송과 영화, 제작과 기획, 배급이 서로 교류가 없다. 창작자, 투자자, 방송, 극장 관계자 등 산업의 구성요소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알게 하자는 게 큰 틀에서의 목적이다.

김원중_한국 다큐의 생태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제작비 조달 방식은 극소의 지원금에 전적으로 매달리는 형태다. 아니면 오늘 벌어서 내일 촬영하거나. 방송쪽도 당장의 생계를 위해 쳇바퀴 돌리듯 외주를 받다보면 정작 자기 작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적당한 지원금이 있고 적절한 관객을 만나서 재투자가 이루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인천다큐포트에서 방송, 영화 양쪽 구분 없이 다큐멘터리라는 이름하에 함께 가자고 하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의 접근이다. 가령 방송 다큐를 영화 버전으로 재가공할 수 있고, 방송 플랫품을 다양화할 수 있다. 플랫폼이 늘어나고 많은 관객, 시청자와 만남으로써 선순환 구조를 실현시키는 것이다. 인천다큐포트가 지향하는 건 다양성이다. 실험적인 작품부터 대중적인 방식까지, 방송에서 스크린까지 폭넓게 아우르는 작품들이 필요하다. 다큐멘터리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영화제가 아닌 마켓 형태를 취한 이유가 있나. 시드 머니를 확보하기 위한 다큐멘터리 피칭부터 판매를 위한 러프컷 세일, 산업 관련 컨퍼런스 등 다양한 방식이 눈에 띈다.

=강석필_영화제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봤다. DMZ국제다큐영화제, EBS국제다큐영화제 등 쇼케이스 역할을 하는 창구는 기존 영화제들로도 충분하다. 지금은 산업적인 플랫폼이 필요하다는 게 공통적인 견해였다.

김원중_현재 다큐 감독들에게 절실한 건 작품을 공개할 창구가 아니라 공개된 작품이 수익으로 돌아와 다시 제작할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좋은 작품들은 해마다 많아지고 사람들의 눈높이가 높아져 작품의 퀄리티도 올려야 한다. 당연히 제작비도 올라가기 마련이지만 현재는 이를 감당할 시장이 없다. 그 물꼬를 터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상금을 통한 지원금의 형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국내외 업체들을 대상으로 프리 세일즈를 하는 곳이다. 선판매를 통해 제작비를 일부 충당하거나 투자를 받아 후반작업에 힘을 얻기도 한다. 제작비로 퀄리티를 높인 작품들이 다른 영화제나 실제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얻는다면 더할 나위 없다.

조지훈_드는 수고로 말하자면 웬만한 영화제 하나 시작하는 것만큼 디테일한 부분에 손이 많이 간다. 해외 업체의 의사 결정자들도 초청해야 하고, 국내 프로젝트도 발굴해야 하며, 멘토링 등을 통해 감독들의 피칭 과정도 개발해야 한다. 무엇보다 다양한 비즈니스 테이블을 마련해 서로를 소개하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만남을 성사시켜야 한다. 양쪽에서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국내 프로젝트로 출발했다가 지난해부터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범주를 넓혔는데.

=강석필_2013년 다큐포럼의 출발은 일단 벌여보자였다. 모든 조건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할 순 없었다. 파일럿 개념으로 시작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해외 시장을 고려할 때 한국 다큐으로는 영향력 있는 업체들을 불러오기가 어려워 아시아 지역을 블록화해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국내 프로젝트들을 위해서라도 아시아 마켓을 기능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물론 내용적으로 볼 때도 아시아 다큐는 서로 영향을 미치며 동반성장해야 한다.

김원중_무작정 하고 보자는 건 아니었고(웃음), 비전이 있다고 봤다. 이미 아시아 마켓에 대한 열망은 무르익어 있다. 해외는 유럽 시장 중심이고 바이어들도 대부분 유럽에 있는데 한두 국가, 한두 작품으로는 그들을 데려오기 어렵다. <액트 오브 킬링>(2012) 같은 작품을 보건대 최근 유럽쪽에서도 소재로서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아무래도 그쪽 사회는 이미 안정화 되어 있으니까. 하지만 아시아 각 국가는 마켓에 여력이 없다. 초청에 드는 비용도 상당한 만큼 아시아를 한데 묶어 진행하면 비용 절감 효과도 있다.

강석필_아시아에 대한 유럽의 관심은 일견 문화적 제국주의라는 부정적인 견해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점차 포커스가 아시아로 오고 있는 건 분명하다. 이 시점에 아시아 시장 전체를 블록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다만 현실적인 장벽이 있다. 아시아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해외 마켓에 직접 나가기에는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가뜩이나 적은 제작비에 그런 출장비를 자주 쓸 순 없지 않나. 언어의 문제도 있고. 실제로 해외 마켓을 돌아다니는 경우는 다섯팀이 채 안 될 거다. 그럴 거면 차라리 불러와서 안방에서 진행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해외에 나가면 수많은 작품 중 한 작품이 되지만 여기서는 온전히 국내 작품을 집중력 있게 소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영향력 있는 해외 세일즈 업체들을 초청하는 게 관건이다. 반응을 들어보면 웬만한 해외 마켓 못지않은 디시전 메이커들이 대부분 참석한다고 하던데, 비결이 무엇인가.

=김원중_결국은 인맥으로 움직이는 거다. 영향력 있는 인사를 중심으로 해서 네트워크에 대한 협조를 받았다. 해외 자문위원으로 있는 캐롤리나 리딘과 크리샨 아로라의 도움이 컸다. 각각 영화와 방송쪽으로 발이 넓어서 그들의 자문과 추천으로 네트워크를 넓혀나갔다.

강석필_해외 디시전 메이커를 다 데려올 수 없는 건 비용 문제도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저 유명인사를 불러 외양을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하는 것보다 실제로 성사될 만한 사람들, 아시아에 관심이 있는 이들, 우리 작품에 투자를 하고 구입할 만한 사람들을 불러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자문위원들의 도움이 컸다.

조지훈_이들로부터 도움받은 네트워크들을 우리가 배우고 이어받아서 우리 것으로 소화하고 점차 전문화해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니 현재 헌신적으로 활동 중인 젊은 스탭들, 다큐에 깊은 안목을 가진 친구들이 열심히 배워 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적지 않은 시간과 많은 자극, 훈련이 필요하겠지만.

김원중_평화적 정권 교체를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고대하고 있달까. (웃음)

-또 하나의 특징은 마켓과 미팅 이외에 다큐 랩 운영이나 피칭을 위한 멘토링 등 교육과 상담에도 상당히 공을 들인다는 점이다.

=강석필_다큐 감독들이 피칭까지 준비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일부 부정적인 견해가 있는 것도 안다. 피칭 자체가 상업화, 이벤트화하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들었다. 완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려주고 신경 쓰는 건 피칭을 잘하는 요령이 아니라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 위한 과정이다.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사 결정자들의 피드백을 받고 작품을 되돌아보며 객관화한다. 타인을 설득시키는 과정에서 자신도 정리가 되는 것이다.

김원중_오해가 있는데 해외 마켓에 비하면 피칭의 정도가 그리 세지 않다. 우리의 방점은 비즈니스 미팅과 매칭이다. 피칭 멘토링은 의무 참석도 아니다. 처음에는 피칭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어서 되도록 멘토링에 참가하라고 했는데 이미 아는 분들은 생략해도 괜찮다. 게다가 자문위원들은 세일즈 업체나 투자자가 아니라 다큐멘터리 선배나 동료들이다. 서로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조차도 선택이니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조지훈_피칭 훈련은 전주에서도 운영한 적이 있는데 결국엔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이지 잘 포장하기 위한 기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다. 해외 전문가의 입장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좋은 기회다. 멘토링, 워크숍 등에 참여해본 분들의 만족도는 높다. 다른 사람들의 프로젝트를 들으며 배우는 것도 많다고 하더라.

-지난해 인천다큐포트에 대한 평가와 2회째를 맞는 소감, 그리고 앞으로의 바람이 궁금하다.

=강석필_해외 인사로부터 지난해 행사는 첫회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잘 구성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적재적소에 만남의 자리를 배치했다는 평이었다. 차곡차곡 경험과 실적을 쌓아나가려 한다.

김원중_한국 다큐에 대한 평은 조금 갈렸는데 수준은 높지만 지역적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바로 정확히 인천다큐포트가 지향하는 방향이다. 해외로 외연만 넓히자는 행사가 아니다. 국내를 중심으로 다큐 시장을 선순환시키자는 게 우리의 궁극적인 바람이다. 언젠가 이런 행사가 필요 없어질 만큼 시장이 활성화된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용의가 있다. (웃음)

조지훈_결국엔 양질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공개하는 게 이 행사의 힘이다. 좋은 콘텐츠가 있으면 해외에서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다만 전통적인 극장 개봉과 방송 방영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각각의 프로젝트가 이 자리에서 서로에게 맞는 파트너들을 찾아내면 좋겠다. 일단 와보시고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어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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