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의문과 불쾌감
2015-11-03
사진 : 최성열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호스트네이션> 이고운 감독

호스트네이션은 미군 주둔국을 가리키는 단어다. 한국에서 이 단어가 가지는 함의는 간단치 않다. 한반도의 역사,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정세는 물론이고, 여성과 이주, 노동에 대한 문제까지 광범위하게 내포한다. 이고운 감독은 미군 주둔을 둘러싼 시스템의 최말단에 있는 기지촌 여성을 중심에 두고 시스템의 이면을 파헤치려 한다.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자로 출발한 감독은 “해외 취재를 다니면서 ‘한국인이 제일 나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한국의 성매매 산업을 실감하면서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의문과 불쾌감이 다큐멘터리 제작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기지촌 여성을 위한 여성단체 ‘두레방’과 인연을 맺으면서 그녀의 계획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미군기지에서 일하는 필리핀, 러시아 여성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면서 기지촌 여성들과 인연을 맺고 그녀들을 찍었다. 그러다 다큐멘터리를 찍기로 한 여성들이 돌연 촬영 거부를 선언하면서 찍었던 분량을 모두 날려야 했다. 그사이 정부의 정책 역시 달라졌다. “처음에는 의정부만 찍을 생각이었다. 정부가 2016년을 기준으로 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면서 대부분이 의정부를 떠나가고 남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끝물’이었던 거다. 이들을 통해 변화된 모습을 담고 싶었다.” 그런데 이전 계획이 잠정적으로 중단되면서 의정부만이 아니라 송탄, 군산 등으로 취재 범위를 넓혀나갔다. 돌파구가 된 것은 송탄에서 일어난 시위였다. “미 공군 사령관이 ‘주스걸’(외국인 미군위안부 여성)들이 고용된 클럽에 군인들의 출입을 금지시키면서 이에 따른 클럽 업주들의 저항이 있었다. 이때 인터뷰를 하면서 업주들과 친해져, 그들을 통해 취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감독은 기지촌 여성들의 노동에 기생하는 클럽 업주들에게 비판적인 감정이 있었지만, 취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들과 친해져야 했다. 모순적인 감정을 가진 것은 클럽 업주들 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불법과 합법적인 행위 사이에 외줄 타기를 하는 업주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어디까지 오픈할지를 두고 물타기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고운 감독은 “가끔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행위에 대해 변명을 하는데 결국 그것이 자신의 잘못된 행위를 입증하는 블랙코미디 같은 지점이 이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자칫 기지촌 여성에 대한 일반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작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 대해 감독은 “소재를 이야기하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올리는 어떤 상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기지촌보다 위안 산업이라는 말을 쓰려 한다”고 운을 뗀다. “이주 노동의 문제로, 캠프타운 비즈니스로” 이야기를 확장하거나 전환하려 하는 것도 미군위안부 여성들의 이야기를 자극적인 소재로만 소비하지 않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방송사에 소속된 제작 PD였던 감독이 영화로 옮겨오게 된 것은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의 변화 때문이었다. “좋은 다큐멘터리가 나올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의 교양 다큐가 연성화됐다. 깊고 진하고 어려운 이야기를 TV에 틀 방법이 없다. 인간의 이야기 중 따뜻한 이야기 말고 직설적이고 어두운 이야기도 하고 싶었다.” 이고운 감독은 그 후 유학을 떠나 실험영화를 공부하기도 했다. 현재 70% 정도 촬영을 완료한 상황이다. “올겨울까지만 하자는 생각으로” 버티는 중이라는 감독은 여전히 어디까지 담을지를 고민하면서 겨울을 날 계획이다.

<호스트네이션>의 결정적 순간

평소에는 필리핀 여성들과 짧은 영어로 소통하지만, 긴 인터뷰가 필요할 때는 통역의 도움을 받는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데 알 것 같은 순간이 생겼다. 번역을 하지 않았는데 번역을 한 것 같다고 할까. 단어와 단어, 마음과 마음이 만난 순간이 있다. 이 느낌이 관객에게도 전달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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