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는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나?” 박혁지 감독의 관심사는 언제나 한결같다. 보는 사람이 흥미롭게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 바로 재미다. 이를 위해서라면 기존의 틀은 언제든 허물 수 있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의 기획안은 마치 극영화 시나리오처럼 구성이 흥미롭다. 실제로 그렇게 진행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감독의 머릿속에는 명확한 그림이 이미 잡혀 있는 듯하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처럼 흔한 소재라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참신한 장면으로 다가올 수 있다. 무당이 되어야 했던 고등학생 소녀의 사연을 다룰 때도 그는 흔한 운명론이나 어두운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소녀가 왜 무당이 되었어야 했는가’가 아니라 ‘무당의 능력을 지닌 소녀는 어떤 오늘을 살고 있을까’가 질문의 출발이다.
-무당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적지 않은데, 이 소재에 끌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무녀 관련 다큐가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친구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던 건 꿈을 통해 자기의 미래를 본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나쁜 일에 대한 징후를 꿈에서 보고 미연에 방지한 경험담들을 듣는데 그게 흥미로웠다. 자기의 미래를 안다면 그 사실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남들이 갖지 못한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 이를테면 엑스맨처럼 느껴졌다.
-시간이나 꿈처럼 표현하기 모호한 부분이 많은데 어떻게 장면화할 건지.
=나도 그게 고민이다. (웃음) 본격적인 촬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수진이(소녀 무당)에게 촬영 동의를 얻은 상태다. 몇 가지 계획은 세워뒀지만 어떻게 흘러갈지, 수진이와 어떤 교감을 나누게 될지는 미지수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서 더 기대되는 것도 있다. 다큐멘터리의 의외성이라는 게 그런 부분 아닌가. 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찍되 확보된 장면 안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건 감독의 몫이라 생각한다. 방법은 다양할 수 있지만 수진이가 꾸는 꿈이 무엇인지, 그 꿈이 소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
-그 말처럼 이야기가 역순으로 흘러가는 독특한 구성이다. 시간이란 소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인가.
=어디까지나 기획‘의도’다. 제일 마지막에 찍을 걸 제일 앞에 놓고 지금 찍을 걸 제일 마지막에 가도록 하고 싶다. 사실 극영화에서는 가능한 방식이다. 그러려면 기가 막힌 구성과 사건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아직 촬영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어떻게 흘러갈진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리는 밑그림, 이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바는 분명히 있다. 다큐멘터리도 극적이고 흥미가 당기는 구성이 필요하다.
-언제부터 구상한 이야기인가.
=소재는 예전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본격적으로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수진이를 찾아간 건 지난해 여름부터다. 가끔씩 찾아갔는데 수차례 거절하다 얼마 전에야 겨우 동의를 얻었다. 갑자기 허락을 받고 나니 문득 이 친구가 꿈에서 무언가를 본 게 아닐까 궁금해지더라. 이런 호기심까지 포함해서 소녀의 생활과 주변의 반응을 관찰하려 한다.
-<춘희막이>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바로 시작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주변에선 <춘희막이> 끝내고 잠시 쉬어가는 것도 좋지 않느냐고 했지만 중간에 공백이 생기는 게 싫었다. 일단 시작하면 적어도 2, 3년은 걸릴 테니 <춘희막이>가 끝나는 지점에서 다음 프로젝트로 자연스럽게 디졸브되길 바랐다.
<시간을 꿈꾸는 소녀>의 결정적 순간
<춘희막이>가 정적이었다면 이번에는 좀더 역동적이다. 젊은 세대들이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가능한 밝고 가볍게, 딱딱한 다큐 틀에서 벗어나 편집의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하고 싶다. 물론 이 모든 게 잘 어울린다는 전제하에 최대한 재미있게 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