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 없는 밴드, 그럼에도 음악을 하려는 열정으로 가득 찬 밴드가 있다. <울트라 젠틀맨>은 보컬의 탈퇴와 교체, 부재에도 굴하지 않고 음악을 해온 밴드 ‘더 모노톤즈’의 행적을 좇는다. 밴드의 리더이자 노브레인과 문샤이너스 출신 기타리스트 차승우는 한때 홍대 인디신의 부흥을 이끌었던 록스타다. 그가 마지막으로 결성한 더 모노톤즈는 보컬을 영입하려 한다. 들어오는 보컬들마다 족족 실력 미달, 성격 차이 등으로 나가버리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결성 후 3년째, 그들을 좇은 카메라는 보컬을 찾는 밴드만큼이나 집요하다. 집요함의 주인공은 갈재민 감독. 차승우의 팬이자 중학교 친구로서, 록 음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인물이다. “해외에는 록 뮤지션에 대한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기록 영상이 많은데 한국엔 거의 없더라. 차승우와 더 모노톤즈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 찍기 시작했다.”
밴드의 결성과 방황을 함께한 그는 어느 시점에서 이 기록물이 영화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을까. 확신은 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세 번째 보컬이 탈퇴해 보컬을 찾던 때 공연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보컬 없이 연주 밴드의 형태로 공연을 해내더라. 그때 보컬이 없어도 록을 완성할 수 있고, 그들의 열정은 식지 않을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가 그 공연에서 찾아낸 것은 “원하는 삶을 위해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였다. “이후로도 이탈이 반복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때에도 부단히 나아가려 애쓸 거다.” 영화의 제목 <울트라 젠틀맨>은 그러한 태도를 표현하는 제목이다. “더 모노톤즈의 밴드 이름 후보 중 하나였는데, 멤버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타협하지 않고 원하는 이상향에 다가가는 모습이 현재를 살아가는 신사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3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더 모노톤즈의 제5의 멤버로 거듭난 감독은 캐나다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은행에서 일하던 성실한 ‘범생이’였다. 캐나다가 주는 안정감이 지루하다고 느낄 즈음, 2000년대 초반 한국영화는 호황기를 맞이했고 그는 토론토국제영화제 등에서 한국영화들을 접했다. 늦기 전에 영화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무작정 귀국한 그는 영상대학원을 졸업한 뒤 인디밴드 뮤직비디오, 온라인게임 <블레스>의 한스 짐머 O.S.T 제작과정 다큐멘터리 등을 만들었고, 3년간 더 모노톤즈를 찍으러 다녔다. “주변 사람들은 어리석게 보고, 나 역시 캐나다에서 회사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서 불안감이 들었다. 그렇기에 더욱 밴드에 매달렸고, 그들의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영화는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연출도 촬영감독도 없이 혼자 작업해오던 그는 2014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다큐멘터리 제작지원을 받았고, 시네마 달의 김일권 대표와의 미팅 자리를 주선받았다. 아이템에 보편적인 힘이 있다고 판단한 김일권 대표는 <울트라 젠틀맨>의 제작자로 합류했다. 그렇게 “은인이자 동지”를 만난 그다. <울트라 젠틀맨>은 현재 90% 이상 촬영한 상태다. 새 보컬이 합류한 더 모노톤즈는 3일 전 첫 번째 앨범 녹음을 마쳤고, 영화의 엔딩이 될 첫 공연의 촬영만을 남겨두고 있다. 확정된 건 없지만 2016년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한다. 그가 생각하는 <울트라 젠틀맨>의 강점은 날것의 진정성이다. “처음부터 기획의도도 없었고, 멤버들을 인터뷰하거나 상황을 설정한 적도 없다. 내레이션도 가능한 한 넣지 않을 거다. 관객에게도 내가 느낀 바가 진솔하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울트라 젠틀맨>의 결정적 순간
결국 보컬을 찾지 못한 채 기타, 베이스, 드럼 3명이서 오른 공연 장면. 원하는 바는 찾지 못했어도 그들은 자신을 살게 하는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간다. 마침내 보컬을 찾아내는 것이 아닌, 보컬을 찾지 못한 채 공연을 강행하는 이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후에 보컬이 들어왔기에 밴드가 완성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공연을 계기로 그들은 분명 변했고, 앞으로 어떤 일이 반복되어도 포기하지 않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