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이 일본에서 극심한 사회문제로 대두된 시점, 헤이트 스피치(혐오발언)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 집단이 등장했다. SNS를 통해 익명으로 모이기 시작해 혐한반대 맞불 시위를 벌인 ‘카운터’가 그들이다. 15년 전 유학을 떠난 후 줄곧 일본에서 지내온 이일하 감독은 카운터 안의 무력 제압부대 ‘오토코구미’, 그중에서도 야쿠자 출신인 대장 다카하시를 주인공 삼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카운터의 활동은 혐한 반대 시위에 그치지 않고 아베 정권의 안보법안 개정과 평화헌법 개정 시도에 맞서는 시민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엊그제도 시위에 참여하고 왔다는 그는 앞으로도 한동안은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할 예정이다.
-오래 일본에서 생활했다. 재일동포 학생들의 권투 동아리 활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보 권투부>도 완성했다.
=재일동포로 아는 사람도 많다. (웃음) 소수자 외국인으로서 일본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더라. 10월22일 개봉하는 <울보 권투부>는 재일동포라는 존재의 함의가 저변에 깔려 있다. 그래서 오히려 캐릭터를 부각시키며 쉽고 재미있게 접근하려 했다. 만화 <슬램덩크> 같은 얘기랄까.
-대중적인 화법을 지향하는 편인가.
=영화는 관객과의 만남으로 완성된다. 관객을 극장에 끌어올 수 있는 영화를 하고 싶었고, 다큐멘터리는 무겁다는 인식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카운터즈>도 혐한 반대 시위라는 무거운 주제를 가벼운 블랙코미디로 풀어낸다. ‘전직 야쿠자가 혐한 반대 시위 선봉장에 나선다’는 것부터 흥미롭지 않나. 무력으로 시위를 저지하는 집단인 오토코구미의 존재도 특이할뿐더러, 대장인 다카하시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다.
-카운터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혐한은 일본 사회의 큰 이슈다. 연말 유행어로 헤이트 스피치가 선정됐을 정도다. 나 역시 거리에서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이하 재특회)의 시위를 봤다. 눈앞에서 너희의 역사는 노예의 역사라고 부르짖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에 맞서 혐한 반대 시위를 벌이는 일본인들도 있는 거다. 국회의원, 저널리스트, 변호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혐한 반대 운동을 하더라.
-카운터에서도 오토코구미를 서사의 주된 소재로 택했다.
=오토코구미는 시위 과정에서 세번 구속되기도 했다. 그들이 왜 이런 힘든 일에 나섰는지 나도 궁금했다. 면담을 신청하자, 오토코구미의 ‘떡대’ 네명이 나왔다. “당신들이 왜 이런 활동을 하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며 설득했다.
-그들의 시위를 어떤 시각에서 담아내고 싶었나.
=기존 진보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고고하기만 한 먹물 좌파들에겐 이상과 현실이 괴리되어 있다. 그러나 카운터와 오토코구미는 내 손을 더럽히더라도 행동해서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주의다. 한편 카운터의 시위는 시위로만 그치지 않는다. 뮤지션은 랩을 만들어 공연하고 디자이너는 로고를 만드는 등 예술로 풀어낸다. 이런 새로운 좌파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기서 민족주의적 색채도 배제하려고 했다. 카운터는 한국인이 아닌 어떤 국가의 인종이 혐오당해도 일어설 이들이다.
-영화는 현재 어떤 단계인가.
=60% 정도 촬영했다. 카운터의 활동은 아베 정권의 안보법 개정에 대항해 평화헌법을 수호하려는 시민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이들이 재특회와 우익세력의 협박 속에서 어떻게 대항해나갈지는 영화에서 확인하시라. 내년 말쯤 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 거다.
<카운터즈>의 결정적 순간
‘전직 야쿠자가 나서 혐한 시위를 제압한다’는 로그라인 그 자체다. 한국으로 치면 ‘조폭이 일베를 응징한다’ 정도가 될까. (웃음) 유럽 바이어들도 벌써부터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들에겐 ‘네오나치에 저항하는 마피아’ 정도의 이야기가 되니 흥미롭지 않겠나. 더 나쁜 놈을 잡는 나쁜 놈의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