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번역가가 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솔직히 내 아들이 번역일을 한다고 하면 못하게 할 겁니다. ‘열심히 하면 잘될 거야!’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요.” 20년 가까이 영화 번역일을 해온 박지훈 번역가조차 이렇게 말했습니다. 영화 번역가로서 일할 수 있는 풀이 아주 좁기 때문이지요. 예전에야 SBS, MBC 등이 운영하는 영상번역아카데미가 있었지만 현재로선 개인이 가르치는 작은 클래스가 전부입니다. ‘번역가가 되는 길’에 대한 공통적인 답은 실력과 적극성입니다. 윤혜진 번역가는 “맨땅에 헤딩”한 경우가 태반이라 하였고 박지훈 번역가도 일을 처음 시작할 땐 배급사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문을 두드렸다네요. “처음 제대로 못하면 데뷔작이 유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대개 한번 의뢰해보고 잘하면 계속 의뢰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느 정도 실력이 준비됐을 때 부딪쳐야 합니다.” 박지훈 번역가의 조언입니다. 덧붙이자면, 윤혜진 번역가가 수석 강사로 있는 더라인 아카데미도 있습니다. “데뷔할 때까지 책임지고 가르친다”고 호언장담했으니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Q. 번역가가 되려면 외국어는 얼마나 잘해야 하나요?
A. “토익, 토플, 텝스는 발가락으로 풀어도 만점을 받고, 미국 남부 사투리는 물론이고 이탈리아인들의 영어 발음까지 한번에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는 돼야죠. 이게 원칙적인 대답입니다. 다시 말해 원칙적으로 영어는 잘하면 잘할수록 좋아요. 하지만 한국어 능력도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영어보다 국어를 더 잘해서 여기까지 왔다는 황석희 번역가의 답변입니다. 외국어 능력과 번역 능력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인데요, 인터넷으로 슬랭(속어)이나 외국어 사투리까지 찾을 수 있는 시대니만큼 번역가를 꿈꾼다면 한국어 공부에도 투자를 많이 하라고 조언합니다. 참고로 박지훈 번역가는 외국어를 잘하려면 “단어를 많이 외울 것”을 강조했습니다. “단어를 많이 외워두면 어떻게든 의미가 통해요. 구어에 익숙해지려면 외국인들과 어울리며 말을 많이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고요.”
Q. 영화 한편을 번역할 때 한달의 평균적인 번역료는 얼마쯤인가요?
A. 번역가들마다 편차가 아주 큽니다. 직배사 영화를 거의 도맡는 박지훈 번역가는 큰 기복 없이 300만~400만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윤혜진 번역가는 “경력과 회사에 따라 천차만별인데 나의 경우 평균 150만~200만원”이라 밝혔습니다. “케이블 방영용 영화는 편당 30만원 정도예요. 일이 끊기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한달 내내 작업해도 200만원을 간신히 넘길까 말까입니다. 영화제 자막 번역은 영화제의 내부 규정에 따르는데, 대개는 60만~70만원 선이고, 100만원은 넘기기 힘들어요.” 정구웅 번역가의 친절한 답변입니다. 번역료를 밝히는 게 조심스럽다는 황석희 번역가는 “일반 회사원들이 받는 월급 정도로, 안 굶고 생활을 유지하는 수준”이라고 답했습니다. 활발히 영화 번역을 하고 있는 번역가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는 말도 덧붙여주었는데, 국내 영화 번역 풀이 얼마나 좁고 편차가 심한지 충분히 짐작해볼 만합니다.
Q. 영화 한편을 번역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요?
A. 번역가에게 허락된 시간은 의외로 짧습니다. 길어야 2주, 짧게는 일주일인데요. 그나마 극장 상영용 영화를 번역할 때는 사정이 좀 나아요. 케이블 방송용 영화의 경우는 3~4일 안에 무조건 번역을 끝내야 해요. 방송국에서도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번역가에게 의뢰를 하지 않는 데다 빠듯한 방송 스케줄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죠. 보다 실질적인 이유도 있어요. 번역가에게 시간은 수입과 직결되거든요. 번역 일을 하는 상당수의 사람들이 케이블용 영화 번역 작업을 하는데요. 그 시장에서의 번역 단가가 하향 평준화된 지 오래예요. 영화 한편당 30만원 정도라고 보면 되죠. 케이블용 영화 일이 꾸준히 들어온다고 가정할 때 물리적으로 월평균 수입 200만원을 넘기기가 쉽지 않아요. 한 작품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다보니 번역 후 수정 과정이 간소화되거나 생략돼요. 오역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죠.
Q. 영화(영상) 번역과 출판 번역의 차이가 궁금해요.
A. 출판 번역은 글자 수 제약이 없고, 영상 번역은 글자 수가 한정돼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전자는 제약이 없으니 원문을 충실히 옮길 수 있고 각주도 달 수 있지만, 영상 번역은 스크린 혹은 브라운관 안에 담을 수 있는 글자 수가 한정돼 있기에 함축과 의역이 필요합니다. ‘두줄로 번역하라’는 게 영상 번역의 기본인 셈이죠. 영상 속 뉘앙스를 담아내야 하는 것도 출판 번역과 큰 차이점입니다. 같은 문장이어도 어떤 사람이 어떤 표정으로 말했느냐에 따라 번역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윤혜진 번역가는 “출판 번역의 경우 ‘그 여자는 눈썹을 씰룩이며 말했다’ 같은 설명을 덧붙일 수 있지만, 영상 번역은 그 뉘앙스를 자막 안에 녹여내야 합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출판 번역의 경우 유행어를 잘 쓰지 않지만, 영화 번역은 개봉 시기에 유행하는 트렌디한 표현을 선호하기도 합니다.
Q. 중역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나요?
A. 프랑스, 중국, 이란, 동남아 등 비영어권 지역 영화일 경우 자주 중역이 이루어집니다. 프랑수아 오종의 영화도 거의 영어 대본으로 번역한 중역이었습니다. 정구웅 번역가는 좋은 중역이 나오려면 우선 영어 대본이 좋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종종 영어 자막의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들이 있어요. 그럴 경우 절대 좋은 중역이 나올 수 없습니다.” 알랭 레네의 <입술은 안돼요>(2003)의 라임이 기가 막힌 아름다운 노래 가사도 프랑스어-영어-한국어 중역을 거치면서 라임도, 의미도 놓치는 번역이 돼버렸고요. 또한 <알로, 슈티>(2008)의 경우 프랑스 북부 사투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번역평이 있었고, <언터처블: 1%의 우정>(2011)에선 프랑스의 유명한 상징주의 시인 ‘아폴리네르’를 ‘아폴리네어’라고 영어식으로 표기해 문제가 됐습니다. 중역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영상 번역에서 중역은 종종 탈이 날 때가 있습니다. 수입사의 사정, 번역가들의 사정이 있겠지만 중역일 경우 더 꼼꼼한 번역이 필요해 보입니다.
Q. ‘자막 000영화제 제공’처럼 영화제 제공의 번역 및 자막이란 무엇인가요?
A.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 판타스틱영화제 등 한국의 굵직한 영화제는 해외영화 상영을 위해 공고를 통해 번역자를 선발해요. 일단, 시험을 쳐야 합니다. 과거에는 영화제 사무국에 번역가가 직접 가서 시험을 치기도 했어요. 현재는 온라인상에 제시된 원어 지문을 번역해 정해진 기한 내에 번역본을 제출하는 방식이죠. 합격한 번역가가 ‘영화제 제공’의 번역본을 만드는 겁니다. 이때 번역가, 자막 작업한 사람, 감수자의 이름이 각각 명기돼죠. 영화제 상영작이 국내 개봉할 경우가 있잖아요. 이때 수입•배급사가 영화제의 자막을 그대로 사는 경우가 많아요. 이 과정에서 번역가에게 추가적인 수익이 발생하지는 않아요. 영화제와 계약할 당시 쓰는 계약서에 번역의 판권은 영화제에 있다고 명시돼 있으니까요. 물론 수입•배급사에서 번역가에게 연락을 해와 개봉 전에 번역 수정을 요청해오는 경우는 있지요. 하지만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야 자신이 번역한 영화가 개봉했다는 걸 아는 경우도 많아요.
Q. 번역가들은 어떤 사전을 보나요?
A. 번역가들 사이에서도 인터넷 사전이 대세입니다.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건 네이버 사전이고, 영화 번역가들에게 특히 요긴한 사전은 다양한 속어와 슬랭어가 등재된 얼번 딕셔너리입니다. 그 밖에도 함혜숙 번역가는 “영영 사전으로 위키피디아 사전인 윅셔너리를 자주 사용”하고, 정구웅 번역가는 “번역에선 비슷한 뉘앙스의 다른 단어를 찾는 게 중요해서 유의어 사전을 많이 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인터넷 사전 외에도 구글 검색은 번역가들에게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미국에서 쓰이는 관용어구나 속뜻, 배경지식 같은 걸 폭넓게 찾아보기엔 구글 번역이 제일 좋습니다.” 함혜숙 번역가의 말입니다. 황석희 번역가는 “예전에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번역하던 분들은 정말 존경해야 돼요”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인터넷은 번역가들에게 필수 요소인 것 같습니다.
Q. 번역가가 되고 싶은 이들이 참고하면 좋은 책이 있다면요?
A. 번역의 기본기가 되는 책은 <번역의 탄생>(이희재 지음),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김철호 지음)입니다. 함혜숙 번역가는 “<번역의 탄생>은 한국어답게 번역하는 법이 잘 설명돼 있어 영어식 표현과 직역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책”이라며 추천했습니다. <국어실력이 밥 먹여준다>는 번역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우리가 잘못 쓰고 있는 한국어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는 책”으로 한국어 기본을 다지는 데 도움을 준다네요. 기본기를 쌓은 당신에게 추천할 만한 책은 함혜숙 번역가의 <영상번역가로 먹고살기>입니다. “번역 1세대 때는 공중파 더빙 위주로 설명한 <그때 번역이 내게로 왔다: 영상 번역 소통의 미학>(박찬순 지음)을 많이 봤는데, 쉽고 자세한 <영상번역가로 먹고살기>가 나오고 나서부턴 이 책이 교과서처럼 쓰이고 있습니다.” 이 책을 추천한 윤혜진 번역가의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