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계단은… 드라마가 크게 전환되는 순간 - <은판 위의 여인>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
2016-10-17
글 :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구로사와 기요시가 부산을 찾았다. 신작 <은판 위의 여인>은 그가 프랑스에서 촬영한 첫 번째 해외 진출작이다. 파리에 사는 장(타하르 라힘)은 사진작가 스테판(올리비에 구르메)의 조수로 고용된다. 괴팍한 스테판은 실물 크기의 은판으로 인물 초상을 찍는 19세기 촬영방식인 다게레오타입(은판사진법)을 고수한다. 그는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모델인 딸 마리(콘스탄스 루소)가 오랜 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도록 종용한다. 지친 마리는 아버지 곁을 떠나려 하고, 자신을 이해하는 장과 사랑에 빠진다. 19세기 촬영방식 다게레오타입을 소재로 영화에 흐르는 공기는 고딕풍의 호러이지만, 자책과 슬픔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이야기는 궁극의 사랑 이야기에 가깝다. 최근 2년 사이에 3편의 영화를 공개했고, 이미 차기작을 편집 중이라는 그는 예전의 작업 속도를 완전히 회복했다고 말한다.

-이번 작품은 특별하다. 미국에서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었고, 오리지널 시나리오 작품이다.

=처음부터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말씀처럼 미국에서 찍었다면 꿈이 실현되는 것이었을 텐데, 하지만 해외에서 찍고 싶다는 염원은 있었다. 그러던 중에 몇년 전 프랑스 제작자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한편 찍지 않겠냐는 제안을 해왔다. 내 전작들이 프랑스에서 거의 다 개봉을 했다. 프랑스인들이 그만큼 내 영화를 보고 있는 거니까, 한편 찍자는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거다. 프랑스 제작자가 내 오리지널 이야기가 없냐고 질문했고, 마침 10년 전쯤 재패니즈 호러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할 때, 영국인 프로듀서가 영국에서 호러영화를 찍지 않겠냐고 제안했던 게 떠올랐다.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그때의 생각으로부터 어떤 변화가 있었나.

=영국에서의 기획은 순수한 호러영화였다. 영국에서 제안을 받았을 때에는 고스트 스토리를 떠올렸지만, 시간이 흘렀고 프랑스에서 찍는다는 이유도 있어서 결국 젊은 남자와 여자의 러브 스토리로 변했다.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생각했을 때, 바로 떠오른 이미지는 1960년대 누벨바그영화들이었다. 60년대 누벨바그영화를 보면 젊은 남자, 여자가 범죄를 일으키거나 연관이 돼서 차로 도망가다가 결국 죽는 식이다. 이 영화는 처음에 고스트 스토리로 시작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등장인물이 범죄에 휘말리고 죽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랑을 계속 지켜나간다. 그래서 이 작품은 1960년대 누벨바그풍의 영화가 됐다. 나는 프랑스영화를 찍은 셈인데, 지금 현대의 프랑스를 적확히 그리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표면적으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절대 불가능하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나는 프랑스 사람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찍는다고 하면 어느 시대, 어느 장소도 아닌, 추상적인, 가공의, 영화의 세계로서만 성립하는 이야기를 찍는 게 내가 프랑스에서 영화를 찍는 의의라고 생각했다.

-집의 내부 공간에서 계단이 중요하다. <도쿄 소나타>(2008)에서도 꼬마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순간이 있는데, 영화에서 계단의 이미지는 무엇인가.

=그 질문을 할 줄 알았다. (웃음) 계단 이미지를 좋아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영화에서 카메라는 옆으로 움직이는 것이고, 화면 자체가 옆으로 움직이는 것인데, 이게 굉장히 쾌적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이는 아마 연극에서 온 것일 텐데, 연극 무대에서는 사람이 대체로 옆으로 움직이며 화면이 전환된다. 그런데 갑자기 세로로 움직이게 되면 사람들이 놀란다. 갑자기 사람이 뛰어내려온다거나 거꾸로 뛰어오른다거나. 영화에서도 그와 동일한 전도라고나 할까. 관객에게 심리적으로 작용하는 게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갑자기 세로 방향의 움직임이 발생하면 굉장히 충격적으로 느껴질 것이고, 극적인 전환이 발생한다. 옆으로 움직이는 데서 오는 매끈함을 절단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긴다. 그러니까 내 영화에서도 종종 갑자기 아래로 떨어지거나 위로 솟구치거나 하는데, 그중 하나가 계단이다. 드라마가 크게 전환되는 순간이다.

-이 영화의 차를 타는 장면에서도 예전처럼 스크린 프로세스(미리 촬영한 장면을 배경으로 다른 장면을 찍는 기법)가 여전히 사용될지 궁금했었다.

=이번 영화에도 썼다. 이렇게 된 재미있는 경위가 있다. 프랑스에 갔으니 스크린 프로세스를 안 쓰고 싶었다. 일본에서는 차가 달리는 장면을 밖에서 찍을 때 규제가 많다. 프랑스에서는 자유롭게 찍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차를 가져가서 달리는 걸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프랑스 스탭들이 왜 스크린 프로세스를 안 쓰냐며, 감독님 영화는 스크린 프로세스 아니냐며 다들 기대하고 있었다고 한목소리를 내서(웃음), 결국 합의를 본 게 그럼 눈에 띄지 않게 스크린 프로세스가 아닌 것처럼, 실제로 찍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

-다음 작품 계획은.

=차기작은 여름에 촬영이 끝나서 편집 중이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힘들다. SF코미디이고 이상한 영화를 찍어서 편집 중이다. 일본영화다. 원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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