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배우로 한번, 감독으로 또 한번 - <얄미운 여자> 구로키 히토미 감독
2016-10-17
글 : 이주현
사진 : 박경민

원숙미와 조용한 카리스마는 영화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실락원>(1997), <검은 물밑에서>(2002), <도쿄 타워>(2005)의 배우 구로키 히토미가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그녀의 첫 부산 방문은 배우가 아닌 감독 자격으로 이루어졌다. 가쓰라 노조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얄미운 여자>가 그녀의 감독 데뷔작. “연출에 관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이 작품을 연출하고 싶어서 감독이 됐다”는 그녀는 원작 소설을 읽고 “굉장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고 전했다. “소설을 읽던 때가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던 2011년 3월이었다. 이야기의 직접적 연관성은 없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인연의 소중함을 깊이 느꼈다. 삶이란 참 좋은 것이구나, 앞을 향해 계속해서 나아가야겠구나, 그런 감정을 관객에게 잘 전달하고 싶었다.”

<얄미운 여자>의 주인공은 모든 게 극과 극인 동갑내기 사촌 테츠코(요시다 요)와 나츠코(기무라 요시노)다. 순탄하게 자라 변호사가 된 테츠코는 어려서부터 자기중심적이었던 나츠코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츠코와의 잦은 충돌이 결국 테츠코를 성장시킨다. “일본에서 제작발표회를 가졌을 때 40대 여성들이 주인공인 영화를 만든다는 데 다들 깜짝 놀라더라. 시대가 변했지만 여전히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가 많지 않고, 여배우가 감독이 되는 일도 흔치 않다.” 구로키 히토미는 그 일을 보란 듯이 해냈다. <얄미운 여자>는 중년 여성의 고독을 들여다보고 여성들의 우정을 호들갑스럽지 않게 그려낸다. 구로키 히토미의 넉넉한 마음과 성숙한 시선이 발랄하고 귀여운 이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참고로 <얄미운 여자>는 올해 초 <NHK>에서 드라마로도 방영됐는데, 구로키 히토미는 드라마에서 주인공 테츠코를 연기했다. 동일한 이야기를 배우로 한번, 감독으로 또 한번 소화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한 것이다.

“현장에선 내가 배우라는 걸 완전히 잊고 감독 입장이 되었다.” 크랭크인 전엔 걱정도 많았지만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 “배우에서 감독으로 저절로 입장이 바뀌어서 신기했다”는 구로키 히토미. 그런데 “엄청나게 열정을 쏟아부을 만한 작품이 아니라면 다시 연출을 하기는 힘들지 않을까”라며 감독으로서의 고뇌가 깊었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인연이 닿는 작품이 있다면”이라는 여운 또한 남겼다. 감독 구로키 히토미의 다음을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려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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