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이름을 묻는 것으로부터 관계가 시작된다 - <너의 이름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2016-10-17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이동훈 (객원기자)

훗날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의 일대기를 기록하는 영화학자들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너의 이름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1200년 주기의 혜성이 지구에 근접한 어느 날,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산골 마을에 사는 소녀 미츠하의 몸이 뒤바뀌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가 지닌 모든 미덕 중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응축해놓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작화, 매혹적인 이야기, 경쾌한 음악과 마음을 움직이는 목소리 연기. 이 모든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본에서 이미 1천만 관객을 돌파한 <너의 이름은>을 통해 연출자로서 새로운 장을 열어젖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부산에서 만났다.

-<너의 이름은>의 출발지점이 궁금하다.

=전작 <언어의 정원>이 3년 전에 개봉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일본의 영화사 도호가 배급을 맡았다. 내 작품을 굉장히 사랑해주고 소중히 다뤄주는 배급사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고, 다시 한번 도호와 일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도중 도호에서 가와무라 겐키라는 프로듀서를 소개해줬다. 그와의 만남이 이번 영화를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가와무라 프로듀서가 이런 말을 했다. “다음 작품은 신카이 감독님의 베스트 음반 같은 영화를 만들자”고.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내 모든 장점이 응축된 작품을 만들자고 하더라. 나도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시작하게 됐다.

-확실히 작품의 스케일이나 볼거리가 전작보다 훨씬 확장된 느낌이다. 캐릭터와 이야기를 개발하는 단계에서부터 고민의 폭 또한 이전과 달랐을 것 같다.

=이 작품을 모든 희로애락이 담긴 엔터테인먼트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는 캐릭터도, 작화도, 이야기도, 음악도 모두 중요하다. 이것을 누구에게 맡기느냐도 큰 과제였지만 무엇보다도 어떤 이야기를 만들 것인지가 가장 중요했다. 핵심적인 포인트는 두 가지였다. 먼저 관객에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도록 서사와 톤에 계속 변화를 주려 했다. 또 다른 포인트는 웃음 코드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진지하고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지만 관객이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었으면 했다.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와 영화적 장치들을 끊임없이 재배치하는 과정을 거쳤고, 각본과 콘티를 다듬는 데에만 1년이 걸렸다.

-이번 작품 역시 일본 고전시로부터 중요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처음에 생각했던 건 아직 만나지 못한 소년 소녀의 이야기였다. 그들이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교감을 나누는 장면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는데, 오노노 고마치라는 작가가 쓴 일본 고전시 ‘와카’를 보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았는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을 꿈속에서 봤다는 내용이었다. 그것이 꿈이라는 걸 알았다면 그 꿈을 계속해서 보고 싶었을 거라는 내용의 쓸쓸하고 슬픈 여운을 남기는 이야기다. 1천년 전에 쓰여졌지만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내용이기 때문에 이 시가 담고 있는 감정을 이번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타키와 미츠하는 그들이 느꼈던 감정을 본능적으로 기억하지만 상대방의 이름과 서로가 사는 곳의 지명, 대상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를 잊어버린다. 당신은 이름이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나.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이름을 말하거나 상대방의 이름을 묻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름을 묻는 것으로부터 관계가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제목을 <너의 이름은>이라고 지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너의 이름은>에서는 당신의 전작을 통틀어 가장 많은 음악을 사용했다. 종종 레드윔스가 작곡한 음악은 대사나 내레이션 대신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한다.

=우선 내가 레드윔스의 굉장한 팬이었다. 밴드의 보컬이나 작사•작곡을 맡고 있는 노다 요지로씨의 세계관을 무척 좋아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뭔가를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겹치는 지점이 많았다. 그래서 영화의 시작 단계부터 요지로씨에게 음악을 맡겼고, 어떤 장면은 레드윔스가 작곡한 음악에 영향을 받아 수정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서로의 손에 매직펜으로 글씨를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원래는 스마트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설정만 있었다. 레드윔스가 작곡한, 엄청난 에너지의 음악을 듣고 있다보니 그저 문자를 주고받는 걸로는 성에 차지 않더라. 문자를 보내는 게 아니라 손으로 글씨를 쓰는 장면을 표현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소년 소녀가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 그 이유가 궁금하다.

=아마 나 자신이 소년기를 온전히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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