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서로를 받아들이는 법에 대하여 - <환절기> 이동은 감독
2016-10-24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장서준 (객원기자)
부산국제영화제 KNN 관객상

‘철이 바뀌는 시기, 환절기.’ 그때가 되면 몸도 마음도 아프기 쉽다. 공기의 미세한 변화 앞에서 심신은 적응을 위한 얼마간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섹션에 소개된 <환절기>의 이동은 감독은 자연스러운 절기의 흐름처럼 사람의 마음도 아팠다가 차츰 아물어가는 과정이 있을 거라 말한다.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다.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 상처입고 고통받은 사람들이 서로의 상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이다보면 어느새 또 한 계절이 지나가고 있지 않겠나.”

영화는 아들 수현(지윤호)과 아들의 친구 용준(이원근) 사이의 사랑을 뒤늦게 알게 된 엄마 미경(배종옥), 이 세 사람의 처지와 감정의 변화를 통해 서로를 받아들이는 법을 말한다. 이동은 감독이 직접 쓴 그래픽노블 <환절기>가 그 원작이다. “2012년 겨울에 쓴 작품이다. <환절기>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관객과의 대화를 나눌 생각을 하다보니 그 무렵 썼던 작가 노트를 다시 보게 됐다. 시나리오가 잘 풀리지 않고 건강도 좋지 않던 그 시기의 내 모습이 고스란히 적혀 있더라. 그때 쓴 말 중에 ‘지금이 바닥인지 아니면 더 내려가야 할 바닥이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게 있었다. 그 시절 내 안에 있던 절박함이 글에 녹아들었을 거다.” 원작의 영화화 가능성을 발견한 명필름영화학교쪽이 이동은 감독과 시나리오를 개발해 명필름영화학교의 두 번째 작품으로 완성했다. “동료나 강사들에게 의견을 구할 때마다 영화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내줬다. <환절기>가 그렇게 논쟁적인 작품일 줄은 몰랐다. (웃음)” ‘논쟁’의 지점 중에는 용준을 대하는 미경의 태도를 그리는 방식이 있다. 미경은 용준을 따뜻하게 보듬지만 이후 수현과의 관계를 알게 됐을 땐 싸늘하게 변한다. 미경의 태도를 좀더 대비해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초반 용준을 대하는 미경의 태도가 살가워도 되지 않겠느냐는 게 주변의 의견이었다. “내 생각은 달랐다. 미경과 수현 역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건 아니다. 여기저기 빈자리가 많은 집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픈 가족사가 있는 용준은 어쩌면 이들 모자 사이에 자신이 스며들 틈이 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감독은 용준과 수현을 바라보는 미경을 극중 화자로 삼으며 교차편집으로 극을 전개했다. “장르적 긴장감이나 재미를 위해 지금과 같은 편집을 택한 건 아니다. 미경의 감정을 따르는 게 극의 전개상 자연스러워 보여 처음부터 고려했던 부분이다.” 촬영에도 공을 들였다. “수현이 사고로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시점 이전과 이후로 나눠본다면 앞쪽을 좀더 어둡고 단조로운 색을 썼다. 이후 점점 밝아져서 후반부로 갈수록 색이 많아지길 바랐다.” 극의 중심을 잡아야 했던 미경 역은 배종옥이 맡았다. “배종옥 선배 하면 깐깐하고 도회적이며 멋있는 이미지가 떠오르잖나. ‘엄마’ 하면 전형적으로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다르다는 게 좋았다.” 극에서뿐 아니라 실제로도 동갑내기인 용준, 수현 역의 이원근, 지윤호와의 작업도 신인감독에게는 하나의 시도였다. “워낙 (이)원근씨의 웃는 모습이 해사해서 과연 용준과 같은 그늘이 있을까 싶었다. 만나보니 내 기우였다. 용준의 정서를 잘 이해했고 오히려 극에 너무나 깊숙이 빠져들어 내가 캐릭터와 거리를 좀 두라고 말해야 할 정도였다. (지)윤호씨는 드라마 <치즈 인 더 트랩>을 보면서 연기를 정말 맛깔나게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용준, 수현만이 정답은 아니더라. 배우들과 만나 그들이 생각하는 인물이 뭔지를 많이 묻고 함께 만들어가는 게 중요했다.”

이동은 감독은 <환절기>로 장편 데뷔를 하기 전, 영화 관련 일을 두루 경험했다. 그저 영화가 좋아서 대학 때부터 6mm 카메라로 단편을 찍기 시작한 게 시작이었다. 방송, 광고 분야에서 얼마간 일하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더 늦기 전에 영화 현장으로 돌아오기”를 택했다. 시네마서비스 제작관리팀, 서울아트시네마와 CGV무비꼴라쥬(현 CGV아트하우스)의 프로그램팀에서 일한 경험도 있다. 그사이 <환절기>뿐 아니라 그래픽노블 <당신의 부탁> <니나 내나>도 펴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출에 전념하고 싶은 그는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간 쓴 그래픽노블만 봐도 모두 가족 이야기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가족주의’로 모든 게 설명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를 행복하게 하기도, 힘들게 하기도 하는 가족. 이게 늘 내 관심사다.” 겹겹의 모순으로 둘러싸인 이동은 감독표 가족 드라마는 계속될 것 같다. <환절기>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KNN 관객상을 받으며 내년 개봉 준비에 박차를 가하게 됐다.

<환절기>는 어떤 영화

도통 집에 친구를 데리고 오는 법이 없는 아들 수현이 친구 용준을 데리고 왔다. 엄마 미경은 아픈 가족사가 있는 용준을 살갑게 대해준다. 몇년 후, 군 제대를 마친 수현은 용준과 함께 여행을 떠난 길에서 사고를 당해 큰 부상을 입는다. 그제야 미경은 수현과 용준이 사랑하는 사이임을 알고 혼란에 빠진다. 미경은 이들의 관계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없다.

엄마의 시점을 따르다

<환절기>는 퀴어 멜로물이기보다는 가족 드라마에 가깝다. 수현과 용준 각각의 가족은 저마다의 이유로 아프다. 결속력 강한 애정의 공동체로서의 가족은 이곳에 없다. 오히려 그 틈 사이로 미경, 용준, 수현이 서로에게 서서히 파고든다. 극은 수현과 용준의 사랑 그 자체보다 그들의 관계를 받아들일 수 없어 힘들어하는 엄마 미경의 시점에 초점을 맞췄다.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주변인들의 시선과 태도의 변화를 목격하게 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법에 대해 말해보고 싶었다”는 감독의 연출 의도를 염두에 두고 영화를 감상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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