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 6년차 커플인 지영(김새벽)과 수현(조현철)은 준비 없이 들이닥친 임신의 공포를 안은 채로 서로의 부모 집을 방문한다. 현실과 타협하는 데 능숙하지 않은 세대의 공포는 사랑이란 감정 뒤에 숨은 채 때로 폭력적인 상황을 조장하기도 한다. 김대환 감독의 <초행>은 불안한 심리의 젊은이들을 ‘초행’길 위에 던져두고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 지켜보는 영화다. 인물의 섬세한 감정을 담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에 고생했던 두 배우 김새벽, 조현철에게 그 여정의 후일담을 들어봤다.
-임신과 결혼에 대해 어떤 준비도 못한 두 남녀가 겪게 되는 사건이 중심인 영화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난 소감이 어땠나.
=김새벽_ 감독님한테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나를 떠올리며 지영이란 캐릭터를 썼다고 들었다. ‘아니, 왜?’라고 질문하며 읽었지만 잘 모르겠더라.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에서부터 뭔가 자꾸 바뀌고, 현장에서도 계속 바뀌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완성된 영화가 시나리오와 차이가 있다고 들었다.
김새벽_ 여성 관객의 입장에서 두 인물의 관계나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해지는 몇몇 설정이 있었다. 최대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감독님께 의견을 냈고 지영과 수현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등 약간의 상황 설정이 수정됐다.
=조현철 시나리오 그대로 찍었더라면 지금의 영화와는 좀 달랐을 것 같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여자와 남자 사이에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혹시나 생길 오해가 없길 바랐다. 영화계 성폭력 이슈 등을 전면으로 내세우는 우리 세대의 리얼리티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였다. 감독님도 흔쾌히 동의해서 바뀐 부분이 있다. 남성들이 가지고 있던 헤게모니를 뒤집는 일들이 많아지는 지금의 리얼리티와 반대되는 영화가 만들어지면 안 되니까.
-두 사람의 연기가 실제인지 아닌지 헷갈릴 만큼 자연스러운 순간이 있다. 예를들면 수현이 지영으로부터 임신 사실을 처음 듣게 되는 순간의 리액션에서 조현철만의 개성이 느껴진다.
조현철_ 눈을 치켜뜨면서 눈썹을 한 손가락으로 긁적이는 등의 행동을 보이는데 거의 습관적으로 튀어나오는 연기다. 세세한 디렉팅이나 지문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터널>(2016)의 막내 구조대원, <건축학개론>(2012)의 신입생 동구 등을 통해서도 조현철만의 독특한 코미디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순간이 있다.
조현철_ <터널>을 예로 들자면 그리 심각하게 고민하거나 계산하지 않았다. 튀지만 않는 정도로 톤을 잡았다. 너무 의도적으로 접근하면 어떤 수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재미가 없어진다. 내가 하고 있는게 나쁜 짓만 아니면 편하게 임하려고 할 때 나오는 연기다.
-김대환 감독의 전작 <철원기행>(2014)은 실제 철원에서 찍으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공간과 정서를 담는 데 주력했다. <초행> 역시 로드무비의 형태로서 실제 그 장소에서 찍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김새벽_ 지영과 수현의 부모 집인 인천과 삼척 장면 모두 실제 그 도시에서 찍었고, 오가는 과정도 실제 운전 중에 촬영했다. 영화 속 이동 장면은 모두 현철씨가 직접 운전하는 와중에 김대환 감독과 촬영감독이 동행해 찍은 장면이다. 좁은 차 안이라 두 감독님 모두 고생했다. 시나리오에서는 지영이 운전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내가 면허가 없어 삭제됐다.
-연출자인 김대환 감독과 제작자인 <춘천, 춘천>(2016)의 장우진 감독은 두 사람의 고향인 춘천에 대한 애정을 여러 인터뷰에서 강조한 바 있다. 그래서 혹시나 이번 영화의 배경이 춘천이 아닐까 예상한 적 있다.
김새벽_ 시나리오에는 등장한다. 두 사람이 양가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상황에서 공평하게 똑같은 한우 선물세트를 사자고 이야기하는 장면 배경이 춘천이었다. 한우를 샀을 때, 그럼 누가 돈을 낼 것인지를 두고 옥신각신하며 서로의 형편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여건상 찍지는 못했다.
-극중 지영이나 수현의 경우처럼 지금 두 배우의 가장 현실적인 고민은 뭔가.
조현철_ 돈? (웃음) 상업성을 띤 영화나 드라마의 출연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김새벽_ 나를 만족시킬 만한 작업을 더 많이 하고 싶다. 연기를 하고 싶은 내 마음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 지난해에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2000)을 본 기억이 강렬하다. 내 맘이 닫혀버리지 않도록 간간이 이런 영화들을 만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겠다.
-여가를 즐기고 싶을 때 자신만의 시간 활용법이 있다면.
김새벽_ 도자기나 빵처럼 뭔가를 자꾸 만들고 싶은 게 생긴다. 왜 그것들을 하고 싶은 걸까 생각해보니 모두 혼자 하는 작업이더라. 효모를 기르고, 그것을 튼튼하게 키워낸 다음 빵을 만드는 과정도 재미있다. 문제는 빵조차 내 맘대로 안 될 때가 많다는 거다. (웃음) 최근에는 피아노를 연습 중인데 오랫동안 즐겨 하는 수영이나 산책도 힘들 때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이다.
조현철_ 가끔 친구들과 게임을 하는데… 생각해보니 게임 역시 이겨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거네. 게임도 내 맘대로 잘 안 되는 영역이다. (웃음)
-그렇다면 마음대로 해볼 수 있다는 가정하에 어떤 작업을 해보고 싶나.
조현철_ 코미디 연기를 해보고 싶다.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작품. 너무 과한 영화는 설정 연기가 부담이 될 것 같지만. (웃음)
김새벽_ 더 다양한 역할을 맡고 싶다. 배우로서 나의 이미지가 처음 만들어진 이후, 지금껏 아주 조금씩 무언가를 덧붙여나가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노선을 확 바꿔서 <헤드윅> 같은 뮤지컬영화에 출연해보면 어떨까. 장르적인 영화에도 출연해보고 싶다.
-혹시 다른 영화에서도 두 사람의 조합을 만날 기회가 있을까.
조현철_ 영상원 12기 동기인 <라오스>(2014)를 연출한 임정환 감독의 신작 <국경의 왕>(가제)에 새벽씨와 함께 출연했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를 오가며 촬영했는데 사실 주인공도 따로 있고 줄거리도 잘 모르겠다. (웃음) 어떤 영화인지 어떤 역할인지 설명을 잘 못하겠다.
김새벽_ <초행>을 함께한 계기로 현철씨가 함께 작업하자고 의사를 물어왔다. 둘 다 기분 좋게 찍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