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⑨ “임권택 감독의 촬영현장은 매번 함께했다” - 송길한 시나리오작가
2017-05-08
글 : 김성훈
사진 : 박종덕 (객원기자)
스페셜포커스 ‘작가 송길한, 영화의 영혼을 쓰다’의 주인공 송길한 시나리오작가

“(목을 가리키며) 여기, 봐. (김)영진(전주국제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이랑 매일 술 마셔서 두드러기가 났어. (웃음)” 송길한 시나리오작가가 자신의 목에 난 두드러기 때문에 술을 ‘하루’ 끊었다고 했다. 고향 전주에서 자신의 주요 작품을 상영하고, 전시회가 열리고, 비운의 미완성작 <비구니>(1984)의 부분 복원판이 상영됐으니 어찌 흥이 안 나겠는가. 스페셜포커스 ‘작가 송길한, 영화의 영혼을 쓰다’에서 <마지막 날의 언약>(1974), <둘도 없는 너>(1977) 등 1970년대 작품과 <짝코>(1980),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길소뜸>(1985), <티켓>(1986), <씨받이>(1986) 등 임권택 감독과 호흡을 맞춘 작품 그리고 1992년작 <명자 아끼꼬 쏘냐>(감독 이장호) 등 그가 시나리오를 쓴 작품 11편이 상영됐다.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나리오 <흑조>가 당선돼 작가 경력을 시작한 뒤로, 지금까지 90여편의 주옥같은 시나리오를 내놓은 그다. 송길한 작가는 인터뷰가 끝난 뒤 다시 흥이 났는지 “내일부터 다시 (술을)달리자고!”라고 외쳤다.

-지난 4월 28일 <비구니> 부분 복원판 상영이 끝난 뒤 진행된 대담에서 “완성된 영화를 보여드리지 못하는 것이 많이 안타깝다”고 아쉬워했는데.

=그날 부분 복원판을 보니 더 아쉬웠다. 33여년 전, 김지미씨가 삭발한 것만으로도 큰 이슈가 됐었다. 당시 어떤 여배우가 삭발할 수 있었을까. 이 영화는 김지미씨뿐만 아니라 모두의 노력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제대로 완성됐다면 칸을 포함해 여러 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를 널리 알려, 한국영화의 위상이 더 일찍 높아졌을 것이다.

-옛날 얘기가 궁금하다. 시나리오 <흑조>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가 경력을 시작했다. 소설이나 시가 아닌 시나리오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뭔가.

=용돈을 벌기 위해서. 군대를 다녀온 뒤 백수로 지내던 때라 별 생각 없이 시나리오를 썼다. 당시 <동아일보> 신춘문예의 시나리오 고료가 상당히 높았다. (웃음)

-당시는 지금처럼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주는 교육기관이 없지 않았나.

=아침에 극장에 가서 하루 종일 영화를 봤다. 동시상영관이었던 까닭에 두편을 연달아 봤다. 보다가 졸리면 자고, 일어나면 다른 영화가 상영되고 있어 두편의 줄거리가 뒤죽박죽 섞이기도 했다. (웃음) 그렇게 영화를 보면서 영화언어와 서사 구조를 온몸으로 익혔던 거지.

-신춘문예에 당선됐다고 해서 곧바로 제작자나 감독들로부터 연락이 온 게 아니었다고.

=그때가 30대였는데, 들어오는 건 가리지 않고 다 받아서 치열하게 썼다. 생존 때문이었다. 시나리오를 계속 쓰려면 살아남는 수밖에 없었으니까.

-임권택 감독을 언제 처음 만났나.

=전방의 탱크 부대에서 폭발사건이 있었다. 한 소대장이 부하들을 살리고 자신은 전사했다. 한 제작자가 이 사건을 소재로 한 국책영화를 기획하려고 임감독과 나를 부르면서 만나게 됐다. 당시 <족보>(1978)나 <깃발 없는 기수>(1979) 같은 영화를 보고 임 감독님께 강한 인상을 받고 있었을 때다. 어린 나이에 충무로에 들어와 산전수전 겪은 그와 충무로에 전혀 연고가 없다가 신춘문예에 당선돼 시나리오를 쓰게 된 30대의 내가 처음 만난 것이지.

-시나리오작가로서 인생의 분기점이 된 작품이 <짝코>였다고 얘기했는데.

=한국전쟁 때 좌파와 우파가 혼재된 상황에서 살아가던 두 남자를 그려낸 이야기이지 않나. 나도, 임 감독님도 비슷한 가정사가 있었다. 7, 8페이지 되는 시놉시스를 임권택 감독님께 제안하면서 의기투합했고, 이념에 희생당한 인간들을 그려낼 수 있었다.

-<만다라>를 일생의 역작으로 꼽은 바 있다. 여관방에 들어가 나흘 동안 한숨도 자지 않고 써내려간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김성동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임 감독님과 상의한 방향으로 각색해야 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었지. 당시 조감독이었던 고 곽지균 감독이 여관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대본이 나오자 인쇄업체에 가서 책(시나리오) 제작을 맡겼던 기억이 생생하다. <만다라>는 지산(전무송)과 법운(안성기) 두 젊은이가 자기완성의 꼭짓점을 향해 가는 길을 그린 이야기다. <만다라>가 소승적 차원에서 개인의 고행을 담았다면, <비구니>는 대승적 수행의 길을 그린 작품이다.

-항상 촬영현장을 찾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요즘은 촬영현장에 상주하는 시나리오작가가 거의 없는데.

=임권택 감독의 촬영현장은 매번 함께했다. 활자로 쓴 이야기가 생명력을 얻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시나리오의 행간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한다’고 잔소리를 하곤 했다. 인물의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행간의 의미를 파악해야 하니까.

-이번 전주에서 상영되지 않은 작품 중에서 상영이 됐더라면 좋았겠다 싶은 작품이 있나.

=굳이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누가 이 아픔을>(감독 설태호, 1979). 이 작품 또한 반공영화로 기획된 작품인데, 반공적인 색채를 빼면 매우 아름다운 영화다.

-젊은 작가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한다.

=시나리오는 발과 가슴으로 써야 한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시나리오를 찾아보기가 힘들어. 전부 머리로만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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