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⑩ “가장 매력적인 길은 가지 않은 길” -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
2017-05-08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특별전 ‘마이클 윈터보텀 특별전: 경계를 가로지르는 영화작가’와 마스터클래스 참석한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언덕이 어딘가?” 인터뷰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마이클 윈터보텀 감독은 영화의 거리에서 가장 가까운 언덕에 대해 물었다. 일정이 빠듯해 전주의 곳곳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며, 막간을 이용해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장소를 방문해보려 한다고 그는 말했다. 너무나 ‘로드무비의 제왕’다운 질문이라는 생각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영국감독 마이클 윈터보텀의 영화는 늘 한곳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리는 연출자의 기질과 닮아있다. 그의 이름을 국제 무대에 널리 알린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인 디스 월드>(2002)부터 ‘트립 투’ 시리즈, 음악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 최신작 <온 더 로드>(2016)까지, 윈터보텀의 영화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동시대 세계의 어떤 흐름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이 날카로운 지성과 감각의 연출자가 특별전과 마스터클래스를 위해 전주를 찾았다.

-이 인터뷰에 부제를 달자면 ‘마이클 윈터보텀의 트립 투 전주’가 되지 않을까. (웃음) 그동안 각국의 길 위에서 영화를 만들어왔다. 낯선 장소를 방문했을 때 당신은 가장 먼저 무엇을 하는가.

=정말 그렇게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웃음) 가장 먼저 하는 건 산책이다. 낯선 장소에 간다는 건 영화감독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만든다는 핑계로 사람들에게 손쉽게 궁금한 걸 물어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집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나. 대부분의 경우 내게 영화를 만든다는 건 여행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트립 투 이탈리아>), 스페인(<트립 투 스페인>), 파키스탄(<인 디스 월드>) 등 그동안 다양한 나라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어왔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길이나 장소가 있다면.

=최근 촬영 때문에 스페인에 갔는데, 길이 정말 아름답더라. 보통 휴가철에는 이탈리아에 있는 별장을 찾는데 그곳 역시 아름답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내게 가장 매력적인 길은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길은 2001년 <인 디스 월드> 촬영 당시에 갔던, 파키스탄에서 테헤란까지 이어지는 도로다. 사막에서 스탭들을 데리고 계속 히치하이킹을 하며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했는데,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방금 <관타나모로 가는 길>(2006)의 마스터클래스를 마쳤다. 이 작품은 이번 영화제의 또 다른 상영작인 <인 디스 월드>와 대구를 이루는 작품이다. <인 디스 월드>는 파키스탄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여정을, <관타나모로 가는 길>은 런던에서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영국인들의 여정을 다루고있다. 그리고 이들 작품은 아프가니스탄의 현실에 대한 문제를 공유한다. 처음부터 두 작품의 연관성을 염두에 뒀나.

=그렇다. <인 디스 월드>를 기획할 당시, (영국 내에서) 사회적으로 난민들에 대한 분위기가 무척 부정적이었다. 그런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파키스탄 난민캠프에서 영국으로 들어오려는 두 난민 소년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했고, 그 작품이 <인 디스 월드>였다. 처음부터 난민 이슈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이 테마로 3부작 영화를 만들려 했다. 내가 만드는 대부분의 영화는 차기 영화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감의 대상 자체가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거니까.

-당신의 영화는 대개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하다. 허구를 진짜처럼 찍는 것, 리얼리티에 픽션을 덧입히는 방법론은 당신에게 왜 중요한가.

=사실 내게 있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떤 상황을 연출자로서 통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환경은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대 위에 세트를 지어놓고 배우에게 연기를 시키는 것이다. 프렌치 뉴웨이브 영화들을 보면 배우들이 연기를 할 때에도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이 ‘지금 영화 찍네?’라는 표정으로 그들을 힐끗 바라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촬영 도중에도 완벽하게 통제되지 않은, 여유와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영화를 좋아하고 이것이 생산적 영화 만들기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작이자 영국 밴드 울프 앨리스에 대한 음악다큐멘터리 <온 더 로드>는 다큐멘터리적인 색채가 훨씬 짙은 작품이다. 영국 맨체스터의 뮤직신을 다룬 이번 영화제의 또 다른 상영작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2002)과 비교하며 보니 흥미롭더라. 과거의 영국 뮤직신에 음악 동호회 같은 친밀함이 있었다면, <온 더 로드>의 뮤지션들은 보다 음악산업의 일부로 느껴지는 면모가 있다.

=물론 지금도 <24시간 파티하는 사람들>의 등장인물들과 비슷하게 기행을 일삼는 밴드들이 있을 거다. (웃음) <온 더 로드>가 보다 다큐멘터리적으로 느껴지는 건 진지한 태도로 음악을 하는 울프 앨리스라는 밴드의 특성이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젊은 뮤지션들의 진지함이 영화에 색다른 리듬감을 부여한 것이 아닐까. <온 더 로드>를 구상하며 밥 딜런의 영국 투어를 조명한 다큐멘터리 <돈 룩 백>(1967)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 무대에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감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차기작 <트립 투 스페인>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스페인 산탄데르에서 시작해 말라가를 거쳐 북아프리카와의 경계까지 이어지는 여정이다. <트립 투 런던> <트립 투 이탈리아>가 그랬듯 이번에도 역시 맛있는 음식과 수다가 공존하고, 영국과 스페인의 관계, 이슬람 문화에 대한 내용이 오갈 예정이다. 스티브 쿠건과 롭 브라이든이 마치 돈키호테와 산초처럼 스페인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먹고 열심히 운전하는 이야기다(웃음). 아직 후반작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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