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옥자> 양진모 편집감독 - 리듬과 타이밍
2017-07-17
글 : 이주현
사진 : 오계옥

<설국열차>의 현장편집과 VFX편집을 담당했던 양진모는 <옥자>에선 편집감독으로서 또 미국 및 캐나다 촬영의 현장편집으로서 컷을 매만졌다. 그는 비교적 젊은 편집감독이다. 이명세 감독의 <형사 Duelist>, 윤제균 감독의 <해운대>, 김지운 감독의 <라스트 스탠드>, 봉준호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한 <해무>에 참여하는 등 현장편집 경력은 길지만 장편영화의 편집감독으로 입봉한 건 이제 고작 2년 남짓이다. 하지만 입봉작 <뷰티 인사이드>로 청룡영화상 편집상을 수상하고 <부산행> <럭키> <밀정> 등의 편집을 맡으면서 압축적으로 탁월한 성과를 냈다. “봉준호 감독님께 <옥자>를 제안받았을 땐 <뷰티 인사이드>로 상을 받기 전이었고 <부산행>이나 <밀정>도 개봉하지 않은 상태였다. 현장편집을 하다가 편집을 메인으로 하게 된 지 얼마 안 된 때여서 <옥자> 같은 큰 작품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한 덕에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편집과 현장편집을 두루 경험한 이력이 있다는 점이 <옥자>의 합류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연출자의 마음을 잘 읽어내고, 영화가 돋보이게 하는 법을 잘 아는 편집감독이다. “<뷰티 인사이드> 같은 작품이야 편집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지만 기본적으로 편집은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한다는 게 내 철학이다. 편집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게, 영화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독의 스타일을 잘 파악해서 그 감독의 작품에 가장 좋은 옷을 티 안 나게 입혀주는 게 내 역할이다.” <옥자>는 그러한 철학을 그대로 실현하면 됐던 작품이다. “봉준호 감독님의 작품엔 언제나 감독님만의 엄청 좋은 설계도가 있다. 그 설계도대로 잘, 열심히만 하면 된다. (웃음)” 물론 누가 어떻게 컷을 터치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질감은 달라진다. 설계도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최적의 리듬을 구현해내는 건 당연히 양진모 편집감독의 몫이었다. <옥자>에는 인상적인 몽타주 시퀀스가 두 군데 있다. 오프닝의 크레딧 시퀀스와 더불어 옥자와 미자가 미국으로 건너가는 중반부의 몽타주 시퀀스는 양진모 편집감독의 감각이 십분 발휘된 장면이다. 봉준호 감독은 서울에서의 이야기를 매듭짓고 뉴욕으로 넘어가기 전, 예상치 못하게 의문의 패배를 당한 미자와 옥자와 루시와 동물해방전선(ALF)의 지난 상황과 앞으로의 운명을 이 몽타주 시퀀스에 압축해 보여준다.

시공간의 흐름은 물론 캐릭터들의 이해관계까지 하나로 꿰는 이 장면은 양진모 편집감독의 말처럼 “음악과 편집이 완벽하게 쿵짝을 이룬 엄청난 몽타주”로 탄생했다. “사실 연결이 튀는 장면도 있는데 음악이 기가 막히게 쓰이면서 전반적으로 쿨한 편집이 됐다. 이 장면을 볼 때마다 왠지 뿌듯하다.” 슈퍼돼지 콘테스트가 열리는 뉴욕 퍼레이드 시퀀스나, 옥자의 운명이 걸린 도살장에서 미자와 낸시가 대치하는 장면에선 리듬과 타이밍이 중요했다. 인물들의 행동이 불러오는 연쇄작용이 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착착착” 리듬을 살려야 했다.

넷플릭스로부터 편집권을 100% 보장받은 봉준호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신이 나서 편집실을 드나들었을 것이다. “작업 시작할 때 그 말씀을 하셨다. ‘이번엔 우리에게 편집권이 있으니 양 감독과 내가 마음껏 (편집)하면 돼.’ 그 얘기를 듣는데 괜히 봉 감독님이 멋있어 보이더라. (웃음)” 감독의 일이란 게 원래 종합적 사고를 요하는 거지만, 편집실에서의 봉준호 감독은 특히나 생각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열려 있어서 “영화를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라면 누구의 의견이든 잘 반영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디즈니에 입사해 애니메이터가 되는 게 꿈이었던 양진모 편집감독은 뉴욕 바드칼리지에 미술전공으로 입학해 영화전공으로 졸업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신발 밑창이 닳도록 극장을 드나들 만큼 영화를 좋아했다. 감독이 되고 싶었던 그는 “감독들의 연출법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현장편집을 하게 됐고, 편집이 결국 업이 돼버렸다. 20대 땐 왕가위 영화를 무척 좋아해 생활의 일부분처럼 영화를 틀어놓고 살았다. 가장 좋아하는 편집자는 모범답안 같지만 <컨버세이션>(1974), <지옥의 묵시록>(1979)의 월터 머치다. 편집뿐 아니라 음향작업에도 조예가 깊었던 월터 머치처럼 “편집만 하는 편집자가 아니라 창의적인 작업에 욕심내는 편집자”가 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차기작 일정도 이미 꽉 차 있다. 연상호 감독의 <염력>, 장준환 감독의 <1987>, 이해영 감독의 <독전> 편집 작업을 끝내면 내년에는 김지운 감독과 <인랑>으로 세 번째 호흡을 맞출 예정이다.

내가 꼽은 장면_틸다의 댄스, 또 다른 버전의 오프닝

“원래는 오프닝 시퀀스가 지금보다 훨씬 길었다.” 다국적 기업 미란도의 CEO 루시(틸다 스윈튼)에 대한 풍성한 묘사가 있었지만 최종적으로 루시의 ‘드라마’가 편집되면서 크레딧 시퀀스로 변모했다. “슈퍼돼지 프로젝트에 대한 루시의 설명이 끝나고 프랭크(지안카를로 에스포지토)가 손을 올리면 음악 볼륨이 커지면서 크레딧이 뜨고 강원도 미자네로 넘어가는 게 지금의 오프닝이다. 원래는 볼륨을 높이면 틸다가 기자회견 도중에 춤을 췄다. 그러면 기자들도 무대에 올라와서 함께 춤추고. 개인적으로 그 장면이 정말 재밌었다.” 하지만 오프닝을 콤팩트하게 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최종적으로는 많은 장면들을 걷어내야 했다. 양진모 편집감독은 “나에게 큰 웃음을 줬던 틸다의 댄스 장면이 빠져서 아쉽지만 리드미컬하고 콤팩트한 크레딧 시퀀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서 뿌듯하고 만족스럽다”고 했다.

편집 2017 <옥자> 2017 <석조저택 살인사건> 2016 <바운티 헌터스: 현상금 사냥꾼> 2016 <밀정> 2016 <부산행> 2015 <럭키> 2015 <대배우> 2015 <뷰티 인사이드> 2013 <고진감래> 현장편집 2014 <마담 뺑덕> 2014 <해무> 2013 <설국열차> 2013 <라스트 스탠드> 2012 <청출어람> 2012 <미운 오리 새끼> 2010 <초능력자> 2009 <해운대> 2005 <태풍> 2005 <형사 Due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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