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이 가장 좋아했던 옷이다.” 최세연 의상감독의 스튜디오 ‘깃엔터테인먼트’에 걸려 있던 미자의 빨간 카디건을 보자 최세연 의상감독이 덧붙인다. “감독님이 기본적으로 의상에 애정이 많다. <마더> 때는 김혜자 선생님 의상 컨셉을 ‘반찬’이라고 명명하며 좋아하셨다. 이 옷은 김치 같고, 이 옷은 콩나물 같다고. (좌중 폭소) 이번에는 따로 애칭은 없었지만, 스틸 촬영할 때도, 테스트 촬영할 때도 미자에게 이 옷을 입힐 정도로 미자의 빨간 카디건을 많이 활용하고 재미있어 했다.” 최세연 의상감독은 <마더>와 (봉준호 감독이 제작을 맡은)<해무>, <옥자>까지 봉준호 감독과 세 작품을 함께했다. 그의 전작 <고고70>의 의상을 인상 깊게 본 류성희 미술감독의 추천으로 ‘봉준호 사단’에 합류하게 된 그는 의상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깊은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이 늘 좋은 자극이 되어준다고 말한다. “배우가 입는 옷의 컬러와 패턴을 여느 연출자들보다 꼼꼼하게 테스트하시는 편이다. 옷에 같은 색깔을 쓰더라도 낮에 쓰는 컬러와 밤에 쓰는 컬러가 미묘하게 다르니까. ”
<옥자>는 최세연 의상감독이 맡은 첫 번째 할리우드 프로젝트였다. 그는 <설국열차> <케빈에 대하여>의 의상을 제작한 캐서린 조지와 <옥자>의 공동 영화의상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틸다 스윈튼이 연기한 낸시, 루시 미란도의 옷을 제외하면 <옥자>의 거의 모든 의상에 최세연 의상감독의 손길이 닿아 있다. “한국영화는 테스트 촬영을 할 때 주요 배역이 아니라면 리허설에 서는 대역배우를 따로 두지 않는다. 그런데 <옥자> 같은 할리우드영화의 경우 조·단역까지 대역배우들을 두고 있더라. 의상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이 배로 더 들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 옥자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소녀 미자의 의상을 제작하는 건 최세연 의상감독에게 특히 중요한 고민거리였다. 미자가 많은 시간을 보내는 숲의 색, 블루와 그린을 배제하고 그녀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색을 찾고 있던 최세연 의상감독은 100년 전 서울의 풍경과 인물을 조명한 흑백사진집 <서울 풍광>에서 의상 제작의 영감을 받았다. “세월감이 묻어나면서도 지나치게 현실적이지 않은 옷을 만들고 싶었다. 마치 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카디건, 할아버지가 기운 추리닝을 입은 것처럼. 색이 배제된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게 되더라.” 미자의 옷은 강원도에서 서울로 향하며 보라색에서 붉은색으로 한층 짙은 색감을 띠는데, 이는 그녀가 처한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옥자의 회색 몸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미자의 보라색 의상은 “옥자의 옷이 미자이고 미자의 옷이 옥자”처럼 느껴질 만큼 두 존재의 긴밀한 유대감을 상징한다. 반면 서울에서 미자가 입는 빨간색 추리닝은 옥자와 떨어져 낯선 장소에 당도한 그녀의 심리를 반영하는 듯 도심의 잿빛 건물 사이에 섞여들지 못하고 이질적으로 부각된다. 보이스카우트 복장을 연상케 하는, 동물학자 조니 윌콕스 박사의 의상도 흥미롭다. 한국의 등산복을 변주한 그의 의상에는 조니를 연기한 배우 제이크 질렌홀의 적극적인 제안도 한몫했다고. “등산양말을 치켜올리고 그 위에 ‘쪼리’를 신”거나, “땀이 나면 털이 다 보일 정도로 얇은 시스루 소재의 남방을 입자”고 제안하는 등 피팅 과정에서 그는 누구보다 활발하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냈다고 최세연 의상감독은 전했다. 한편 한복을 연상케 하는 루시 미란도의 의상은 샤넬의 2016 크루즈 컬렉션 피날레 의상을 영화의 느낌에 맞게 다시 제작한 것으로, 캐서린 조지가 맡아 작업했다고.
알록달록한 추리닝을 입은 산골 소녀와 보이스카우트 복장을 한 동물학자. 이처럼 시공간을 가늠할 수 없으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옷은 최세연 의상감독의 트레이드마크다. <하녀>의 메이드 복장, 홍콩영화를 연상케 하는 <도둑들>의 이국적인 옷차림, <차이나타운>의 엄마(김혜수)의 투박하면서도 강렬한 패턴의 의상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영화적 상상력이 반영되지 않는 옷은 사절이기에, ‘협찬의상’이 자주 들어오는 로맨틱 코미디와 멜로는 거의 맡지 않는다는 그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대미술과를 졸업한 뒤 도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그녀의 포트폴리오를 인상 깊게 본 정재은 감독의 <태풍태양>으로 빨리 입봉한 경우이기에 최세연 의상감독은 스스로를 “족보 없는 의상감독”이라 명명하며 웃었다. 하지만 봉준호, 최동훈, 류승완, 정지우 등 충무로의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그녀를 찾는 데에는 영화의상에서만큼은 퀄리티를 양보하지 않는 최세연 의상감독의 확고함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10년 뒤에 봐도 촌스럽지 않은” 영화의상을 만들고 싶다는 최세연 의상감독의 상상력을 요하는 한국영화들이 앞으도로 많다.
내가 꼽은 장면_둘이어야 완전해
최세연 의상감독은 강원도 숲속에서 미자가 옥자와 단란한 한때를 보내는 장면을 <옥자>에서 의상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으로 꼽았다. “옥자가 숨 쉴 때마다 (옥자에 기댄) 미자가 함께 들썩거리는 장면, 혹은 미자가 옥자의 배 밑에 누워서 몸을 긁어주는 장면을 좋아한다. 각각의 캐릭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둘이어야 완전한 느낌이라고 할까. 두 캐릭터가 함께 있을 때의 의상이나 미장센이 최대한 분리된 느낌을 주지 않으려 노력을 많이 했다. 옥자의 컬러와 미자의 컬러감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의상감독 2017 <독전> 2017 <악질경찰> 2017 <침묵> 2016 <소중한 여인> 2015 <그날의 분위기> 2015 <차이나타운> 2014 <해무> 2013 <톱스타> 2012 <도둑들> 2011 <푸른 소금> 2010 <하녀> 2010 <부당거래> 2009 <마더> 2009 <요가학원> 2008 <고고70> 2007 <쏜다> 2007 <사랑> 2006 <잔혹한 출근> 2005 <새드무비> 2005 <태풍태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