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옥자> 개퍼 이재혁 - 모두가 빛과 싸웠다
2017-07-17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촬영 안 해도 좋다고 했다. 다리우스 콘지와의 작업이라면.” <옥자>의 조명팀을 책임진 개퍼 이재혁은 조명감독으로 활동하다가 <두근두근 내 인생> <서부전선> 등을 거치며 촬영감독으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그런 그가 촬영 대신 포지션을 바꿔 조명팀을 맡다니 의아한 시선이 앞서기도 한다.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은 촬영을 하는 사람에게 성서와 같은 존재다. 아직도 내게 최고의 촬영 작품은 그가 참여한 <쎄븐>(감독 데이비드 핀처, 1995)이다.” 경외하는 이와 작업한다는 것. <옥자>의 현장은 그에게 선택이 아닌 ‘필연’이었다.

이재혁은 서울예대 영화과, 한국영화아카데미를 거쳐 미국영화연구소(AFI)에서 촬영을 전공했다. 조명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이후 <말아톤> 조명감독으로 입봉해 활동하다, 전공을 살리고자 촬영감독으로 포지션을 바꾸었다가 이번에 다시 <옥자>로 조명팀에 합류했다.

<옥자>의 개퍼로서, 그는 다리우스 콘지와 한국쪽 스탭들 사이에서 촬영장의 모든 조명을 총괄하는 역할을 했다. 현지 개퍼를 고용해야 하는 조항으로 제외한 미국쪽 촬영을 빼고, <옥자>의 한국 촬영분은 모두 그가 총괄했다. 보통 6~7명인 조명부가 이번엔 20명 정도로 인원도 확장됐다. 3개월 넘게 진행된 <옥자>의 한국 현장, 다리우스 콘지 촬영감독의 곁에는 늘 그가 함께했다. 작업 때도, 식사 때도 어김없이 곁에서 촬영과 이전 작업에 대한 경험담들을 나누었다. 촬영장에서 촬영감독이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대다수 경우와 다리우스 콘지의 현장은 많이 달랐다. “콜라보레이션 형태의 작업을 선호하더라. 자신은 촬영 톤에 대한 아이디어를 낼 뿐 조명은 조명팀의 역량을 발휘하길 원했다.”

강원도 산골에서부터 서울 남대문 회현상가, 그리고 닥터 조니(제이크 질렌홀)의 연구실에 이르기까지. 옥자를 향한 미자(안서현)의 달음박질에 따라 영화의 공간이 바뀌고, 촬영의 느낌과 질감도 바뀌어야 했다. “봉준호 감독님은 공간의 느낌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깨끗한 강원도 청정지역, 도심에서 지하로 내려왔을 때 이상할 정도로 환한 회현상가의 불빛, 또 콘트라스트가 강한 닥터 조니의 연구실, 암흑 같은 도축장 등 공간 하나하나의 특징이 중요했다. 각각 음영의 조화 및 질감을 살리기 위한 조명을 설계했다.” 한국 촬영이 따뜻한 톤이라면, 뉴욕 촬영은 차가운 톤을 유지했다. 다리우스 콘지 현장에만 통용되는 특별함은 오히려 없었다고 말한다. “뭔가 특별한 장비나 기술이 있지 않을까나 역시 생각했는데, 밤 장면이건 실내 장면이건 특이한 조명이나 기법을 쓰는 건 없었다. 한국영화 현장이나 마찬가지더라. <옥자> 촬영에서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카메라인 알렉사65가 주는 웅장함, 렌즈의 특이함은 있었는데 그게 <옥자>의 촬영 결과를 좌지우지하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한 촬영이었다.”

작업에 참여한 그가 짚어낸 <옥자> 촬영의 핵심은 빛이었다. “다리우스 콘지 감독도 봉준호 감독도 빛에 대해서는 양보도, 포기도 없었다. 촬영 모두가 ‘빛과의 싸움’이었다. 조감독이 촬영 분량의 해의 위치를 일일이 쪼개서 일정을 정확하게 짜고, 그게 실행되는 현장이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더 많은 인력이 활용되는 곳이 할리우드 현장이었다.

촬영, 조명팀으로 영화계에 발을 디딘 지 13년째. “이번 작업을 하면서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떤 모델을 제시하고 역할을 해야 할까 고민이 한층 깊어졌다”는 그는 “한편의 영화지만, 다른 작품과 <옥자>의 촬영 이후 변화가 많아졌다”고 말한다. “봉준호 감독의 촬영현장을 경험하고서 진짜 초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봉준호 감독의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만 봐도 콘티가 읽히는, 질문이 필요 없는 시나리오였다.” 콘텐츠뿐만 아니라 ‘사업적’인 확장도 꾀했다. 기존 남양주종합촬영소와 용산 작업실을 정리하고 경기도 하남으로 이전한 것도 또 하나의 변화다. “<옥자>를 위해 필요한 장비들이 적지 않더라. 새롭게 구비한 장비만 20%가 추가됐다. 늘어난 장비를 다 보관하자니….” 특히 국내에서 그가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LED 조명기 ‘라이트타일’은 에너지 효율이 높고 이동할 때 편리하다며, 장점을 늘어놓는다.

<옥자>가 한창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상영되는 지금. 그는 그사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블랙 팬서>에도 개퍼로 참여해 작업을 끝냈다. “다리우스 콘지와 넷플릭스와 작업한 개퍼가 한국에 있다던데, 그 소문을 듣고 한번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었다.” 할리우드 시스템을 알고, 할리우드에서 필요한 장비를 가지고 있고, 영어로 소통이 가능한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앞으로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촬영, 조명의 경계를 두지 않으려고 한다. 할리우드 시스템의 장점을 한국 현장에도 접목해 보고 싶다.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일하는 게 앞으로의 계획이다.”

내가 꼽은 장면_닥터 조니의 연구실은 한국

“어떻게 한 장면만 꼽나. (웃음)” 스탭으로서 모든 장면이 소중하다는 그가 가장 난감해한 답변. 가장 고생한 장면은 미자의 이끼계곡이었다. 미자와 옥자가 물고기를 잡는 신은 지금도 고생담이 자동으로 기술되는 장면이었다. 조명 구현의 면에서 그가 가장 손꼽고 싶은 장면은 닥터 조니의 연구실이다. 닥터 조니와 알폰소(또 다른 거대 돼지)와의 관계 설명뿐 아니라 옥자가 복도를 거쳐 연구실로 들어오는 동선의 구현 등이 효과적으로 표현됐다고. 감쪽같을 정도로 미국 같지만, 촬영한 곳은 한국의 대진대학교 체육관 지하공간이었다. 미술팀의 디테일한 손길과 협업해, 영화에서도 가장 특이한 톤으로 완성했다.

조명 2017 <블랙 팬서> 2017 <옥자> 2012 <내 아내의 모든 것> 2011 <마마> 2011 <특수본> 2009 <7급 공무원> 2008 <서양골동양과자점 앤티크> 2005 <말아톤> 촬영 2015 <서부전선> 2015 <그놈이다> 2014 <두근두근 내 인생> 2014 <신촌좀비만화> 중 <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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