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빛낸 배우들①] <군함도> 김중희 - 매번 새롭게 만납시다
2017-08-07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최성열

영화 <군함도>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독자라면, 상영관 옆자리에 앉는 관객이 누군지 유심히 살펴보는 게 좋겠다. 어쩌면 ‘야마다 부소장’이 앉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영화가 개봉한 날부터 하루에 한번씩은 <군함도>를 꼭 봤다. 관객의 반응이 궁금해 매일 다른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 가장 기분 좋을 때? 영화 속 나를 보고 관객이 욕하는 순간이다. (웃음)” 배우 김중희가 분한 <군함도>의 야마다는 일제강점기 말의 혼란을 틈타 군함도에 머물며 자신의 욕망을 불태우는 인물이다.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는 건 그의 웃는 모습이다. 지옥 같은 군함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조선인들을 멸시하고 비웃는 야마다의 표정은 시대의 광기를 반영한다. “야마다로서 어떻게 웃어야 할 것인지”는 <군함도>에 임하는 김중희에게 무척 중요한 과제였다. “류승완 감독님과 그 부분에 대해 얘기를 많이 나눈 뒤 내린 결론은 ‘경망스럽게 웃자’는 거였다. 경망스럽다는 건 상황에 맞지 않게 행동한다는 거잖나. 심각한 상황에서도 마치 게임을 하듯 모든 것들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는 야마다의 광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군함도>를 본 많은 이들이 김중희의 연기를 두고 “진짜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한다. 실제로 김중희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2년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한 2003년까지 일본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유창하게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건 배우로서 그의 큰 장점이다. 일본어 대사로만 오디션을 진행했던 <군함도>의 야마다라는 배역도 그런 연유로 그에게 오게 됐다. <가문의 영광4: 가문의 수난>의 노점상 주인, <연애의 맛>의 포장마차 손님 등 그동안 단역을 주로 맡아왔던 그에게 <군함도>는 배우로서의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촬영을 시작하고 내가 맡은 첫 대사가 ‘동기의 벚꽃’이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카메라 밖에서 그 대사를 쳤다. 배우로서 해서는 안 될 실수였는데 감독님이 ‘야마다 역할에 뽑힌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라며 자기 자신을 믿으라고 말해주셨다. 류승완 감독님의 격려와 황정민 선배님의 디테일한 도움에 정말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현장이었다.”

김중희가 연기를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대학 입시에서 “테트리스 떨어지듯” 낙방하는 가운데 주변의 추천으로 연극영화과를 지원했고, 경희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그의 지인들에게 학창 시절 응원단장으로 활동하며 춤과 노래에 소질을 보인 김중희는 이미 끼 많은 친구였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서 촬영한 영화 <가문의 영광4: 가문의 수난>의 일본어 통역 스탭으로 참여했다가 운 좋게 단역으로 캐스팅된 그는 소속사의 도움 없이 지난 7년여간 홀로 배역을 물색해왔다. “시작했으면 매듭을 짓는 성격”이기에 어떤 역경이 있더라도 배우로서의 꿈을 접을 생각은 없다. 그런 김중희의 바람은 관객에게 늘 “새로운 얼굴로 찾아가는 배우”가 되는 것이다. 그의 차기작은 <성난 변호사>를 연출한 허종호 감독의 신작 <물괴>. 중종 시대가 배경인이 영화에서 김중희는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정의로운 백정을 연기한다. 그렇게 ‘새로운 얼굴’을 찾아나가는 배우 김중희의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군함도>의 이 장면

“스포일러라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야마다가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다. 그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던 폭력성을 표출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역사적 자료를 찾아보니 당시 군함도에 살고 있던 일본인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있었다고 하더라. 야마다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는데, 순간적으로 사람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비틀린 전쟁의 판타지에 완전히 경도되고 만다. 야마다의 변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영화 2017 <군함도> 2016 <인천상륙작전> 2015 <연애의 맛> 2014 <장수상회> 2011 <가문의 영광4: 가문의 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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