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빛낸 배우들④] <택시운전사> <군함도> 이정은 - 더 실험하며, 더 부지런하게
2017-08-07
글 : 이주현
사진 : 최성열

초면인데 초면 같지 않은 사람이 있다. 이정은도 그런 사람이다. 순한 인상덕도 있지만 이정은을 보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실제로 그를 어디서 많이 봤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영화 <택시운전사> <군함도> <옥자> <보안관> <재심> <곡성>, 드라마 <도둑놈 도둑님> <쌈, 마이웨이>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역도요정 김복주> <오 나의 귀신님> 등 근작만 추려도 이 정도다. 여러 작품에서 누군가의 엄마와 아내로 출연한 이정은은 설령 이름 없는 캐릭터라 할지라도 기어이 눈길 한번, 마음 한번 주게 만들었다. <옥자> <군함도> <택시운전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괴물>에서 오달수가 괴물의 소리를 연기한 것처럼 이정은은 <옥자>에서 슈퍼돼지 옥자의 목소리 연기라는 중책을 맡았다. 봉준호 감독과는 <마더>에 이은 두 번째 작업. “옥자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기 위해 우선 동물농장을 찾았고 돼지 관련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일에 착수했다. “봉 감독님은 그걸 ‘진지한 접근’이라 했지만, 나로선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옥자의 소리를 상상하기 위해 일단 지구상의 존재들을 만나야 했다.” 참고로 이정은은 회현지하상가 질주 신에서 휠체어를 탄 환자로도 짧게 출연한다. 언어 사용 능력이 뛰어난 이정은은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에서도 맛깔나게 그 능력을 활용한다. <군함도>에선 푸근한 인상과 방정맞은 웃음소리로 조선의 여자아이들을 회유해 일본으로 보내는 부인회 회장으로 출연한다. <군함도> 때는 “웃는 음색이 감독님 마음에 들었는지 대사 사이사이에 웃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택시운전사 태술(유해진)의 부인으로 출연한 <택시운전사>에서도 이정은은 웃는다. <군함도>의 웃음이 사람 뒤통수치는 웃음이라면 <택시운전사>에선 고향집 엄마의 웃음이다. 서울 토박이인 이정은에게 광주 사투리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광주 사람의 느낌”을 담아내는 거였다. “촬영 전에 사투리를 배우러 광주의 친구 집에 갔다. 녹음기를 꺼내 취재하려는데, ‘됐고 돼지고기나 잡아서 먹자’더라. 밥상을 차리는데 김치만 열 종류가 나왔다. 아, 이런 거구나 싶어 녹음기를 꺼버렸다. 중요한 건 언어에 있지 않았다.” 이정은은 <옥자> 이후 언어 너머의 정서, 언어 너머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발췌되지 않는 것, 언어 이상으로 느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걸 느끼려면 결국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을 알아야 들리지 않던 소리도 들린다.”

연기 좀 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정은은 이미 유명한 존재다. 하지만 대중의 눈에 익기 시작한 건 그의 나이 마흔이 넘어서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주목받는 배우로 무대에 섰지만 연극 연출 및 제작을 하다가 큰 빚을 떠안는 바람에 몸도 마음도 고생이 많았다. 영화를 좋아했으나 카메라 울렁증에 발목 잡혀 <전국노래자랑> 이전까지는 편히 카메라 앞에 서지도 못했다. 결국엔 그 모든 걸 극복하고 최근 2년간 배부르게 작품을 소화하고 있다. “그저 이야기가 좋다. 이야기 속에 내가 계속 들어가 있을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 최근엔 재일한국인 극작가 정의신의 작품 <야키니쿠 드래곤>을 일본에서 김상호 배우와 함께 찍었다. “더 실험하고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는 그 말이 참 듣기 좋다.

<변호인>의 이 장면

“<변호인>에서 우석(송강호)의 아파트 옛 주인으로 나왔는데, 한쪽만 눈화장을 하고 ‘쥬씨 드실랍니까?’ 하는 장면을 사람들이 많이 기억해주더라. 나 역시 그때 이후 자신감이 좀 붙었던 것 같다. 송강호 선배님과 연기하는데 카메라 울렁증이 또 도지면 안 되니까 정말 준비를 많이 해갔다. 결과적으로 재밌게 찍었다. 서로 그 장면을 들었다 놨다 하며 연기를 주고받는데 신이 나더라. 좋은 배우와 연기한다는 게 어떤 건지 경험할 수 있었다. 또 <변호인> 이후로 드라마 제안이 들어왔으니 내겐 여러모로 감사한 작품이다.”

영화 2017 <옥자> <군함도> <택시운전사> 2016 <곡성> <재심> <보안관> 2015 <좋아해줘> <검사외전> <그날의 분위기> 2014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조선명탐정: 사라진 놉의 딸> <카트> 2013 <변호인> 2012 <전국노래자랑> 2009 <마더> 2001 <와니와 준하> 드라마 2017 <도둑놈 도둑님> <내일 그대와> 2016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역도요정 김복주> 2015 <리멤버> <송곳> <오 나의 귀신님> 2014 <고교처세왕> <빛나는 로맨스> 2013 <여왕의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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