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에서 최재섭이 맡은 서울 택시기사는 역할의 이름조차 마땅하지 않은 아주 작은 배역이다. 만섭(송강호)에게 서울-광주 왕복에 10만원을 부른 ‘노다지’ 손님 위르겐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치만)를 가로채기당하는 억울한 기사다. 운명의 장난처럼 그날 광주로 가지 않게 된 건 이 서울 기사에겐 다행이었을까. 적어도 배우 최재섭에겐 단 2회차 촬영의 <택시운전사> 출연이 기분 좋은 다행이었던 것 같다. “올해로 데뷔 20년차인데 첫 매체 인터뷰를 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 (웃음)” 최재섭은 2001년부터 배우 오달수가 대표로 있는 극단 신기루만화경에 들어가 활동하고 있다. “매년 봄이면 신기루만화경의 정기 공연작인 <짬뽕>을 무대에 올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 <택시운전사> 오디션 때 그 점을 많이 어필했다. 광주 택시기사가 되려나 싶었는데 서울 택시를 몰게 될 줄이야.” 최재섭은 장훈 감독의 데뷔작 <영화는 영화다>에도 출연한 바 있다. “이강패(소지섭)의 최측근 부하 건달 역으로 최종 오디션까지 갔지만 결국 클럽 취객남으로 아주 잠깐 나왔다. <택시운전사> MT 때 감독님께 그 얘길 했더니 ‘이렇게 또 작업으로 만나게 됐으니 좋다’고 하시더라. (웃음)”
최재섭은 1998년 극단 가가의회의 <품바>로 데뷔했다. 이후 오달수의 추천으로 <올드보이>에 간수 역으로 합류해 처음으로 영화현장을 경험했다. “겁도 없이 신기해하면서 찍었다. 되게 짧게 나오는데도 되게 오래 찍는 게 영화구나 싶더라. 그래도 촬영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괴물>에서는 박노식과 함께 흥신소 직원 역을, 드라마 <골든타임>에서는 5회 동안 코마 상태로 침대에 내내 누워 있다 기적처럼 깨어나는 환자 역을 맡았다. 어린 시절부터 오직 배우만을 생각해왔던 그다. “친구들이 공 차고 야구할 때 난 집에서 TV로 <명화극장>을 봤다. 심심하면 볼펜에 종이로 모자를 만들어 씌워 인형이라 생각하고 1인 다역 연기를 했다. 그러면 어느새 친구들이 모여들어 내 얘기를 듣고 있더라.”
오랜 연기 생활 동안 부침이 왜 없었겠는가. “영화, 드라마 작업을 어느 정도하고 소속사도 생겼을 때였다. 조바심이 났다. 오디션을 볼 때마다 머리는 백지가 됐고 현장에 가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머리가 욱신댔다. 눈치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스스로에게 실망했다.” 마음이 힘들었던 그 시기를 그는 연기에 임하던 첫 마음을 떠올리며 지나왔다. “좋아하는 연기를 좇아 여기까지 왔는데 내가 왜 현장에서 괴로워야 하나. 연기할 때만큼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걸 상기하자며 스스로와 싸웠다.” 지금은 그저 “행복한 순간들”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가 바라는 배우 최재섭은 어떤 모습일까. “거인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 다양한 역할을 포용할 수 있는 믿음이 가는 배우.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연기 장인이 돼야지. 거대한 꿈이지만 꿈을 향해 한발씩 내딛다 보면 거인의 발뒤꿈치에는 갈 수 있지 않을까.” 연기에 대한 그의 태도는 하나다. “힘 빼고 가볍게 툭툭. 나를 내려놓고 편안하게 연기하고 싶다.”
<국제시장>의 이 장면
“<국제시장>에서 한국인 광부1 역을 맡았다. 까맣게 분장하고 먼지 나는 갱도에서 촬영하느라 고생도 많았지만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동료들이 생긴 행복한 현장이다. 후시녹음 때 윤제균 감독님께서 내가 사람들을 구하겠다며 무너진 갱도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찍은 걸 보여주시며 ‘이 장면만 놓고 보면 재섭이 네가 주인공’이라고 하시더라. (웃음) TV 에서 방영되는 <국제시장>을 보며 ‘아빠다!’ 하고 알아봐주는 아들 녀석을 보면서도 흐뭇해지는 작품이다.”
영화 2017 <택시운전사> 2014 <국제시장> 2011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2009 <해운대> 2008 <영화는 영화다> 2006 <괴물> <뚝방전설> <타짜> 2003 <올드보이> 드라마 2017 <명불허전> 2012 <골든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