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이미지보다는 말을 중요하게 다루는 감독이라면 즉각적으로 에릭 로메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영화에서 등장인물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하지만 등장인물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그 말들은 다 진실일까? 그렇지 않다. 로메르는 1995년 <파리의 랑데부>의 개봉에 앞서 가진 <카이에 뒤 시네마>와의 인터뷰에서 앙드레 바쟁의 말을 인용해서 “영화는 근본적, 존재론적으로 객관적인 면이 있고 그러한 이상 영화에서 의심이란 필요하며, 촬영된 사실에 대한 관객의 의심이 있어야 예술로서의 영화가 성립한다”고 말한다. 이는 영화에는 거짓말이 개입될 수 있어야 하며 그런 가능성이 없다면 관객은 등장인물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게 되고 말과 현실이 일치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극의 재미는 말과 사실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 있다는 것이다. 로메르가 밝히고 있듯이 <파리의 랑데부>는 세개의 짧은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으로 첫 번째 에피소드인 <7시의 랑데부>는 여주인공이 그녀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에게 거짓말을 한 그에게 통쾌하게 복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화의 전반에 걸쳐 거짓말을 모티브로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홍상수의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2016)에서 여주인공 민정(이유영)은 자신은 민정이 아니라며 정체성을 부정한다. 우리는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지, 그녀의 말대로 민정의 쌍둥이 동생인지 또는 민정을 닮은 여자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영화는 민정을 찾는 영수(김주혁)의 여정과 그녀들(민정, 민정의 쌍둥이 동생, 민정을 닮은 여자)이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영수의 주변을 맴도는, 결코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인물의 여정으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에릭 로메르와 홍상수의 영화에서 거짓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한 이들 영화에서 거짓말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되는가?
우선 두 영화가 전개되는 공간에 주목해보자. 대체로 로메르의 영화는 도입부에서 등장인물의 행위나 상황 없이 풍경을 보여주거나, 인물이 어딘가로 이동하는 장소의 지정학적 위치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영화에서 등장인물들이 활동하게 될 주변의 탐색으로 제시되거나 또는 영화의 이야기를 조직하는 중요한 장소로서 제시된다. 반면에 홍상수의 영화는 특정한 공간이나 장소를 보여주는 이미지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영화가 시작되면 주인공들은 이미 그 공간에 도착해 있다. 하지만 이전의 홍상수 영화들과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다른 점은 예전의 영화에서처럼 주인공이 휴가(<밤의 해변에서 혼자>(2016)의 영희)나 일(<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의 함춘수) 때문에 잠시 들른 낯선 공간(독일의 함부르크, 강릉, 수원)이 아닌,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익숙한 장소인 동네(연남동)라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공간은 이미 그들만의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을 수 있고, 타지 사람들에겐 폐쇄적인 공간이 될 수 있다.
다음으로 부정적인 말의 힘에 대해서 살펴보자. 로메르의 <7시의 랑데부>에서 주인공 에스테는 친구로부터 그녀의 남자 친구 오라스가 퐁피두 센터 근처에 있는 보부르의 ‘담 타르틴’ 카페에서 다른 여자를 자주 만난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또한 홍상수 영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에서 영수는 민정을 좋아하지만(그녀를 결혼 상대자로 생각하고 있다) 영수의 주변(동네) 사람들은 그녀를 싫어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금성’이라는 술집에서 다른 남자들과 술을 마시고 싸움까지 했기 때문이다. 동네의 아는 형으로부터 이 사실을 전해 들은 영수는 그녀가 술만은 자제하기로 자신과 약속했다며 잘못 봤을 거라고 말한다. 두 영화에서 의심의 발단은 주인공의 주변인물이 전해준 말에서 시작된다. 그 말이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간에 일단 발화된 말은 힘을 갖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말에 의심을 품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상대를 믿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럴 리가 없다고, 잘못 봤을 거라고 부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과 의심은 증폭된다.
거짓말은 ‘리트머스’이거나 ‘게임’이거나
이번에는 로메르의 영화 <7시의 랑데부>에서 거짓말이 구성되는 과정을 살펴보자. 에스테는 어떻게 문제의 장소에 가게 되었을까? 로메르는 그녀를 그 카페로 보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일들을 겪게 한다. 그녀는 몽파르나스 시장에서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며 접근한 잘생긴 남자에게 담 타르틴 카페(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 들었던)에서 7시에 만나자고 약속을 한다. 그 남자가 가고 난 후 그녀는 지갑을 소매치기 당한 것을 알게 되고 그 남자가 소매치기라고 의심한다. 그런데 한 여자가 그녀의 집으로 잃어버린 지갑을 가져다주면서 7시에 약속이 있다며 보부르(담 타르틴 카페가 위치한) 가는 길을 묻는다. 이 영화에서 거짓말은 영화의 말미에 밝혀진다. 하필이면 그녀에게 잃어버린 지갑을 찾아준 여자가 남자 친구가 만나는 여자였다.
반면에 홍상수의 영화에서 진실은 끝내 드러나지 않는다. 민정은 자신이 민정이 아니라고 끝까지 부정하기 때문이다. 민정이 자신을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녀는 왜 민정이 아니어야만 하는가? 이것을 민정의 거짓말 게임이라고 가정해보자. 먼저 거짓말이 성립하려면 민정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홍상수는 영화 장면 곳곳에 민정을 닮은 여자가 민정이라는 첫번째 증거인 소품들(그녀가 입고 있는 옷, 그녀의 가방, 그녀가 읽고 있는 책, 그녀가 들고 다니는 보온병)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감독은 우리가 쉽게 예측할 수 없도록 우리를 혼란스럽게 교란시킨다. 민정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두 번째 증거는 그녀의 말과 행동이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거짓말은 로메르 영화의 거짓말과는 다르게 어떤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민정)이 자신의 존재를 영화의 초반부터 끝까지 부정한다는 데 있다. 이는 홍상수의 거짓말 전략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로메르는 “거짓말은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상대에게 충실해야 할 인물들이 다른 여자나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거나 숨기려다 들통나는 연애의 실패를 다루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영화에서 등장인물에게 거짓말을 하게 하는 것은 진실이 드러났을 때, 거짓말을 한 인물과 상대 인물간의 감정의 반응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거나 알게 된다. 이 부분이 에릭 로메르와 홍상수 영화의 다른 점이다. 홍상수는 거짓말을 게임으로 이용한다. 결국 민정은 게임에서 이겼고 영수와 다시 새로운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홍상수의 게임에서 졌다. 우리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민정의 정체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그녀가 왜 민정이 아닌 다른 여자로 기억되길 바라는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정의 거짓말은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는 행위가 아니라 정반대로 자신을 알리기 위한 행위는 아니였을까. 민정이 영수와 헤어진 후, 연남동을 떠나지 않고 그 동네에 머물며 민정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남자들을 만나면서 배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민정은 삶의 공간인 연남동에서 그녀를 둘러싼 편견들(특히 그들만의 커뮤니티에 속한 기준에 따라 남을 평가하고 단정짓는)에 맞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민정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