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가렐의 영화에서는 대체로 아들 루이 가렐이 연기를 담당했었는데,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에서 인상적인 점은 루이 가렐이 목소리로 출연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이미지로 보여주기 전에 벌어질 상황을 화면 밖 목소리가 미리 알려준다는 점이 흥미롭다. 엘리자베스(레나 포감)가 지하철역 근처 카페에 신분증 재발급에 필요한 인지를 사러 갔다가 그녀의 연인인 피에르(스타니슬라 메하르)의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충격을 받는 신이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들 부부는 파경에 이르고 엘리자베스 또한 피에르와 헤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감독은 이 신을 어떻게 구성하는가? 여기서 감독은 이미지와 목소리를 어떤 방식으로 배치하는가?
우선 이 신의 첫 장면은 공교롭게도 지하철 역명이 ‘좋은 소식’인 역 입구에서 시작한다. 역의 지하철 입구가 보이면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엘리자베스가 보이고 카페의 입구로 들어가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등 뒤로 “엘리자베스는 마농도 애인이 있음을 알게 됐다”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뜻밖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만약 이 목소리(내레이션) 없이 바로 우리가 마농(클로틸드 쿠로)이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상황을 보게 된다면, 목소리로 상황을 미리 인지한 것과 어떻게 다를까? 우리는 마농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더라도 그녀가 만나고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 잠시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목소리를 통해 이미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마농이 남자와 같이 있는 장면을 마주할 때 즉각적으로 그들이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또한 엘리자베스가 카페를 나갈 때 카메라는 팬해서 벽면의 거울을 통해 두 남녀와 엘리자베스를 동시에 보여준다. 우리는 여기서 카메라의 시선에 주목해야 한다. 감독은 왜 굳이 세 사람(마농과 남자 그리고 엘리자베스)을 한 화면에서 보여주는가? 이것은 그들 모두가 공범(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는)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의도는 아니었을까. 마지막 숏에서 그녀가 무인촬영기 안에 들어가서 커튼을 칠 때, “그녀는 마농의 배신에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더럽게 느껴졌고 피에르에 대한 사랑도 그랬다…”는 내레이션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만일 이 목소리가 엘리자베스 시점의 목소리였다면 “나는 마농의 배신에 마음이 아팠다. 내 자신이 더럽게 느껴졌고 피에르에 대한 사랑도 그랬다…”로 주어가 ‘그녀’에서 ‘나’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 장면에서 벽면의 거울에 비친 엘리자베스의 모습과 이 내레이션이 일치할 수 있었을까? 카메라는 그 장면에서 세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도 카메라와 같은 위치에서 그들을 바라봤다. 그래서 엘리자베스가 무인촬영기에 들어가 커튼을 쳤을 때 그녀를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과 일치하는 목소리를 들려주게 되지 않았을까.
이 신은 엘리자베스가 카페 입구로 들어갈 때 그녀의 등 뒤에서 비밀처럼 느닷없이 들려준 목소리로 시작해서 거울에 비친 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미지를 거쳐 무인촬영기 안에서 사진을 찍는 그녀를 바라보는 목소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된다. 정보 전달(목소리: 엘리자베스는 마농도 애인이 있음을 알게 됐다)- 정보 확인(보여준 이미지: 마농과 남자 그리고 엘리자베스)- 사실 인정(목소리: 그녀는 마농의 배신에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더럽게 느껴졌고…)의 3단계를 거쳐서 2분(6개의 숏으로) 만에 엘리자베스와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부각된 것이다. <인 더 섀도우 오브 우먼>에서 이런 카메라의 시선과 특히 루이 가렐이 목소리로 출연한 3인칭 관찰자 시점의 내레이션이야말로 러닝타임 74분의 간결한 영화를 만들어낸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