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감독들의 감독들①] <드라이버> 월터 힐 - 도시의 서부극 마스터
2017-09-18
글 : 김현수
월터 힐 감독

“내가 만든 모든 영화는 서부극이다.” MTV와 로큰롤, 현대 액션영화의 스타일 안에서 서부극의 장르적 특성과 정서를 접목시키고자 노력했던 월터 힐 감독은 자신의 영화세계를 ‘서부극’으로 정리한다. 수십년 동안 <에이리언> 시리즈의 제작을 맡고 있으면서 1940년대 필름누아르 시절 갱스터영화를 연상케 하는 <라스트맨 스탠딩>(1996), 1980년대 버디 액션을 주름잡았던 <레드 히트>(1998)와 <48시간>(1982), MTV 스타일의 로큰롤 뮤지컬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1984) 등의 대표작을 만들어낸 그는 위 세대인 돈 시겔, 샘 페킨파 감독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영화계에 입문했다. 처음 제2 조감독으로 참여하며 현장을 경험한 영화가 노먼 주이슨 감독의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1968)와 피터 예이츠 감독의 <블리트>(1968)였는데 이때부터 낮에는 촬영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시나리오를 썼다.

뒤이어 샘 페킨파 감독의 눈에 들어 <겟어웨이>(1971)의 공동 각본 작업에 참여하던 시기가 월터 힐 감독 인생의 터닝포인트 지점인데, 샘 페킨파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그는 연출 데뷔작인 <투쟁의 그늘>(1975)을 비롯해 <드라이버>, <워리어>(1979), <롱 라이더스>(1980) 등의 초창기 대표작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겟어웨이>의 각본을 쓸 때부터 이미 서부극에 흠뻑 빠져 있었던 그는 어떤 소재의 이야기든 영화의 기본 뿌리를 서부극 장르의 틀에서 출발하려 했다. 덕분에 기발하고 참신한 장르영화가 탄생했다. 예를 들면 데뷔작 <투쟁의 그늘>에서 삶의 목적 없이 도시를 떠돌며 사는 거리의 싸움꾼 케니(찰스 브론슨)가 내기 싸움에서 한판 크게 이기고도 돈에 연연하지 않고 떠나는 모습은 영락없는 개척시대 배경의 비정한 카우보이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든지, 범죄조직의 도주를 돕는 최고의 드라이버(라이언 오닐)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이버>에서 조금의 감정 변화도 없이 맡은 일을 수행하고 보수를 받은 뒤 홀연히 떠나는 삶을 사는 모습 역시 거처 없이 떠돌면서 사는 무법자의 삶을 도시로 옮겨온 것이다. 그가 늘 스승처럼 존경했던 샘 페킨파, 돈 시겔, 구로사와 아키라, 장 피에르 멜빌, 하워드 혹스 등의 영향이었다.

캘리포니아 롱비치 출신의 공업 기술자였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어려서부터 일을 배우며 자란 월터 힐 감독은 천식을 앓아 몸이 약했고 학교생활도 제대로 못해 집에서 책벌레로 살았다. 코믹북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었던 그가 대학에 가서 역사학을 배우는 동안에도 허약한 체질 때문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했는데, 자진해서 군대에 지원했지만 신체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일도 있었다. 늘 집을 떠나 자립하고 싶어 했고 강인해지고 싶었던 그의 열망이, 홀연히 마을에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고는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서부 개척시대 주인공 캐릭터와 만나 영감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바로 그의 영화세계를 관통하는 캐릭터의 특징으로 자리잡게 된다. 지금껏 그가 만든 영화를 통틀어 가장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영화는 닉 놀테와 에디 머피 주연의 버디무비 형사극 <48시간>이다. <리쎌 웨폰> 시리즈와 <나쁜녀석들> 시리즈 같은 후대 버디형사영화의 유행을 가져다준 작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48시간 내에 탈주범을 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형사 잭(닉 놀테)이 탈주범의 정보를 쥐고 있는 범죄자 레지(에디 머피)를 데리고 다니면서 추격전을 벌이는 이 영화에서 묘하게 에너지가 넘치는 장면은 두 사람이 64년형 캐딜락 드빌 차량을 타고 거리를 질주하는 장면이다. 마치 무법자에게 권총이란 무기를 빼놓을 수 없듯이 자동차를 모는 캐릭터를 도시 전사처럼 묘사하는 연출이 인상적인데 사실 이같은 스타일은 그가 1978년에 내놓은 <드라이버>에서 이미 완성된 바 있다.

최근 에드거 라이트 감독이 연출한 <베이비 드라이버>는 월터 힐의 영화에 바치는 오마주 같은 영화다. 음악으로 소음을 차단시키고 오직 질주 자체에만 집중하는 탈출 전문 드라이버 베이비(앤설 엘고트)의 성격과 운전 스타일, 카체이싱 촬영에 이르기까지 <드라이버>에 빚지지 않은 장면이 거의 없다. “수많은 유럽과 아시아 영화를 보면서 나는 점점 할리우드에 갇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보고 싶은 영화는 언제나 서부극에 있었다. 제한된 할리우드만의 틀 안에서 꽉 짜인, 하지만 열린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내게 답은 언제나 장르였다. 나는 늘 장르영화를 위해 일하고 싶었다.” 1990년대를 기점으로 월터 힐 감독의 장르 세계는 점점 빛을 잃어가는 듯 보인다. 그가 만들고자 했던 영화들이 블록버스터영화 시대의 유행과는 맞지 않았던 탓도 있으리라. 하지만 그는 최근까지도 끊임없이 서부극과 현대 액션영화와의 접점을 고민하며 실베스터 스탤론, 크리스천 슬레이터와 <48시간>의 액션 버전 같은 <불릿 투 더 헤드>(2012)를, 시고니 위버, 미셸 로드리게즈 주연의 범죄 스릴러 <톰보이, 어 리벤저스 테일>(2016) 등의 영화를 만들고 있다.

어떤 감독?

<드라이버>(1978) 월터 힐 감독

누가 언급했나.

<베이비 드라이버>의 에드거 라이트 감독은 영감의 원천으로 월터 힐 감독의 <드라이버>를 꼽았다.

<드라이버>

<드라이버>는 어떤 영화?

말 한마디 없이 오직 환상의 주행 실력을 바탕으로 온갖 범죄자들을 경찰의 추격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드라이버의 삶을 다룬 <드라이버>는 스타일 면에서 당대 카체이싱 장면이 등장하는 범죄영화와 결을 달리한다. 많은 영화들이 닷지 챌린저, 포드 머스탱 같은 머슬카를 앞세워 화려하고 거칠고 짜릿한 액션을 추구했다면 월터 힐 감독은 배경음악도 없이 오직 엔진의 굉음과 아스팔트를 긁는 바퀴 소리만 들리는 하드보일드한 10분가량의 차량 추격 장면을 통해 터프한 드라이버의 삶을 묘사한다.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의 <드라이브>에서 라이언 고슬링이 보여주는 말투와 행동,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 폴 워커가 연기하는 특유의 표정과 스타일 등은 모두 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드라이버를 연기한 라이언 오닐이 원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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