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바로 할리우드의 역사다. 로버트 와이즈는 이 무책임한 수식어의 무게마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전설이 된 할리우드의 명감독이다. 19살에 생계를 위해 RKO 픽처스 말단 직원으로 영화계 첫발을 디딘 그는 곧바로 두각을 드러내 편집 일을 시작하게 된다. 로버트 와이즈의 이름을 알린 작품은 다름 아닌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1941)이다. 음향, 필름 편집을 병행하던 그는 <시민 케인>으로 아카데미 편집상 후보에 올랐다. 오슨 웰스는 로버트 와이즈의 영화적 스승이기도 했다. 딥 포커스, 사운드 연출을 통해 정보를 지연시키고 이를 통로로 관객을 서사에 동참시키는 방식은 이후 로버트 와이즈의 연출적 뼈대가 된다. 로버트 와이즈는 호러, SF, 뮤지컬 , 멜로드라마, 필름누아르, 서부극까지 실로 다양하고 광범위한 장르를 넘나들었지만 이 모든 형식을 관통하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관객의 지적인 가능성을 믿고 끊임없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서스펜스를 구축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로버트 와이즈의 작품들은 많이 보여주지 않을 때 더 빛을 발하곤 했다. 상대적으로 제작 환경과 제작비가 열악했던 초기 작품들에서 그의 재능을 좀더 자세히 엿볼 수 있는 이유다.
로버트 와이즈에게 아카데미의 영광을 안긴 것은 뮤지컬영화다. 1962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했고, 4년 후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또 한번 작품상과 감독상을 동시에 받는 보기 드문 기록을 남겼다. 흥행도 순조로워 1억6천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며 일약 스타 감독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로버트 와이즈는 몇편의 단발성 흥행작을 남기고 사라진 이들과는 걸어온 길의 단단함이 달랐다. 흥행의 폭죽을 터트린 건 뮤지컬이었지만 그의 출발과 기반에는 호러와 서스펜스가 있다. 조금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서스펜스가 장르의 지위를 얻기 전부터 그는 서스펜스의 기초를 꾸준히 다져왔다. 애초에 서스펜스란 영화의 기본적인 속성이며, 로버트 와이즈의 모든 영화에는 장르와 무관하게 서스펜스가 녹아들어 있다고 봐도 좋다.
로버트 와이즈는 1944년 호러영화인 <캣 피플의 저주>로 데뷔했다. 단순히 관객을 놀라게 하는 쇼크 효과에 매달리던 이전의 호러영화와 달리 심리적인 서스펜스를 탁월하게 구현한 작품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로버트 와이즈가 데뷔의 기회를 잡은 과정이다. 당시 경영 압박을 받던 RKO는 구원투수로 제작자 발 루튼을 영입했다. 그는 흑백의 콘트라스트를 강조한 촬영과 캐릭터에 대한 심리적인 접근으로 새로운 유형의 공포를 창조했다. RKO의 명작 호러를 이끌었던 발 루튼의 첫걸음은 1942년 <캣 피플>이었는데, 로버트 와이즈의 데뷔작은 그 연장선에 있는 영화다. 당시 감독이었던 군터 폰 프리치가 하차하면서 편집자였던 로버트 와이즈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로버트 와이즈는 오슨 웰스에게 배운 바를 호러 장르 속에서 실현시킨다. 제목과 달리 ‘캣 피플’이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 이 영화는 상상 속의 친구를 통해 심리적 서스펜스를 선명하게 구현하고 있다. 이후 보이지 않는 공포를 창조한 발 루튼과의 호흡은 <신체강탈자>(1945)를 통해 정점을 찍는다.
데이비드 F. 샌드버그 감독은 <애나벨: 인형의 주인>(이하 <애나벨>)이 로버트 와이즈의 1963년작 <더 헌팅>의 영향을 받았다고 여러 차례 밝혀왔고 시네마스코프 비율로 촬영하는 등 고전 호러에 대한 오마주가 곳곳에 녹아 있다. 아마도 <애나벨>이 <더 헌팅>에서 배우고자 했던 부분은 이른바 심리 호러라고 불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포와 긴장감일 것이다. 실제로 <애나벨>은 이 부분을 꽤 차곡차곡 쌓아나간다. 물론 <애나벨>의 서스펜스는 대부분 결정적인 순간의 점프 스퀘어(깜짝 놀라게 하는 연출)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요컨대 기반은 빌려오되 방점을 찍는 부분이 조금 다르다. 무엇보다 귀신 들린 집을 무대로 한 영화 중 <더 헌팅>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영화는 사실상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건 결코 과장이 아니다. 로버트 와이즈는 <더 헌팅>을 통해 초자연적 현상이 깃든 하우스 호러의 전형을 창조했고 이후 1999년 리메이크작을 포함하여 <헌티드 힐> <컨저링> <크림슨 피크> 등 숱한 호러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로버트 와이즈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사이의 긴장감을 조율하는 감독이다. 이는 할리우드의 기초적인 문법이기도 하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것과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것, 상상을 자극하는 빈틈을 통해 관객의 지적 동참을 유도한다. 초기 호러영화는 물론 필름누아르인 <셋업>(1949), <지구 최후의 날>(1951) 같은 SF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심리를 기저에 깔고 있는 스토리텔링은 할리우드가 100년에 걸쳐 다듬고 도달하고자 했던 영화의 한 궁극을 향한다.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로버트 와이즈의 영화는 누군가의 영감의 원천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이 바로 할리우드다.
어떤 감독?
<더 헌팅>(1963) 로버트 와이즈 감독
누가 언급했나.
<애나벨: 인형의 주인>의 데이비드 F. 샌드버그 감독은 심리 호러를 그리고 싶었다며 <더 헌팅>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더 헌팅>은 어떤 영화?
셜리 잭슨의 1959년 소설 <힐 하우스의 유령>을 각색한 영화. 초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힐 하우스의 숨겨진 비밀을 밝히기 위해 존 마크웨이 박사가 심령 실험을 시도하는데 악몽에 시달리는 엘리너, 심령술사 테오도라, 힐 하우스 주인의 조카 루트 등 힐 하우스 맴버들에게 계속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인물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증폭되는 불안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특수효과의 사용을 최대한 절제하고 거울과 렌즈를 활용한 이미지, 섬뜩한 음향을 통해 말 그대로 힐 하우스에 생명을 부여한 것. 보여주지 않는 것으로 공포의 근원을 자극하는 영화. 로버트 와이즈가 제작자 발 루튼을 기리기 위해 원작을 골라 연출을 맡았다. 발 루튼이 개척했던 심리적 공포의 정수를 선보인 호러영화의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