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예술가들은 훔칩니다. 그들은 오마주를 바치지 않지요.” 쿠엔틴 타란티노의 명언이다. 후대의 많은 영화감독들에게 귀감이 된 위대한 감독들에게도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된 그들 각자의 멘토가 있었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때로는 회고록을 통해서, 영화감독들이 직접 밝힌 영감의 대상에 대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이야기들을 엮어 소개한다.
▶ 스탠리 큐브릭은 영화사를 통틀어 막스 오퓔스가 가장 위대한 감독이라 생각했으며 “모든 가능한 방식으로” 그에게 사로잡혀 있음을 고백한 바 있다. 큐브릭의 마지막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1999)은 막스 오퓔스의 영화 <윤무>(1950)의 원작 소설을 집필한 아서 슈니츨러의 소설 <꿈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영광의 길>(1957)을 촬영할 당시 큐브릭은 막스 오퓔스의 기일인 3월 25일을 기억하기 위해 그날의 촬영분을 롱트래킹숏(막스 오퓔스는 유려한 트래킹숏으로 유명했다)으로 채웠다고.
▶ 그야말로 ‘영화감독들의 감독’인 앨프리드 히치콕에게도 영감의 대상이 있었다. ‘미국영화의 아버지’ D. W. 그리피스다. 히치콕은 자신의 영화의 모든 추격 장면은 “에드거 앨런 포와 G. K. 체스터턴 그리고 그리피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국가의 탄생>(1915)과 <인톨러런스>(1916), <동부 저 멀리>(1920)가 히치콕에게 영향을 준 주요 작품으로 꼽힌다.
▶ 폴 토머스 앤더슨은 언젠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세 감독의 이름을 말해 달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조너선 드미, 조너선 드미, 조너선 드미.” 드미의 <섬씽 와일드>(1986)와 <양들의 침묵>(1991)을 자신의 올 타임 베스트영화로 꼽는 앤더슨은 조너선 드미를 처음 만났을 당시 걱정이 컸다고 한다. 자신의 연출작 <부기 나이트>(1999)의 모든 장면이 드미의 영화를 베꼈다고 비난받을까 두려워서다. 정작 조너선 드미는 <부기 나이트>를 본 뒤 자신의 영화와 어떤 유사점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의 내러티브를 처음으로 구상할 때 구로사와 아키라의 1958년작 <숨은 요새의 세 악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쟁포로가 된 두 농부가 패망한 왕국의 전설적인 사무라이 장군을 만나고, 그를 도와 공주를 호위하고 금괴를 지키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영락없이 <스타워즈> 시리즈의 메인 플롯과 닮았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페르소나이자 <숨은 요새의 세 악인>에서 사무라이 장군을 연기한 미후네 도시로는 조지 루카스가 제다이 기사 오비완 케노비를 창조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루카스는 그를 오비완 역에 캐스팅하고 싶어 했으나 불발되었다고 한다.
▶ 데이비드 린치가 <트윈 픽스> 시리즈를 만들던 시절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는 오토 프레민저의 필름누아르 <로라>(1944)다. 로라 팔머(<트윈 픽스>)와 로라 헌트(<로라>). 같은 이름을 지닌 두 작품의 여자주인공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한 여자주인공과 사건을 수사하는 남자 경찰, 수사할수록 점점 오리무중이 되어가는 상황과 로라의 행방을 둘러싼 충격적인 반전 등 데이비드 린치는 여자주인공의 이름뿐만 아니라 <로라>의 많은 요소를 <트윈 픽스>에 차용했다.
▶ 스티븐 스필버그는 차기작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영감을 얻기 위해 존 포드의 영화를 본다고 한다. 그런 그가 가장 자주 보는 존 포드 영화는 <수색자>(1956). 스필버그는 어린 시절 존 포드 영화에 큰 영향을 받아 그의 1950년작 <리오그란데>의 전단지를 뒷배경으로 세운 홈무비를 만들곤 했다고 한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는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어드벤처 장르의 영화에서 오랫동안 꿈꿔왔던 존 포드 스타일의 광활한 풍경을 펼쳐냈다.
▶ 쿠엔틴 타란티노는 SF영화나 호러영화를 연출한 적이 없지만 <헤이트풀 8>(2015)를 찍을 당시 명백하게 존 카펜터의 호러영화 <더 씽>(1982)의 영향을 받았다. <헤이트풀 8>는 <더 씽>과 마찬가지로 외부와 단절된 장소를 영화의 주요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바람과 눈보라의 사운드로 긴장감을 자아낸다. 등장인물이 한명씩 죽어나가고, 어떤 인물도 믿을 수 없으며, 희생양이 될 다음 타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겹친다. <더 씽>의 영화음악을 맡았던 엔니오 모리코네가 <헤이트풀 8>의 스코어를 맡았다는 점, <더 씽>의 주연배우였던 커트 러셀에게 비슷한 임무를 준다는 점까지 우연이라기엔 두 영화는 닮은 점이 너무 많다.
▶ 영화광 마틴 스코시즈에게 영향을 준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그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두편의 영화는 존 카사베츠의 <그림자들>(1959)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걸인>(1961)이라고 한다. <그림자들>은 뉴욕대 영화과 학생이던 스코시즈에게 처음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용기를 준 작품이자 그의 첫 장편영화 <누가 내 문을 두드리는가?>(1968)에 기술적으로(특히 즉흥연기) 많은 영감을 줬다고 한다. 로마 빈민들의 삶을 조명한 파졸리니 영화 <걸인>은 스코시즈에게 자신의 터전인 뉴욕을 배경으로 테마와 캐릭터를 다루는 법을 알려준 작품이라고. <걸인>이 없었다면 <비열한 거리>(1973)도 없었을지 모른다.
▶ “카메라가 발명된 이래 아마도 가장 위대한 아티스트일 듯.” 우디 앨런은 잉마르 베리만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매년 신작을 공개한다는 점, 수많은 영화를 거치며 비슷한 주제를 변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디 앨런은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인 잉마르 베리만의 행보를 따라가고 있다. 작업 방식 이외에도 우디 앨런은 베리만 영화의 특징들을 자신의 영화에 노골적으로 차용했는데, <사랑과 죽음>(1975)에서 등장인물의 옆얼굴과 얼굴 앞면이 오버랩되는 장면은 <페르소나>(1966)를 떠올리게 한다. 우디 앨런은 베리만의 걸작 <제7의 봉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1인 연극 <데스 녹스>를 상연하기도 했고, 베리만의 촬영감독이었던 스벤 닉비스트에게 <범죄와 비행>(1989)의 촬영을 맡겼다.
▶ 웨스 앤더슨은 자크 드미의 뮤지컬영화 <롤라>(1961)로부터 슬로모션 장면의 연출과 음악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했다. 축제 도중 키스하는 미국 선원과 프랑스 소녀의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보여주는 <롤라>의 한 장면은 앤더슨의 영화 <로얄 테넌바움>(2001)과 <다즐링 주식회사>(2007)에서 유사하게 변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