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를 딱딱하게 정의 내리는 것만큼 무의미한 짓도 없지만 전쟁을 다룬다고 전부 전쟁영화는 아니다. 정확히는 이런 전쟁영화가 있을 수도 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는 전쟁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심리적인 구조는 차라리 탈출극에 가깝게 다가온다. 놀란 감독이 전체적으로 참고했다는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의 <서부전선 이상없다>(1930)의 경우엔 전쟁을 통한 반전영화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원작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동명 소설부터 전쟁의 거대한 참상을 비판하는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29년 발표된 원작 소설은 르포 형식으로 실제 군인의 기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참전 군인의 심정을 생생한 묘사를 빌려 담고 있다. 여기서 핵심은 실제 군인의 일기, 1인칭의 체험담이라는 형식이다. 원작 소설은 전쟁의 모든 상황을 전지적인 시점에서 재현하는 대신 어린 병사의 제한된 시점에서 파고든다. 루이스 마일스톤을 자극한 것도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러시아 태생인 루이스 마일스톤은 원래 공학도였지만 연극과 영화를 사랑해 일찍부터 무대미술 일을 경험했다. 1차 세계대전 때 징병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마일스톤은 1917년 미 육군에서 군사교육용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후 1920년 초반 윌리엄 세이터 감독 밑에서 편집일을 시작한 마일스톤은 할리우드 스타일을 곧장 받아들인다. 하지만 당시 루이스 마일스톤이 보다 공을 들였던 건 역동적인 구도와 카메라 동선의 구축이었다. 군대에서 군사교육용 단편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던 마일스톤은 사실감 넘치는 화면의 중요성을 진즉부터 절감하고 있었다. 1925년 <7인의 죄수>로 안정적인 감독 데뷔를 한 뒤 겨우 2년 만에 코미디영화 <두명의 아랍기사>(1927)로 아카데미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했지만 그는 이미 다음 단계를 구상하고 있었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자신의 구상을 펼치기에 적절한 무대였다. 젊은 청년의 체험적인 시점인 만큼 반전을 전하는 메시지와 함께 전쟁의 참상에 접근하는 방식을 제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투 장면을 모두 담는 대신 부분적으로 분할해서 담아내고 간결하고 힘 있는 편집으로 속도감을 확보했다. 거기에 더해 카메라를 이동차 위에 올려두고 움직이면서 촬영하는 트레킹숏의 활용은 영화에 역동적인 이미지를 부여했다.
루이스 마일스톤의 방식은 당시 두 가지 방향에서 충격을 안긴다. 전쟁을 옆에서 겪는 것처럼 생생한 화면들을 담아내는 동시에 이미지의 충돌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역설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적과 아군을 나누고 승리하는 구도로 접근하던 종래의 전쟁영화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지점이었다. 전쟁영화이되 전쟁을 전시하지 않는 기념비적인 작품은 그렇게 태어났다. 전쟁을 치르게 된 원인도, 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청년들이 거대한 죽음으로 내몰리는 막막한 상황은 서사와 함께 형식을 통해서도 확실히 전달된다. 무수히 늘어선 묘지와 바로 옆 포탄이 터지는 듯한 역동적인 카메라워킹은 전쟁을 생생하게 체험시켜 종국에는 애도와 휴머니즘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적의 이미지를 지우고 그 자리를 지옥 같은 소리로 가득 채워 현대 전장의 공포를 그려낸 루이스 마일스톤의 비전을 두고 영화학자 앤드루 새리스는 “좌파형식주의자로서 미국의 에이젠슈테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정리했다.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편집의 리듬과 구조화된 이미지를 중시했던 루이스 마일스톤의 태도는 이후 전쟁을 다루는 숱한 영화들의 토대가 된다.
<덩케르크>의 경우 참고하지 않은 영화를 꼽는 게 더 쉬울 정도로 다양한 고전영화들을 인용한다. 다만 놀란은 단순히 특정 장면을 오마주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가 가진 정서, 화면에 접근하는 태도, 서스펜스를 쌓아나가는 방식 등에 헌사를 바친다. <덩케르크>의 뼈대가 된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린 개인의 공포와 공허를 19살 학생들의 시점에서 재현하고 체험시켰다. <덩케르크> 속 전장의 체험은 거기서부터 출발한다. 무엇보다 장면의 충돌과 속도감 있는 편집 등 형식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할리우드가 개척한 형식 미학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루이스 마일스톤은 당시 고용감독으로는 드물게 스튜디오와 싸우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길을 개척하는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적 비전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감독 데뷔를 도운 제작자 하워드 휴스와도 곧잘 다퉜고, 스튜디오 간부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설득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그는 코미디, 전쟁, 누아르, 멜로 등 장르를 능수능란하게 다뤘지만 최종적으로는 언제나 장르가 아닌 자신의 영화를 만들어왔다. 그의 영화 앞에 장르나 스타, 스튜디오의 이름이 아니라 ‘루이스 마일스톤’이라는 이름을 새길 수 있는 이유다. 깔끔한 편집, 상징화된 이미지의 충돌, 유려한 카메라의 움직임, 사운드의 과감한 사용 등 루이스 마일스톤이 개척한 전쟁영화의 형식미학은 이제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끊임없이 되살아난다. 고전의 생명력이란 그런 것이다.
어떤 감독?
<서부전선 이상없다>(1930)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
누가 언급했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덩케르크>가 영감을 받은 영화 목록들을 공개하며 제일 앞자리를 <서부전선 이상없다>에 바쳤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어떤 영화?
1차 세계대전 중 엄청난 사상자를 냈던 프랑스 동북부의 서부전선을 배경으로 한다. 독일의 작은 도시에 살던 고등학생 폴과 알버트, 프란츠, 뮬러, 벤은 참전을 독려하는 교수의 연설에 감명을 받고 자원입대 한다. 하지만 최전선에서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이들은 이내 절망에 빠진다. 전쟁이 이어질수록 친구들이 하나씩 사망하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폴은 휴가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전쟁의 비참함을 전혀 알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과 여전히 전쟁 참여를 외치는 교수의 모습에 회의를 느끼고 다시 전선으로 복귀한다. 애국심이라는 낭만적 환상을 해체하고 현대전의 공포를 생생히 재현하였으며 이를 통해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전쟁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는 전쟁영화, 아니 반전영화의 걸작. 독일 출신 망명작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1929년에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연출을 맡은 루이스 마일스톤에게 생애 두 번째 아카데미 최우수감독상(1930년)을 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