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영화를 향한 책의 여정⑤] <시네페미니즘: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읽는 13가지 방법> 더, 더 많은 담론이 기대되는
2018-05-09
사진 : 최성열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시네페미니즘: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읽는 13가지 방법> 주유신 지음 / 호밀밭 펴냄

<시네페미니즘: 여성의 시각으로 영화를 읽는 13가지 방법>은 오랜 기간 페미니즘을 연구해온 저자가 그간 저널에 발표한 연구 논문을 선별해 엮은 책이다. 2000년에 발표된 멜로 드라마와 관객성에 관한 논문부터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2017)와 <눈길>(2015)을 통해 위안부 재현 방식에 주목한 최근 발표 논문까지 아우른다. 총 13개의 챕터로 이뤄졌는데, 민족주의 담론에 관한 논의를 전개한 뒤 이어지는 장에서는 이런 담론에서의 실제 여성의 위치와 재현된 여성의 위치가 어떻게 만나는가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논문 발간 순서가 아닌 다루는 주제에 맞게 재배열했다.

이 글이 단순히 한 사람의 연구 성과물에 그치지 않는 건 포함된 제재가 방대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시기 중 하나는 1950년대인데, “여성성과 여성의 성역할이 사회적으로 가장 이슈”가 되었으며 “당대의 모순들이 가장 역동적으로 가시화”된 시기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고양이를 부탁해>(2001), <눈물>(2000) 등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제작된 10대 영화에 주목한다. ‘이행성’, ‘일시성’을 그 특징으로 하는 인간의 일생에서 가장 변화무쌍한 이 시기가 젠더 전복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본 것이다.

흔히 여성적 장르로 일컬어진 멜로영화나 새로운 육체의 발견으로 주목받은 SF, 여성의 성적 주체성과 관련해 주목받은 포르노 등 장르영화와 관련한 주요 쟁점을 다루는 한편,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관한 고려로서 텍스트 비평을 시도한다. 주로 한국영화 분석에 집중하지만 카트린 브레야의 <로망스>같이 세계 화제작에 집중한 논의도 있다. 여성 작가나 여성 캐릭터를 다룬 영화에 한정하지 않고, <주먹이 운다>(2005), <달콤한 인생>(2005) 등 한국영화에서 남성성을 다루는 방식에 주목한 글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김기덕 영화 등 대중적이거나 논쟁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과 함께 김희철 감독의 <지상만가>(1997)처럼 지금은 잊힌 작품에 주목한 지점도 눈에 띈다. 단순히 텍스트 분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요한 페미니즘 영화이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비슷한 컨셉의 서인숙 저작 <씨네 페미니즘의 이론과 비평>이 이론과 비평을 각각 분리해서 논한 경향이 있다면 이 책에서 영화 이론과 실제 텍스트 분석이 만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몇몇 지점은 아쉽다. 이를테면 SF 속 새로운 육체와 성차를 다룬 9장에서 <블레이드 러너>(1982)의 정형화된 여성성에 관한 비판적인 논의를 전개하는데, 최근 리메이크된 <블레이드 러너 2049>(2017)에 관한 언급이 누락되어 있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개봉하기 전인 2016년에 쓴 논문임을 고려하더라도 재수록 과정에서 이를 검토하거나 보충하지 않은 건 아쉽다. 10대 영화 분석을 비롯해 어떤 부분에서는 감독의 성별에 따라 영화를 이분화한 뒤, 정해진 한쪽 손을 들어준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아쉬움을 지적하는 이유는 이 글이 독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요청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 책은 읽고 소화해야 하는 교과서가 아니라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독해하며 채워넣어야 하는 수행 노트다. 어떤 부분은 이미 시효가 다했다고 여겨질 수도 있고, 분명 여전히 필요한 논의도 있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우리는 얼마나 변화해왔고, 혹은 얼마나 제자리걸음 중인가를 가늠해보는 것도 책을 활용하는 하나의 방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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